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압박’ 카드는 ‘북미담판’ 카드보다 유용할까
<장창준의 통일돋보기 ④> '그랜드 바겐'에 '일본인 납치' 추가
2009-10-13 장창준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하토야마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그랜드 바겐’ 공조를 구축했다.
그런데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소위 ‘일본인 납치 문제’가 “포괄적 패키지 속에 당연히 들어간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다”고 발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핵포기 압박’과 하토야마 총리의 ‘납치 문제 압박’이 결합된 것이다. 소위 ‘한일압박론’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한일정상회담에서 MB는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며 6자회담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10월 6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의 ‘조건부 6자회담 복귀’ 의사 표명에 “북한의 진의를 더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불과 3일만에 대통령이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MB 정부는, 최소한 MB는 북한이 북미 양자회담 후 6자회담에 나설 것이라는 확신이 선 듯 하다. 6자회담이 재개되었을 때 MB가 강조했던 ‘북핵주도론’을 펼치기 위해서는 우군이 필요했다. 믿었던 미국은 우군을 자처하지 않았다. ‘그랜드 바겐’이라는 회심작을 내놓았지만 미국의 반응은 “잘 모르겠다”였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일본인 납치 문제의 6자회담 의제화’는 민주당이건 자민당이건 일본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고수해야 할 제1원칙이다. ‘북핵주도’를 위해 ‘그랜드 바겐’을 관철해야 하는 것은 MB의 제1원칙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한일 압박 공조가 이루어졌다.
이는 분명 1차적으로는 다음날 정상회담을 할 중국 지도부를 향한 것이었고, 2차적으로는 미국을 향한 것이었고, 3차적으로는 북한을 향한 것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압박공조’를 강화하고 있으니, 그리고 6자회담은 곧 열릴 것이니 한일 양 정상의 합의사항을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유념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1차 목표는 실패했다. 10일 베이징에서 열렸던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론적 입장에는 강력한 합의를 도출했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의제로 포함한 그랜드 바겐’ 즉 한일 정상의 합의 사항은 중국측으로부터 ‘협의를 계속하자’는 지극히 외교적 멘트를 받아내는 데 그쳐야 했다.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제안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중일 정상회담의 성과를 브리핑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원자바오 총리는 “이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안에도 개방적 태도로 적극 협의해 나가겠다”고 발언했을 뿐이다. ‘협력’과 ‘협의’는 동의어가 아니다.
그러나 ‘불도저 MB'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북미 양자 회담도 고위급에서 실무급으로 낮추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마당에 더욱 ’압박 패달‘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MB가 읽지 못하는 혹은 애써 읽으려 하지 않는 ’미국발 메시지‘가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회담에 신중하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과의 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미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천명했다. 이로써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는 성과 예측 전망에 따라 북미 양자회담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양자대화를 천명함으로써 이제는 북미 양자회담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어떻게든 북미 대화의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기술적 문제의 외교적 문제로의 전환이다. 즉 ‘북미담판’은 북한만의 요구가 아니라 미국의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가세했다.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양자와 다자 채널을 통해 관련 해결을 희망한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북미담판론’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미 한번 실패를 맞본 ‘한일압박’ 카드로 한층 성능업되고 있는 ‘북미담판’ 카드를 누를 수 있을 것인가. 굳이 답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다.
* 본 글은 새세상연구소 통일돋보기4호에도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