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마지막 일기] 행복했던 노년의 DJ, 盧 서거 이후...

2009-08-21     박현범 기자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전 노년은 평온했다. 85세 노년의 일기를 되돌아보니, 미흡했으나 후회는 없었다. '좋은 아내'가 건강히 옆에 있고, '세계'가 찾았다. 한 마디로 행복했다.

21일 일부 공개된 올해 김 전 대통령의 일기장을 보면 이희호 여사와 함께 동교동 사저에서 일상을 보낼 때 입가에 머금었을 '흐믓한 미소'가 그려진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파란만장의 일생... 미흡한 점 있으나 후회는 없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김 전 대통령은 일기에서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사진-장례위원회 제공]

김 전 대통령은 85회 생일을 맞은 1월 6일 지나온 생애를 되돌아봤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일기에는 인생에 대한 성찰과 남은 생에 대한 다짐이 곳곳에 서려있다.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1월 14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1월 15일)

김 전 대통령은 용산참사 소식에 상당히 가슴 아파했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1월 20일자 일기에는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며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고 적었다. 그는 구정에도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고 걱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같은 삶에 대한 철학을 손자에게도 강조했다. 그는 5월 30일자에서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적었다. 생전 많이 아낀 것으로 알려진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의 장남 종대(23) 씨는 지난 12일 군제대 후 줄곧 김 전 대통령의 병상을 지켰고, 20일 입관식 후 빈소가 국회로 옮겨질 때 영정을 들었다.

소소한 일상에 행복했던 노년... 범사에 감사했던 DJ

▲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김 전 대통령 일기 중) [사진-장례위원회 제공]

김 전 대통령의 노년이 소소한 일상 속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도 일기장 곳곳에 배어있다.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4월 24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5월 1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5월 2일)

김 전 대통령은 종종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며 올해 건강관리에 특히 유념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정도로 쇠약해졌었다. 그러나 행복했다. 그는 5월 20일자에서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며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고 했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어 행복했던 김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를 향한 그의 애틋한 사랑은 흘러 넘쳤고, 서거 전 부부관계는 "결혼 이래 최상"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1월 11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2월 7일)

행복한 노년의 끝...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던 김 전 대통령의 행복감은 5월 23일로 사그라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해 서거한 이날 김 전 대통령은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고 썼다.

김 전 대통령은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며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고 분개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앞선 4월 18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며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고 썼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영결식인 5월 29일자에서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