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열사 범국민장에 앞서 추모식 및 문화행사 열려
2010-04-12 마산=김종욱 통신원
김영만 4.11민주항쟁 50주년 행사준비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식은 김주열 열사의 유족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관계로 유족들이 다니고 있는 서울 성락교회 추경옥 목사의 집전으로 유가족 기도회와 함께 그 서막이 시작되었다.
추 목사는 이 자리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영생의 삶을 사는 것으로 완성될 수 있는데, 김주열 열사의 육신은 50년 전 산화해 갔으나, 불의에 저항하고 독재에 맞섰던 그 기백과 정신은 만세에 길이 남을 것이니 이것이 영생의 삶이 아니겠는가?”라는 말과 함께 참가자들과 함께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진 순서에서는 매년 4월 11일 마산에서 치러지는 4.11민주항쟁 기념식에 매번 참여해 추모곡을 불러주는 가수 고명숙 씨가 무대에 올라 김주열 열사의 추모곡 ‘남원땅에 잠들었네’를 처연한 목소리로 불렀다.
‘남원땅에 잠들었네’라는 곡은 1960년대 ‘빈대떡 신사’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던 가수 한복남 씨가 작곡한 노래로 3.15부정선거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마산시민들의 의기와 당시 희생된 김주열 열사의 넋을 기리는 노래이다.
“원통하게 죽었고나 / 억울하게 죽었고나 / 잊지 못할 삼일오는 / 그 누가 만들었나 / 마산시민 흥분되어 / 총칼 앞에 싸울 적에 / 학도겨레 장하도다 / 잊지 못할 김주열 / 무궁화 꽃을 안고 / 남원땅에 잠들었네”(가사 1절)
특히 마산 시민대표 엄두영 씨는 “김주열이 마산 시민이었다면 아마도 훨씬 더 정당한 평가와 대우를 받았을 터인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과 함께 “1960년에 첫딸이 태어났는데, 그해가 경자년(庚子年)이었다. 그해 김주열의 죽음과 그로 인해 촉발된 4.19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첫딸의 이름을 경자로, 그 이듬해 둘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이름을 김주열 열사를 기리기 위해 주열이로 지었다”고 전하며, 남다른 김주열 열사와의 인연과 추모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사회를 보던 김영만 행사준비위원장은 “지난 3월 28일, 국가에서 3.15의거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을 했다. 그리고 지금 마산 시내 곳곳에는 3.15의거일 국가기념일 제정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3.15의거에 떨쳐나섰다가 희생당한 김주열 열사의 범국민장이 있는 오늘 마산시장, 마산부시장, 경남도지사 등 국가 기념일 지정을 환영한다고 반색하며 떠들썩하게 환영의 뜻을 전했던 인사들이 일언반구 대꾸도 없고, 추모식 자리에 콧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정부 및 지자체에서 지원은커녕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이번 범국민장을 준비하게 되었다”며 분기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후 추모시 낭독에서는 시인 최정규 씨가 ‘김주열, 그는 역사의 눈이다’를 낭독했고, ‘김주열 열사 추모사업회’ 백남해 마산대표가 대표 인사를 마친 후, 2부 행사로 예정된 범국민장에 앞서 김주열 열사의 초혼의식을 치렀다.
또한, 초혼의식은 원래 무당들이 집전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유족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인 관계로 무당이 아닌 전문 무용수들로 구성된 4인의 초혼무로 대체되었다.
한편, 1부 추모식이 끝난 후에는 장례위원회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행사에 참여한 1000여명의 점심 식사가 제공되었는데, 김영만 행사준비위원장은 “장례식에 오신 분들께 점심식사라도 대접해야 할 텐데 어찌 해야 하는 고심을 하던 중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사람의 후원으로 제공된 도시락이 준비되어 마음이 가벼웠다”며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였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고 전하며 고마운 마음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