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내야 하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현장> 봉하마을, 수 만 인파 조문행렬...식지 않는 추모열기
눈물과 회한 가득한 분향소 앞, 각계 인사 조문

2009-05-26     봉하마을=고성진 기자

▲26일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려하는 조문객들로 가득찼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임'을 보내는 발걸음은 봉하마을을 차고 넘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일째인 26일,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은 오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조문객들로 가득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1km여 남짓 앞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조문객들의 도보행렬은 습한 초여름의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끊이지가 않았다.

모내기가 끝난 논이 오른편에 한 눈에 들어왔고, 야트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사잇길로 한참을 걷고 나서야 빈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빈소 뒷 편으로 봉화산 사자 바위와 고인이 몸을 던진 장소인 부엉이 바위도 나타났다. 

큰 소리라도 날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몸짓은 분향소 앞에서 가지런해지고, 발걸음은 더욱 촘촘해졌다. 부채질을 하던 손에는 어느덧 국화가 쥐여져 있었다.

40여 명 단위로 분향을 하는 시민들은 생전에 웃는 모습으로 자신들을 맞이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시민들은 국화꽃을 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담담한 표정으로 슬픔을 억누르는 대다수의 모습 사이로 울음을 터뜨리며 오열하는 시민들도 눈에 띠었다. 붉은 눈가에 번지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구에서 남편과 함께 온 강순임(40) 씨는 "대통령님의 고뇌가 많이 느껴지고, 이렇게밖에 결정할 수 없었던 것에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다"면서 "가신 그 곳에서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있던 50대 여성도 "당신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안타까워했다.

평일인데도 오후 1시가 넘어가자, 조문객들의 숫자는 부쩍 늘어났다. 가족 단위는 물론, 대학생. 노인 등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조문객들의 성별과 연령대는 다양했다. 휴가를 내고 조문하러 온 직장인도 만날 수 있었다.

분향소에서 장례 관리 업무를 지원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어제 하루동안, 오후 5시까지 조문객 숫자는 17만 명 정도였는데 그 이후에 너무 많이 오셔서 숫자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했다. 아마 어제 하루만 20만 명은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주말은 이보다 훨씬 많았지만, 평일인데도 너무 많은 분들이 찾아 주신다"고 말했다.

그는 "대개 오후 11시가 넘으면 봉하마을 초입까지 행렬이 넘쳐나 새벽녘에나 행렬이 줄어든다"면서 "1시간에 평균 2만 명에서 3만 명 정도의 조문객들이 찾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분향소 옆으로는 수십여 동의 천막이 설치돼 조문객들이 간단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김해시 등 지역 주민들이 손수 마련한 국과 떡 등은 배식을 통해 조문객들에게 나눠졌고, 조문객들도 줄을 지어 차례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한켠에는 부산.경남 아고라에서 준비한 홍보 판넬이 놓여져 있었다. 종합부동산세 등의 폐해, 뉴라이트의 실태 등 누리꾼들이 마련한 판넬 주위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오종렬 상임고문을 비롯한 한국진보연대 소속 20여 명도 낮 12시 40분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각계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오전 11시 20분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빈소를 찾았고, 김효석 민주당 의원, 박영선 의원, 정연주 전 <KBS> 사장 등도 모습을 보였다.

한국진보연대 소속 20여 명도 낮 12시 40분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오종렬 상임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히 잊지 못 할 위대한 업적은 10.4선언"이라며 "우리의 벗, 서민의 대통령, 바보 노무현과 함께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10.4선언을 이행하는 일, 노무현 사랑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강실 상임공동대표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도 놀랍지만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이곳을 찾게 하는 힘에 다시 한 번 놀랍다"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뿐 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저항과 분노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백 만 촛불들이, 백 만 조문객들로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또 한 번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봉하마을 들머리에서 분향소로 가는 길목에 조문객들이 추모글을 적어 매달아놓은 노란색 리본이 줄지어 펄럭이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