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선전대 일꾼으로

<연재> 통일운동가 안재구 자서전 ‘어떤 현대사’ (48)

2011-12-31     안재구

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자서전 ‘어떤 현대사’를 연재한다. 시기는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때까지로 안 선생이 겪었던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 자서전을 통해 독자들은 해방과 전쟁 속에 부대낀 한 인간의 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황, 특히 지역운동사를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1회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에 걸쳐 게재됐는데, 41회부터는 매주 토요일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소년선전대 일꾼으로

나는 집밖으로 나가자 지금 국민은행 바로 앞에 있었던 「민애청」회관으로 들어갔다. 「민애청」회관에는 마침 「민애청」 위원장이신 조우재 선생님이 계셨고 소년부와 조직부장을 맞고 계셨던 구정식 선생님이 여러 소년들 앞에서 말씀을 하고 계셨다. 미닫이 창문을 드르륵 소리 나게 열고 내가 들어서자 모두 나를 보고 얼굴에 반가운 웃음이 가득했다.
밀양중학교에서 함께 퇴학을 당한 소년들이 여러 사람 있었고 특히 이재우와 강성호도 있다. 거기에는 수환이 아지매도 있다. 수환이 아지매는 나의 끝에할배의 딸, 그러니 나의 종고모이다. 내보다 한 살이 많은데 밀양중학교에 나와 같은 학년으로 다녔다. 내가 퇴학당할 때 함께 퇴학당했다. 수환이 아지매는 노동절 대회에 가지도 않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끝에할배가 좌익이라고 교장이 싸잡아 퇴학을 먹였던 것이다. 그 곁에는 참으로 희한하게 우리 연계소 객사(客舍) 채에 살고 있고 우리를 퇴학시킨 이주형 교장의 질녀도 나란히 있어 나를 보고 방그레 웃는다. 이 소녀는 이주형의 중형(仲兄)의 소실에서 난 딸인데 유달리 심한 오그랑 머리이고 성격이 걸걸해서 남자 같이 활달했다.
모두가 나를 보더니 반가워했다. 강성호가 말을 먼저 걸었다.
“재구는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지금 바로 네가 어디에 있는가, 올 때가 됐는데, 하면서 말하고 있는데 네가 들어오니 이처럼 모두가 반가워 안하나.”
수환이 아지매는 내 곁에 쪼르르 오더니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네 외갓집에 갔다더니 언제 왔노?”
“응, 지금 막. 집에 갔다가 점심 먹고 막 바로 이리로 왔다. 아지매는 우짠 일이고?”
수환이 아지매는 나를 보고 눈을 곱게 흘기면서 뾰로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왜), 나는 이런 데 오면 안 되는강?”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모임에 잘 안 나와서 안 그러나. 그리고 반가워서, 허허...”
우리 숙질이 반가운 승강이를 하자 강성호는 웃으면서,
“우리 이야기를 빨리 끝내고 일 준비를 해야지. 재구, 너는 이제 와서 무슨 일인지 잘 모를 테니 우선 간단히 우리 일을 알려줄 께. 단단히 들어둬.”
“응, 얘기해봐.”
강성호가 주로 설명을 하고 구정식 선생이 간간히 설명을 보충했다.
이야기란 미・소공동위원회가 속개되어 일이 제법 진척이 되고 있다. 그런데 반동들이 ‘반탁한다.’면서 갖은 훼방을 놀고 있다. 이들은 「서북청년회」를 주동으로 해서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 등, 그리고 거리의 어깨(깡패)들을 동원해서 민주인사들에게 폭행을 하고 있고, 이승만이 미국에서 독립보따리를 가지고 왔다면서 떠들고 다닌다. 이승만은 신탁통치를 안 받고 즉시 독립한다면서 3상회의 결정으로 민주주의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이는 친일파들을 끌어안고 미국 놈들의 후원을 받아 그를 중심으로 해서 친일 친미세력을 끌어 모아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만들 속셈이다. 그러면 일제 식민지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겉보기론 독립국의 허울만 입고 속내는 미제 식민지로 만들어, 친일파와 거기에다 친미파들의 세상을 만들어 낼 요량이다.
민주진영에서는 이를 폭로하고 인민을 동원해서 「미ㆍ소공동위원회」가 순조롭게 사업을 하고 남북이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을 기어이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지지하는 대대적인 군중대회를 조직하자는 것이다.
이 군중대회의 지침은 「민전」의 중앙으로부터 하달되어 있고, 「민전」의 밀양지부에서 이 「밀양군 군중대회」를 7월 27일에 열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고 한다. 이 결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민전」에 가입되어 있는 정당ㆍ사회단체가 각각 분공을 정하고 각 정당ㆍ사회단체의 밀양 지부는 각기 맡은 과업을 위하여 토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민애청」에서도 분공을 받아 안고 토의를 붙여 실천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 중 「민애청」 소년학생부에서는 군중동원에서 소년선전대를 조직하려고 모였다는 것이다.
강성호는 나를 향해 계속 말했다.
“소년선전대를 각 면에다 파견할 작정인데 하남면과 초동면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없어 네가 있었으면 하고 말하고 있는 중 네가 마침 들어와서 아까 그 야단이었다.”
나는 흔쾌히 나섰다.
“어째 외갓집에서 외할매가 잘 메겨주어도 ‘소화가 잘 안되더라이’, 이제 보니 동무들이 내 말을 자꾸 해서 그랬구나. 거기 외할배가 면장이라서 그저께 일부러 면장실에 가서 신문을 보았더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당장 왔다 아이가.”
그리고 구 선생을 향해 말했다.
“선생님, 무슨 일이고 할 테니 맡겨만 주십시오.”
구 선생은 ‘허허...’ 웃으시면서 말했다.
“안 동무는 말이 시원시원해서 좋네. 그래 동무는 하남면과 초동면을 맡아 주오. 초동면은 하남면에서 함께 처리할 것이고. 나중에 할 일을 따로 문건으로 만들어 줄게고. 신임장을 「민전」 면 지도부에 가지고 가면 거기에서 할 일을 지시해 줄 것이오.”
그리고 하남면, 초동면 소년선전대 조를 정했다. 내가 책임자로 정해졌고 이재우 동무와 수환이 아지매 그리고 수환이 아지매와 단짝인 밀양중학교 교장의 질녀 이일성 학생과 합쳐 4사람으로 편성되었다.
