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정책과 대안만이 세상을 바꾼다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을 읽고 -전상봉

2010-06-06     전상봉

전상봉 (서울시민연대 대표)

 

다섯 번째로 치러진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를 거칠게 요약해 본다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패배’, ‘민주진보진영의 승리’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번 선거는 사전 발표되었던 여론조사와는 전혀 다른 예상 밖의 결과들이 속출했다. 그러다 보니 개표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선거 결과가 극적이다 보니 뒷얘기도 무성하다. 새벽 3시까지 서울시장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잠들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침에 일어나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당선됐다는 사실에 경악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선거 기간 우리는 역사가 20년 전쯤으로 후퇴하는 경험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천안사건 조사결과가 선거 개시일인 5월 20일 발표되면서 북풍한설이 몰아쳤고, 급기야 5월 24일 전쟁기념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상황은 일촉즉발의 상태로 돌입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보면 이명박 정부의 북풍몰이가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북풍몰이로 인해 정책논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4대강 사업, 행정복합도시, 무상급식 등의 쟁점이 보다 뜨겁게 공론화되었다면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가정과 함께 만약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시장과 오세훈시장이 추진했던 막개발식 뉴타운정책을 폐기하고 싱가포르의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면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니면 공교육이 무력화되고,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사회에서 핀란드식 교육정책을 전면 도입하겠다고 내걸었다면 시민들의 반응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떠올려 본다. 그도 아니면 벨기에가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시행한 로제타 플랜과 같은 정책을 대한민국에서 시행하겠다고 내세웠다면 보다 많은 청년들이 투표소를 향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이런 상상들은 지난 5월 중순에 발간된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을 읽으면서 필자가 느꼈던 생각들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17개의 정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어떤 정책은 책 제목처럼 세상을 바꾼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했고, 또 어떤 정책들은 세상을 바꿀뻔 하다가 실패한 정책들도 있다. 그럼에도 성공한 정책은 성공한 대로, 실패한 정책은 실패한 대로 타산지석의 교훈을 우리들에게 던진다.

이 책을 집필한 여섯 명의 저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불가능한 정책이란 없다. 허황된 정책이란 것도 없고, 늘 올바른 정책이란 것도 없다. 오직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고, 향유하는 좋은 정부, 좋은 정치 그리고 좋은 시민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결국 저자들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에 의해 좋은 정부가 수립되고, 좋은 정부가 좋은 정치와 정책을 시행하여 그 혜택이 다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저자들이 던지는 이 같은 메시지는 최근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20년 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적인 흐름을 바로 잡는 힘 역시 민중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과거로의 퇴행을 거부하는 것과 함께 진보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힘 또한 민중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가령 이 책의 일곱 번째에 수록되어 있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아이들에게 총 대신 음악을”이라는 글을 보면 세상을 바꾼 좋은 정책이란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미래에 대한 상상력으로 구체화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해 9월 첼리스트 장한나가 ‘무르팍 도사’(2009년 9월 9일 방영)에 출현하여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고 싶다며 밝힌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거리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마약과 칼, 총 대신 악기를 하나씩 주었어요. 아이들의 삶이 음악가로 변화되었어요. 그렇게 구성된 청소년오케스트라가 베네수엘라에 300개가 넘는대요. 그래서 베네수엘라가 갑자기 문화의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굳이 첼리스트 장한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을 읽다보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은 민중들의 단결된 힘이고, 그 힘에 의해 입안되고 추진되는 좋은 정책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정책으로 말하자! 요란한 구호와 선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만이 보다 낳은 세상을 약속한다.”는 저자들의 외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 차례

1장 세상을 놀라게 한 정책들: 대한민국을 놀라게 한 정책들

1. 싱가포르 공공주택정책, 국민의 90%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나라
2. 프랑스 대학평준화정책, 일류대와 삼류대가 없는 나라
3. 핀란드식 교육, 평등과 효율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세계최고의 교육
4. 영국의 NHS 무상의료정책, 국민건강보험을 넘어 전 국민에게 무상의료를
5. 벨기에의 로제타 플랜, 청년실업 100만 시대 해법은 없나?

2장 가난한 세상을 바꾼 정책들: 가난하지만 행복한 세상을 위해

6.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가난한자들의 은행
7.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아이들에게 총 대신 음악을
8. 쿠바의 무상의료, 맨발의 환자를 향한 맨발의 의사들

3장 투기자본의 세상을 바꾸는 정책들: 통제되지 않는 자본은 악이다.

9. 토빈세, 고삐 풀린 투기자본을 통제하라!
10. 외화가변예치금제도와 환율바스켓제도, 외환위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4장 세상을 더 민주화하는 정책들: 더 많은 민주주의를, 더 많은 참여를

11. 독일연방제, 자치·분권·통합의 정치체계
12. 브라질의 참여예산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민주화하라!
13.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 노동현장에도 민주주의를!

5장 세상을 바꿀 정책들: 기후변화의 시대에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정책들

14. 탄소세, 기후변화시대 녹색조세제도를 준비하자!
15. 미국의 WAP, 기후변화시대의 주택정책

6장 세상을 바꿀뻔한 정책들: 글로벌 경제위기 시대에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실패

16.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 사회화에 대한 진지한 시도
17. 영국의 대안경제전략, 민주적인 국유화의 시도

- 조성주 외 / 열다섯의 공감 기획 / 도서출판 유니스토리 / 246쪽 / 값12,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