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장관의 외교파트너는 유령?

<장창준의 통일돋보기 19> 유명환 장관의 '근거없는 낙관론'과 미국의 '제동'

2010-01-25     장창준

6자회담이 조속히 열렸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낸 것이라면 유명환 장관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에 다른 정치적 의도를 갖고 근거 없는 ‘6자회담 기대론’을 펼치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22일 유명환 장관은 내외신브리핑에서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조건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여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조만간 구정 전후에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관련국들 간 계속 그런 방향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고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은 바로 당일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22일자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미 국무부 고위관리는 “미국은 6자회담이 신속히 재개되길 원하지만 아직 북한에게서 6자회담의 복귀와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받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유명환 장관의 ‘낙관론’에 대해 제동을 거는 답변이 분명하다.

미국을 방문중인 우리 정부의 당국자(아마도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평화교섭본부장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위성락 본부장은 현재 미국을 방문중에 있다.) 역시 “6자회담 재개에 대해 비관적 전망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낙관적 전망을 할 근거는 없다”고 유명환 장관의 ‘낙관론’을 일축했다.

결국 유명환 장관은 ‘유령국의 유령 당국자’와 6자회담 개최에 대한 낙관적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공조를 과시해도 부족한 마당에 한미 고위 당국자들이 서로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왜 유명환 장관은 ‘근거없는 낙관론’을 펼친 것일까. 왜 미 국무부와 (위성락 본부장으로 보이는) 방미중인 우리 정부 당국자는 한미 엇박자로 보일게 뻔한 데도 유명환 장관의 ‘낙관론’에 제동을 건 것일까.

유명환 장관은 지난해 12월에도 ‘설 이전 6자회담 개최’를 언급한 바 있다. 그만큼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 당위성을 설파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명환 장관의 지난 이력을 보면 그렇게 단순 해석을 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된다. 유명환 장관은 북미 대화가 진전될 때마다 부정적 견해를 표출했던 인물이다.

클린턴 방북 이후 북미 양자접촉을 위한 물밑 대화가 진행되고, 남북 관계 역시 호전되는 기미를 보일 때 유명환 장관은 ‘북핵문제는 한국 정부의 문제’라며 북미 대화 진전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북핵문제는 한국 정부의 문제’라는 발언은 곧 ‘한국 정부의 동의 없는 북미 대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2일 발언 역시 비슷한 뉘앙스로 읽힐 만한 상황이다. 미국이 위성락 본부장을 미국으로 불렀다는 것은 최근 밝혀진 북측의 입장 - 제재가 풀려야 6자회담에 나갈 수 있으며,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을 시작하자 -에 대한 한미 간의 협의를 위한 것이다. 유명환 장관의 발언은 한미 간의 협의의 방향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설을 전후해서 6자회담을 개최할 수 있도록 일을 추진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그래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제재를 해제하거나 제재를 완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미국 정부의 즉각적인 ‘제동’을 이해할 수 있다. 이미 클린턴 국무장관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제재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같은 정책이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닐지라도 미국 정부는 좀 더 유연한 대북 접근을 취함으로써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추진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유명환 장관은 미국의 그같은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근거없는 낙관론’을 편 것이 아닐까. 또한 미국측은 유명환 장관의 그같은 의도를 간파하고 그같은 견해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속한 진화작업에 나선 것은 아닐까.

유명환 장관의 발언 의도나 미 관계자의 반박성 발언의 의도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있다. 유명환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한미 간의 대북 접근에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위성락 본부장의 발언까지 감안한다면 한국 정부 내에서도 엇박자가 나고 있다.

한미 간의 ‘엇박자 공조’가 향후 6자회담과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또한 한미 간의 ‘엇박자’는 향후 어떻게 수렴될 것인가.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유령과 대화를 나눈 유명환 장관은 우리에게 또 다른 관전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19호]와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