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슬픔을 넘어 역사가 되다

DJ와의 마지막 이별 앞둔 시민 표정

2009-08-22     박현범 기자

▲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가족단위로 국회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8살, 3살 난 아들의 손을 잡고 빈소인 국회를 찾은 신소영(40) 씨는 잔디광장 한켠에 늘어서 있는 고인의 옛 사진들을 보며 옛 추억에 잠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대선후보 단일화가 실패했던 1987년 대선 때, 전주의 한 유세장에서 처음 '김대중'이란 사람을 알게 됐다. 누군지도 모른 채 연설을 듣고 있다가 청중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던 ' 기호 3번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의 손을 잡은 아주 짧은 기억. 신 씨는 찰나의 기억을 22년간 간직하며 김 전 대통령을 바라봐 왔다.

"항상 안타까웠어요. 외국에서는 굉장히 인정받는 대통령이고 많은 업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깎아 내리는 국내 언론들을 봤을 때... 지금 가시면 안 되는데. 지금은 아니죠. (눈물) 2, 3년만 더 사셨으면..."

신 씨는 "노무현 대통령님도 그렇게 돌아가시고 지금 시국은 그렇게 좋은 시국이라고 생각이 안 든다. 현 정권도 마찬가지고"라며 "이럴 때 어른으로서 가르침을 주시고 사람들한테 뭔가 의지가 될 수 있는 등불과도 같은 역할을 2, 3년만 더 해주신다면 나머지 사람들이 힘을 길러내서 그 역할들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아쉬워했다.

흐르는 눈물을 다잡은 신 씨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몫으로 남겨놓은 그 분의 생각들을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당신의 행동하는 양심의 가족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각종 저서들도 추모객의 발길을 잡았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김 전 대통령과 연배가 비슷한 김옥분(84) 할머니는 한낮 무더위에 국회광장을 돌아본 것이 힘겨웠는지 고인의 추모사진전 한쪽 귀퉁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흰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가슴에 추모 리본을 단 김 할머니는 불현듯 고인의 죽음에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사선을 넘나드는 파란만장 했던 삶을 헤쳐 나와 내외의 칭송을 받는 대통령으로 이승을 떠나는 것이 감사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돌아가셔서 감사하죠. 젊어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그 일을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 대통령으로 이렇게 가시니 감사할 뿐이고, 원통할 것도 없고..."

김 전 대통령 국장 5일째인 이날 국회광장은 휴일을 맞아 고인을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찾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특히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추모사진전과 40여점의 유품들이 전시된 24동의 천막은 그 자체로 '역사관' '기념관'이었다.

머리에 백발이 서린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인과 함께 살아온 '격동의 세월'을 회상했고, 중년의 부부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노라 다짐하며 초.중.고 자녀들에게 한 편의 '위인전'을 읽혔다.

"김대중 대통령님!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켜낸 당신의 눈빛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지켜내겠습니다. 존경합니다."
"할아버지, 우리나라를 보호해주시고 통일해조서 너무 감사함니다. 우지동 드림"
"아빠가 그러던데 진짜 훌륭하신가봐요. 저는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걸 정말 슬프게 생각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다슬이가 김대중 대통령님께"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님 추모의 벽'에 남겨진 메모 중)

▲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님 추모의 벽'에 한 아버지와 딸이 추모의 글을 붙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추모객들은 김 전 대통령이 전남 신안군 하의면의 한 시골집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납치돼 사선을 넘고,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끝내 15대 대통령에 당선돼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루는 모습을 천천히 둘러보며 고인의 발자취를 뒤따라갔다. 현대사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 듯 한 칸 한 칸 자리를 옮겼다.

고인이 생전에 썼던 지팡이와 신발, 시계 등 유품을 비롯해 직접 연설문을 수정한 원고, 평전.통일론 등 각종 저서들도 추모객의 발길을 잡았다. 유품이 전시된 각 천막에는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 등 10여 명이 배치돼 추모객들에게 유품의 내력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임시 '김대중 기념관'인 셈이다.

시민들은 소박한 김 전 대통령의 유품을 보며 "서민들과 똑같이 사셨네"라고 감탄해 하기도 했다. 국회 잔디광장 곳곳에선 전시품들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는 것은 물론 공사가 한창인 영결식장을 배경으로 자신과 자녀들의 추억을 남기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관광지에서 볼 법한 기념촬영 기사도 등장했다.

국민들은 이미 김 전 대통령과의 이별에 대한 슬픔을 넘어 '역사'로서의 '김대중'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었지만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은 계속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