비전향장기수 신현칠 선생 타계.. 향년 96세

2012-04-17     이계환 기자

비전향장기수 신현칠 선생이 17일 오후 1시 15분경에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96세.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3년부터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등으로 수감됐다가 1988년에 비전향으로 출감했다.

고인은 일본 동경제대를 졸업했으며 해방공간 시기 남쪽에서 가장 혁신적인 출판사를 했으며 수배를 당하다가 한때 절로 피신해 있었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에 대해 “재미있고 깊이 있는 분”이라면서 “철학과 이론에 능했으며,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고 저술도 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2000년 6.15공동선언 직후인 그해 9월 비전향장기수 북송 때 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권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고인이 통일사업을 하기 위해 남측으로 내려왔는데 통일을 못보고 북으로 올라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앞으로 자유왕래가 될 때 북으로 가겠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내열 씨와 아들 범순(44), 딸 순재(41) 씨가 있다.

장례식장은 서울대병원이다. 18일 오후 7시에 영안실인 서울대 병원에서 추도식을 갖는다.

발인은 19일 오전 9시이며, 하관은 오전 11시 장지인 벽제공동묘지이다.

(추가-오후 11시 40분, 18일 0시 37분)

신현칠 선생 약력

- 1917년 서울 출생.
- 20세쯤에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하고, 1938년 일본 동경 유학.
- 이 무렵 신건(申建)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소설대표작집’ 출간.
- 1942년 일본 치안유지법으로 피검되어 1년간 구금.
- 해방공간에서 경제잡지 ‘조선경제’ 발간에 참가.
- 남로당에 참가해 ‘국제평론’, ‘조선산업노동조사시보’ 등 당 외곽기관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 전쟁 후 북에서 문화선정성에 소속했으며, ‘자강도민인보’ 논설기자로도 잠시 있었음.
- 남파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 1962년 봄 10년 형기를 마치고 석방.
- 그러나 사회안전법이 제정되면서 1975년에 다시 투옥되고 1988년 이 법이 폐지되면서 72세에 비전향으로 출옥.
- 석방된 뒤 시국 관련 논문 발표.
- 1996년 뇌졸중으로 대외활동 중단.
- 자전적 수기 ‘사각지대에서’ 집필.
- 2000년 비전향장기수 송환 때 분단의 아픔을 남쪽의 민중과 함께 한다는 뜻으로 남쪽에 남는 길을 택함.
- 저서로는 편역서 ‘조선소설대표작집’(1940, 일본 敎材社), 옥중 시조집 ‘필부(匹夫)의 상(像)’(2002, 개마서원), 시집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2002, 개마서원) 등이 있음.

출처-『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삼인)에서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