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 북송의 의미
2000-09-17 연합뉴스
우리에게 비전향 장기수들의 존재와 삶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15,6년 남짓 되었을까, 그것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졌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실제 비전향 장기수 당신들도 이처럼 전격적으로 북송될 것이라 예상치 못했던 일들로 서둘러 가는 발걸음이 간단치만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지난 90년대 내내 비전향 장기수 북송 문제는 남북 공방 속에 물밑에서 계속 논의되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은 남북화해의 오작교
알려진 바와 같이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북송된 이인모 노인을 계기로 북한에서는 "비전향 장기수분들을 다 모시고 와야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인모 노인의 북송 후 이어진 대북 쌀지원 과정에서 터진 인공기 게양사건 등은 남한내 여론을 악화시켰고, 연이어 김일성 주석 사망후 조문파동은 남북냉전을 고조시키는 계기로 결정적이였다.
김 주석 사망후 북한은 꼬박 3년을 유훈통치 아래 조문파동을 일으킨 남한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아래의 보도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은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 대한 북한의 관심 정도이다.
1996년 7월 중국 연길 관광중 취기로 입북한 소설가 김하기씨는 재판정에서 "남한내 비전향 장기수 명단 등을 북한에 알려준 혐의"로 구속되었다. 또한 1997년 8월 15일 월북한 오익제씨는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들의 근황을 전하고 동시에 이들의 북송을 추진한 혐의" 로 오씨의 주변 인물들이 수사를 받았다. 이는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관심을 단편적이나마 알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러던 북한이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되어갈 즈음에 "비전향 장기수 무조건적 북송"을 화해의 표시로 제기해 왔다.
1998년 11월 15일 안병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헌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안 부위원장은 "정상간의 만남은 무언가 풀려 국민에게 알려주는 게 있어야 이뤄질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 조건으로 "디제이가 진정한 연북화해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북화해정책의 구체적 표시는 "무엇보다 비전향 장기수를 먼저 보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어진 1999년 2월 22일 박상천 법무부장관의 비전향 장기수 석방 발표와 동시에 인도적 차원에서 북송을 검토할 용의가 있음을 대내외에 표명하자, 북한은 적십자 총재 앞으로 편지보내 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이 편지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대목은, 남쪽이 비전향장기수들을 가족의 품으로 보낸다면 "얼어붙은 북남관계를 풀고 폭넓은 대화와 접촉의 문을 열어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적시한 부분이다.
이처럼 북한은 조문파동이후의 북한 주민의 대남 적대감을 햇볕정책이란 이름아래 제공되는 대북지원형태가 아닌 "비전향 장기수 북송" 조치로 해소하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비전향 장기수 북송 조치는 조문파동후 북측 주민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화해 조치로서 남측에 대한 화해의 전제조건이자, 남북정상회담을 가능하게 했던 또 하나의 오작교였다.
정부, 이미 장기수 북송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별개
남한 여론은 박상천 법무장관의 "특단의 조치 강구중"이라는 발표가 나가자, 이인모 노인 북송후 북한의 악용 사례를 들며 상호주의원칙을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때 분명 정부의 입장은 국군포로 문제가‘전후 처리’(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에 뿌리를 두고 있어‘맞교환’의 대상으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내부적으로 이산가족 차원의 접근법을 검토해 왔다.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 논의를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의 상호관심사를 폭넓게 다루는 적십자 채널을 제안하고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나 생사확인·서신왕래 약속 등을 받아내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것이 작년 2월이였다
6.15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평양에서의 2차 장관급 회담 논의 사항의 대부분이 정부가 미리 준비하고 예측해 왔던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미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가 남한 여론내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강하게 요구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비전향 장기수 북송`이란 오작교를 놓았듯이, 이제 2045년을 0.75평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 장기수들의 머리를 밟고 선 그 책임을 다해야 함이 마땅하다. 지난날 국민의 여론을 이유로 널뛰던 대북정책은 이제 뿌리를 내려야 한다. (통일뉴스 박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