강성호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 그쪽이 문제였는데 네가 와서 단박에 해결됐네. 우리 재구는, 있을 재, 구할 구, 역시 구할 때는 언제나 있다는 바로 그 ‘재구’야.”
강성호의 재치 있는 말로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들고 말았다.
나의 입장으로 일단 선전대 일꾼 편성이 완료되고 웃음소리도 숙여들자 「민애청」 지도원 동지인 구정식 선생의 자세한 지도해설 있었다.
그 내용은 첫째로, 3상회의에서 결정된 「민주주의임시정부」의 의의를 농민에게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은 미・소 양군이 조선에 「민주주의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조선의 시정을 조선사람에게 맡기고 철수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린다. 이를 신탁통치라고 반대하는 것은 남조선을 분단하여 미제의 지원으로 친일파와 친미파의 반동정권을 만들어 38선을 영구히 두고 이남을 미제의 식민지로 하려는 것임을 알린다.
둘째로, 「민주주의임시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불평등한 봉건제도를 타파하는 데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일제 식민지 통치의 모든 법령을 타파하고 인민의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는 일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농민으로부터 탈취한 토지와 친일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직접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분배함으로써 봉건적 지배의 경제적 토대인 「지주제도」를 청산하는 것이다. 이는 친일파ㆍ민족반역자의 경제적 토대를 허물어뜨리고 일제의 식민지 잔재를 완전히 없애는 일이며, 또 봉건적 유제를 그 뿌리마저 청산하고 만민이 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과업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비로소 빈부와 귀천이 없는 참다운 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 근로민중의 절대다수인 농민들에게 선전하는 일이다.
그리고 셋째는, 민주주의 임시정부는 온갖 반민주적인 우리사회의 제도를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제도를 위한 여러 법률과 제도를 새로이 내와서 사람마다 각기 재능을 꽃피우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다시는 식민지 망국의 서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임을 선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와 각계각층마다의 민중이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표현과 투쟁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할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법률을 만들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권리와 대표자가 되는 권리를 보장하는 선거제도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인민은 그들이 뽑은 대표자에게 맡긴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일을 할 때는 인민의 총의를 모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할 것이다.
넷째는, 우리나라의 해방과 자주독립을 위하여 노력한 연합군의 국가들과 그리고 민주주의를 애호하는 세계의 모든 인민들과 친선할 것이며 그들과 문화와 경제를 교류하여 인류문화발전에 공헌할 것임을 알린다.
이러한 선전 목적과 내용을 지도 받고 이번 「밀양군 군중대회」가 임시정부수립을 촉구하는 투쟁에 전체 농민들이 떨쳐나서게 하고 인민들의 단결된 힘을 과시하기 위한 대회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번 군중대회는 밀양군의 모든 농민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체가 나서서 참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군중동원에서 소년선전대의 활동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선전투쟁에 이바지해주도록 당부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특히 농촌은 전통과 관습이 존중되고 있으므로 여러 분들이 마을의 노인들에게 행신을 더욱 조신할 것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 길을 청소하고 여성 동무들은 부엌에 나가 밥상 차리는 데에 거들고 모든 행동이 동네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말로써 선전활동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선전활동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농민들과 며칠 동안만이라도 함께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로부터 인민생활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구정식 선생님은 간곡히 당부하셨다.
이때가 오후 5시쯤 되었다. 여름 해라서 아직 해가 많이 남았다. 그런데 한 민애청 형이 회관 미닫이문을 드르륵하고 열고 긴장된 얼굴을 하고 들어오면서,
“여러분, 좀 전에 방송이 나왔는데 여운형 선생이 돌아가셨답니다. 서울 자택 근처 혜화동 로터리에서 괴한이 쏜 권총으로 암살되었답니다.”
이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입만 벌리고 들어오는 청년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참이나 있다가 누가 입을 뗐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선생님이 정말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아이구. 이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지 이게 어찌된 영문입니까.”
그제야 앉은 사람은 벌떡 일어났고, 선 사람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