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송환 희망자, 비전향 장기수 김종하 운명

"죽어서라도 가고 싶다"...하나 둘 노환으로 세상 떠나

2009-06-05     정명진 기자

북녘에 있는 고향으로 송환을 희망했던 비전향 장기수 김종하(81) 씨가 지난 4일 밤 11시 52분경,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했다.

고인은 2000년 장기수 1차 송환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2001년 '장기수 2차 송환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2차 송환 대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고향으로 가겠다는 희망을 품어왔다.

2년 전부터 당뇨 등으로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원영민 '대구경북지역양심수후원회' 간사는 "병석에서도 고향에 가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계셨다"면서 "이후에 병원생활이 더 힘들어졌지만 '죽더라도 가야 하지 않겠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고 전했다.

남북간 관계 악화로 2차 송환이 전혀 추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송을 원하는 장기수들이 노환으로 세상을 하나 둘 뜨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2차 송환 희망자는 모두 33명이었으나 이중 김종하 씨를 포함에 7명이 질병이나 노환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김종하 선생이 오랜 옥고의 후유증을 앓다가 북쪽의 고향에 올라가서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면서 "남은 분들도 다 나이가 많으시고 쇠약한데 연이어 비보를 들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송환문제는 6.15남북공동선언 합의사항이고 인도주의 문제"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야기 자체도 되지 않고 있어서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고인은 1929년 9월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북한 인민군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충남 대둔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다가 1955년 체포, 1983년까지 29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만기 출소했다.

빈소는 대구 중구 남산 동 적십자 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월 6일 오후 1시다.

다음은 故 김종하 씨의 악력이다.

▲ 비전향 장기수 故 김종하.
[사진제공-대구경북지역양심수후원회]
1929년 9월생,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남
1945년 이후(해방 이후) 민주청년동맹(민청) 활동과 자위대(마을 자체로 조직된 보위대) 활동
1950년 보위성 소속 기계화 부대인 603부대의 일원으로 전쟁 참여
1950년 말 사천에서 미군 폭격으로 인한 발목 부상으로 야전병원 후송 후 남원으로 이송, 이후 충남빨치산 근거지인 대둔산에서 도당 호위부대원으로 활동
1955년 1월, 체포, 사형구형 후 무기형을 선고
1960년 4.19 당시 20년형으로 감형, 출소할 때 쯤 전담반이 생기면서 7년형을 추가로 받음
1983년 6월 3일 만기 출소 함 (29년간 옥살이)
1984년 12월 소중한 인연을 만나 가정을 꾸림
2001년 2월 6일, ‘장기수 2차 송환 촉구 기자회견’에서 북송 의지을 밝힘
2009년 6월 4일 11시 52분경,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