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조문단 대통령 예방마저 ‘상호주의’
<초점> "MB 예방은 NO, 현인택 면담은 YES?"
2009-08-21 김치관/정명진 기자
북측 특사 조문단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 성사 가능성은 높은 편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예방은 아직까지 부정적 기류가 지배적이다.
김기남 “남측의 누구라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겠다”
북측은 지난 10-17일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의 합의 형식으로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백두산관광 추진, 개성공단 활성화는 물론 추석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
이어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전을 보내고 최고위급 ‘특사 조의방문단’ 파견을 발표한데 이어 특사 조문단 도착 하루 전인 20일 북측 지역 통행과 체류를 제한해온 ‘12.1 조치’ 해제를 전격 발표했다.
일련의 조치들은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21일 오후 도착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북측 특사 조문단은 국회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조문했으며, 김형오 국회의장의 면담요청에 응해 환담하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고인의 북남화합과 북남관계 개선의 뜻을 받들어 할 일이 많다. 우리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도서관에서 이희호 여사와 면담하면서 김기남 비서는 “여러 나라에서 조문단이 오겠지만 남보다 먼저 가서 직접 애도의 뜻을 표해야 한다”며 “사절단의 급도 높이라고 했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김기남 비서는 “남측의 누구라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겠다”고 말했고 홍양호 통일부 차관에게도 이같은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북측의 최근 기류를 보면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뚜렷하고 특사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 예방은 물론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 용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의 입장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주면서 이쪽 진심이 뭔가 테스트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제안을 먼저 한다기보다...”
이에 비해 남측 정부의 태도는 다소 냉랭하고 복잡하기까지 하다.
현정은 회장이 합의문을 가져온 뒤 20일 정부는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안했고, 특사 조문단의 남북간 연락을 위해 판문점 적십자 전화를 재가동하자고 제의한 것이 전부이다.
21일 오전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현재까지 별도의 면담 일정 등은 정해진 것이 없다”면서 “현재까지 북측이 요청해온 일정도 없다”고만 말했다.
이날 밤에도 통일부 관계자는 “오늘 밤에 북측 조문단과 만날 계획 없다”며 “현재까지 북 조문단과 만나는 문제는 정해진 것은 없다”고 확인했다. 또한 “내일 오전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전에 당연히 밝히고 공개적으로 만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먼저 예방이나 면담을 제안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지금은 특별히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제안을 먼저 한다 이것보다 자연스럽게 협의가 이뤄진다면 합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몸을 사렸다. 사실상 우리 정부가 먼저 예방이나 면담을 제안할 뜻이 없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청와대 “친서나 메시지가 있으면 몰라도”
이처럼 북측의 적극적인 대화의지에 비해 우리 정부가 냉랭한 태도를 유지하며 북측이 먼저 제안하길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는 복잡한 셈법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큰틀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없고 남북 당국간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을 실명을 거론하며 강도 높게 비난해온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전 같으면 그 정도 고위급이 오면 대통령이 당연히 만났겠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우리 대표단이 가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일종의 상호주의를 내거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특사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21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저쪽의 요청이 있으면 만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먼저 만나자고 할 필요는 없다. 열린 자세로 당당하고 의연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친서를 가져왔거나 따로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몰라도”라고도 했다.
심지어 이 핵심 관계자는 “외국에서 누가 온다고 대통령이 다 만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외국에서 오는 손님하고 같이 생각하면 된다”면서 “다른 외국 손님과 같이 섞어서 만날 수는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정창현 교수는 “우리 정부는 북측 의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고 보수층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짚었다.
"MB 예방은 NO, 현인택 면담은 YES?"
상대적으로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의 면담 가능성은 더 높아 보인다. 현 장관은 김양건 부장을 정확히 카운트파트로 인식하고 있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현-김 면담이 유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런 모습을 피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실속은 챙길 수 있고, 특사 방문단을 냉대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다.
정창현 교수는 “청와대를 공식 방문하는 것은 우리 정부 기류로서 가능성이 크지는 않을 것 같다”며 “현인택 장관 만남 정도는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북측 특사 조문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이명박 대통령 예방에 관한 임무를 부여받고 왔다면 이를 제안할 것이고 이에 대한 수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북측 조문단 명칭이 ‘특사’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아무래도 서로가 지금 자존심 차원에서 뜸들이고 있는데, 1박 2일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므로 직간접 대화는 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양무진 교수는 “북측이 메시지를 그만큼 보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며 멍석까지 깔아 줬는데, 정부가 기다리는 것은 굴복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며 “정부가 대범하게 접근하면 남북관계가 조문정국으로 오히려 북미관계보다 앞서가는 길이 열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절호의 기회를 앞두고 정부가 복잡한 셈법을 거듭하고 있지만 북측 특사 조문단은 내일(22일) 오후 2시 김포공항을 통해 북으로 떠날 예정이다.
양무진 교수는 “정부가 국장을 해놓고 조문단을 만나지 않으면 손님 맞는 예의가 아니다”며 “대범하고 통크게 접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와 폭을 결정지을 수 있는 만큼 지나치게 엄격한 ‘상호주의’보다는 포용성 있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