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전작권으로 미국과 맞짱뜨나?

<장창준의 통일돋보기 21> 보수층 이탈, 전작권 재검토로 막으려

2010-02-08     장창준
최근 한국과 미국 사이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전이 전개되고 있다. 발단은 남북 정상회담과 6자회담의 연계 문제였다. 한국을 찾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는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연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드시 조율해야 한다”고까지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의 외통부는 MB 정부는 연계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MB 정부가 굳건한 한미 대북공조를 주창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상황이다.

전작권 관련한 문제에서도 한미 양국은 부딪치고 있는 양상이다. MB 정부가 커트 캠벨에게 전작권 시기 연기를 위한 재협상 여부를 타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나오자 한국 정부는 부인했지만 커트 캠벨이 3일 미 대사관 공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한 발언을 한 것을 보면 한국 정부의 재협상 요청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당시 캠벨은 “(한국 내)보수층과 군 원로 등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전작권 반환에 따른 우려”를 언급하며 “양국 고위 지도자 간에 더욱 대화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발언하여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커트 캠벨은 “전작권 전환은 예정대로 한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국 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우려를 잘 알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작권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외통부 김영선 대변인이 같은 날 “전작권 전환 문제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양국의 입장에 따라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역시 “전작권 이행사항을 평가하기로 한 조항이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면 기존 합의안에서도 재검토가 가능하다”고 발언함으로써 논란을 확대시켰다.

어찌된 일일까. 우리는 최근 전개되는 한미 엇박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해야 할까. 분명 한미 사이에 문제는 있다. 무슨 문제이길래 한미 양 당국자들 사이에 이토록 첨예한 입장차가 나타나는 것일까. 이제 그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퍼즐의 조각을 맞출 때이다.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빤한 거짓말, 왜?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언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는가. 비핵개방3000과 그랜드 바겐 자체가 남북 관계와 소위 ‘북핵문제’를 연계시킨 것이었는데 말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MB의 대북 접근이 180도 바뀐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정상회담을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에게 무언가 요구사항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즉 ‘남북정상회담을 6자회담과 연계시킬 테니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라’는 것이다. MB가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빤히 드러나보이는 거짓말로 미국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는 그 답을 너무 쉽게 보여주고 말았다.

커트 캠벨이 한국에 온 바로 다음날 전작권 이양 시기 재검토 협상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커트 캠벨은 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3일 미대사관에서 ‘한국측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 논의할 것이다’라는 원론적 발언이면 충분히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보니 상황이 그게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그 다음날 유명환 외통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전작권 반환은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MB 정부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카드는 실로 막강한 것이었다. 한국의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전작권 문제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양국의 입장에 따라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받아쳤다. 정몽준 여당 대표의 지원 사격도 가미되었다.

그동안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조심스런 발언으로 일관하던 MB 관료들이 2월 5일부터 남북 정상회담을 역설하는 상황 반전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월 5일 정운찬 총리가 국회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이고 여러 인도적인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발언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나 비핵화 문제가 해결안되도 정상회담을 추진하느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비핵화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한다는 조건에서 정상회담은 가치있다”고 답변했다. 비핵화 문제에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후퇴한 듯한 발언이었다. 즉 단순도식화하자면 과거엔 ‘선 6자회담, 후 남북정상회담’의 입장이었으나 이날 정운찬의 발언은 ‘선 남북정상회담, 후 6자회담’이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역시 “송환을 추진해야 한다”면서도 “아니면 정상회담에서 이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주호영 특임장관 역시 같은 날 “이 대통령이 마음을 먹으면 연내에도 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다”고 발언하고 “(남북정상회담과 6자호담의 연계 문제는) 확인해봤는데 서로 연계하지 않는다 정부 방침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쐐기를 박았다.

현인택 통일부장관도 장소 문제에 대해 “북핵 해결의 실질적 성과가 있든지 인도주의적 문제에 해결이 있다면 장소는 융통성을 보이는 어려운 결단을 할 수 있다”고 발언함. 그는 특히 북한이 제의한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이 핵 폐기에 확고한 결심이 서고 그랜드 바겐의 틀에 들어올 수 있다면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전작권 문제에 대한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관계 장관들이 총동원되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것은 아닐까.

