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
<연재> 정관호의 '풀 친구 나무 친구' (181)
| 정관호(87) 선생의 시와 사진으로 된 연재물을 싣는다. 시와 사진의 주제는 풀과 나무다. 선생에 의하면 그 풀과 나무는 “그저 우리 생활주변에서 늘 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풀이요 나무들”이다. ‘정관호의 풀 친구 나무 친구’ 연재는 매주 화요일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
벽오동
봉황새가 깃을 트는 나무
사모의 정을 전하는 나무
초승달이 걸리는 나무
빗소리를 듣는 나무
그런저런 이야기와 얽히어서
남정네 정서를 다듬어 온
상서로운 나무로 구전되는 벽오동
그러나 눈밭에 그루 높이 서서
된바람을 이기고 견디는
그 파란 줄기에 손을 얹으면
전해오는 여인네 처절한 몸떨림
깊은 밤에 잠 못 이루고
어둠 속 홀로 몸을 뒤척이며
제 허벅지를 바늘로 찌른다는
과부의 원망에 찬 한탄
다섯 폭 가리개에 둘러싸여
서글픈 소리로 나직이 신음하는
저 씨앗 부딪는 소리를 들어보라
빈 들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
하늘을 날아가는 휘파람 소리
처마 끝을 흔드는 요령 소리
이파리 한 닢 바람에 날려
독수공방 어두운 문살에 스치면
그것은 또 한서린 님의 숨기척
사랑방 동쪽 담장께보다
안방 뒤뜰 장독대 곁이 어울리는
여인의 나무 청상 같은 벽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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