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 말씀’보다 확실한 신변보장은 없다

<장창준의 통일돋보기 24> 3대 조건, 관광 재개가 목적인가 거부가 목적인가

2010-03-22     장창준

금강산 관광이 좌초위기에 처해있다. “이제 관광길이 열리는가 마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여하에 달려 있다”고 금강산 관광을 총괄하는 북측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이 19일 상보를 발표했다.

지난 3월 4일 아태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측 당국이 금강산 관광길을 계속 막을 경우 모든 합의 계약의 파기, 남측 부동산 동결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지난 18일에는 금강산 관광 지구내에 부동산을 소유중인 남측 인사들을 소집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몰수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이후 세번째 경고이다.

물론 2008년 12월 개성공단에 대한 ‘경고 조치’ 이후에도 개성공단이 정상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북측의 경고 역시 ‘금강산 관광 사업 파기’ 보다는 ‘남측의 결단을 촉구’ 의도일 수도 있다. 다만 금강산 재개와 관련한 남과 북의 입장차가 전혀 좁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포인트가 있다.

남측은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 ‘신변안전보장 제도 마련’이라는 3대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측은 3대 조건은 모두 해소되었다며 4월부터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자고 주장해 왔다. 지난 2월 8일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에서도 이같은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고 말았다.

당시 실무회담에서 북측은 금강산 피격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유감을 표명했으며, 남측의 공동조사 제의에 대해서도 “현장은 와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만 “군사통제 구역은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남측은 신변안정 보장 요구에 대해서도 “최고수뇌부가 관광객 안전을 특별히 담보한다고 했는데 더 이상 어떻게 안전을 담보하느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2월 실무회담 이후 “이번에 남북이 만났다는 것만 갖고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국민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금강산 관광이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고 발언했다. 신변안전에 대한 남측의 집착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응과 관련해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북측의 합의 위반을 강조해 왔다. 어떤 합의를 하건 합의 자체보다는 이행이 중요한데 북측이 이행 약속을 쉽게 어긴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3월 1일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이 남한을 단지 경제 협력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북한은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타난 북한의 행태를 보면 (남한으로부터) 물자와 경제 지원 등 얻어갈 것만 얻어가고 중요한 정치문제는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것”이라고 부연설명하기도 했다.

북측과의 합의서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서 ‘신변안전과 재발방지 대책’을 명문화하는 합의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 약속도 신뢰하는 것 같지 않다.

지난 해 8월 김정일 위원장은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만나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이 철저히 담보될 것”이라는 ‘특별조치’를 취했다.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조치’를 신뢰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이미 김정일 위원장과 북측은 ‘남측 인원들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과 북측지역 체류를 원상복귀’하고 ‘북과 남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을 추진하기로 한 약속을 지킨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대로 북측은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북측의 군사지역에 대한 현장조사는 남측의 무리한 요구였다는 점에서 현실화되기 어렵다. 다만 군사지역을 제외한 현장조사는 북측이 2월 8일 회담에서 수용할 의사를 피력했다. 재발방지와 신변안전 보장 역시 북측에서 어떤 문서나 합의서, 약속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이 ‘특별조치’를 내렸다는 점에서 남측의 요구는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3대 조건은 ‘회담 재개’ 조건이라기보다는 ‘회담 거부’의 조건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는 입장이 진정한 것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3대 조건을 뒤로 미루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볼 일이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 이후 보다 안전한 금강산 관광을 위해 필요한 협의를 계속 진행시키는 것이 진정성 있는 대북 정책인 것이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24호]와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