전작권 재검토에 대한 MB의 짝사랑

그렇다면 왜 MB는 전작권 문제에 이토록 매달리는 걸까. 이 문제의 해답 역시 의외로 간단히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때 MB를 지지하던 보수층의 이탈 가능성을 전망했다. 보수논객 조갑제 씨는 MB가 평양으로 가면 탄핵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한반도 정세 변화 상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수층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가 바로 전작권 재검토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렇게 했을 때라야 지지율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당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친박’ 과의 정치 투쟁도 압도할 수 있으며, 야당과의 대결 구도에서도 우위를 확보해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도모할 수 있고 차기 대선 구도도 유리하게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MB는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우선 전작권 전환 문제는 미국의 21세기 국방전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전략적 유연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새로운 국방전략 상 전작권 전환 문제는 미국도 양보할 수 없는 카드인 것이다. 최근 발표된 QDR 2010 초안에서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은 전진배치에서 가족동반 전진주둔으로 변화할 것”이라며 이같은 변화가 완료되면 “주한미군은 지구적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유용한 수단으로써 한국에서 차출되어 다른 지역으로 배치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비록 4일 주한미군이 보도자료를 뿌려 “미군 부대 병력을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전개할 계획이 현재는 없다”면서 “한국에서의 근무정상화 계획은 2010년대 후반에 가서야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레토릭이 불과하다. 이미 주한미군은 ‘가족동반 근무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2006년 한미 간에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원천 무효화하고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정하고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는 전작권 이양 재검토는 메아리없는 외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원천 무효화한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작권 외에 불거지는 한미간 현안들

최근 한미 간에는 전작권 외에도 급변사태에 대한 한미 연합훈련 문제, MD 참여 문제 등 다양한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이 지난 해부터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 연합훈련을 제안했으며, 우리 군 당국자들은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MD 문제는 이미 2월 1일 미국방부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계획 검토보고서에서 “한국은 미국 BMD 체제의 중요한 동반자 국가”라며 “한국이 육상 및 해상 방어 시스템, 조기경보 레이더 및 지휘 통제 시스템을 획득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고 명시함으로써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런데 4일 미 국방부가 탄도미사일방어계획에 한국이 참여하는 범위와 수준을 놓고 계속해서 한미 양국간에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한국 국방부는 “MB 참여문제는 한반도의 안보상황과 국제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할 사안”이라며 “미국 MD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발언했다.

이와 같은 논란들이 전작권 논란과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 관계 속에서 촉발되고 있는지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들이 전작권 문제와 관련한 한미 양국 사이의 논란과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면서 한미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남북 정상회담이 양날의 칼이 되어서는 안 될 일

결국 이명박 정부의 정략적 접근으로 인해 남북 정상회담이 양날의 칼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 마저 불확실하게 만드는 씨앗을 이명박 정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남북 정상회담을 ‘북핵 문제’와 연계시킨 이명박 정부가 이젠 국내 정치를 이유로 한미관계까지 남북 관계에 연계시킴으로써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미관계를 축으로 하여 전쟁과 평화, 통일과 분열의 역사를 반복해 왔다. 북미 관계가 진전되려는 시점에서 남북 관계도 정상회담이 회자될 정도로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전개되려는 시점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게 되어 있다. MB 집권 2년 동안 악화되었던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는 이명박 정부를 충분히 평가할 것이다.

평화와 통일, 민생과 민주주의를 바로 잡는다면 집나갔던 지지율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과거 김영삼 정부가 남북 관계에 국내 정치 변수를 개입시킴으로써 역효과를 냈던 역사적 경험을 이명박 정부는 반추해야 한다.

그 같은 교훈을 찾지 못하고 남북 관계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든다면,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을 양날의 칼로 만들어 그 성과를 반 토막이라도 낸다면 이명박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범죄자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21호]와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