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NYT회견 분석

2000-09-14     연합뉴스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귀국길에 오르기 직전인 지난 9일 미국 뉴욕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문제, 북한의 미사일 개발 문제 등 남북한, 북.미 간 주요현안과 관련 주목되는 발언을 했다.

11일자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데 따르면, 김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03년 이전에 남북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필요성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거듭 밝혔다.

또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지원을 대가로 미사일 개발계획을 `축소`하겠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북.미관계 개선의 중요한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회견 내용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시점을 2003년으로 처음으로 밝혔다는 점과 북한의 미사일개발계획 `축소`가 협상에 의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역시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같은 김 대통령의 구상은 현재 북한이 그리고 있는 그림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조율될지가 커다란 관심사이다.

< 2003년 이전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 >

김 대통령이 밝힌 평화협정 체결 구상은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고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국과 중국은 협정 당사국이 아닌 `지원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또 자신의 임기말인 2003년께, 가능하면 임기를 마치기 전에 남북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지원`하는 방식은 이른바 2+2 방식으로 이전에도 몇 차례 거론됐다. 이 방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북한측의 동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은 남북한 간에는 평화협정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우선 북측은 평화협정이 교전`국가` 간에 종전을 위해 체결되는 협정이라는 기본시각을 갖고 있다. 남북 간에는 지난 91년 12월 체결되고 92년 2월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선언으로 족하며 6.25전쟁 교전국인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 관계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는 시각에 기초한 것이다.

또 6.25전쟁을 남한과 전쟁이 아닌 `미 제국주의자`와의 `민족해방전쟁`으로 로 해석하는 북측으로서는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김 대통령이 말한 `2003년까지 평화협정 체결`도 비상한 관심을 끈다. 2003년은 김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이자 미국이 제네바기본합의문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 지원을 완료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2003년까지 경수로 완공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북한측은 벌써부터 `약속 불이행`에 대한 대가 지불을 요구하고 있으나 경수로 지원용 재원조달에도 쩔쩔매고 있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추가비용을 염출하기는 현재로서는 난망인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측이 `약속 불이행`에 경제적 보상을 하기가 어려운 만큼 `정치적 보상` 방안을 강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일찌감치 점쳐 왔다. 즉 북한과 관계정상화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 관계정상화에는 적대관계 해소가 전제되므로 그 전에 어떤 식으로든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김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2+2 평화보장 체제`든, 북측이 요구하고 있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든, 이번에 김 대통령의 `2003년까지 평화협정 체결` 언급이 나온 만큼 `2003년`은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으로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 북한 미사일 개발계획 조건부 `축소` >

김 대통령은 지난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서 거론됐던 `인공위성 발사 지원시 미사일 개발계획 포기설`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촉발된 북한의 조건부 미사일개발계획 포기설은 지금까지 진위 여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측에서는 `사실`이라고 강조해 왔으며 미국측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러시아측의 설명에 점차 동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지난달 12일 남한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 때 김 위원장이 `한 번 해 본 말`이라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한 자신의 `제안`이 농담조였다는 것을 밝혔는데도 이제는 김 대통령까지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미국측에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 대통령은 미사일 개발계획의 `포기` 대신 `축소`라는 용어를 선택해 러시아측 설명과 차이를 보였다.

만약 한.미 양측이 북한의 조건부 미사일 개발계획 `축소`에 목표를 둔다면 전혀 타협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의 로켓 개발이 어디까지나 평화적 목적, 예를 들어 평화적 목적의 우주개발용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것이라면서 로켓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남한 언론사 사장단에게 `로켓 연구해서 몇 억달러씩 나오는데 그거 안 할 수 있습니까`라면서 `(미국이) 돈 주기는 싫고 (우리) 과학자들의 연구는 막아야 하고 골치 되게 아프게 됐다`고 말했다. 바꿔말하면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면 로켓 연구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비친 것이다.

북측은 만족할만한 `보상`을 받는다면 로켓 판매(미사일 수출)를 포함 자체적인 인공위성 발사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로켓 판매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1년에 10억불씩 3년간 보상이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시험 유예 선언으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 가운데 일부를 완화시키는 보상을 이끌어 낸 전례로 볼 때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서도 만족할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일시적으로 유예할 가능성이 높다. 인공위성 발사 일시 유예가 로켓 개발계획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공위성 발사 지원을 대가로 미사일 프로그램을 축소하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제안을 신중히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제의가 현실적으로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북측이 제시한 방안은 `외국이 인공위성 2-3기를 대신 발사해 주면 미사일 개발계획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제의, 북측의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외국이 인공위성 2-3기를 발사할 비용을 지원해 준다면 자체적인 인공위성 발사를 일시 유예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 주한미군 계속 주둔 문제 >

김 대통령은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남북이 미군의 한반도 주둔 필요성에 견해를 같이 한 것`이라면서 `평양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미군이 계속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주한미군 계속 주둔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은 김 대통령이 전에도 몇 차례 언급한 것이어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남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까지 표현함으로써 북측의 공감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고히 한 셈이다.

실제로 북측의 주한미군 관련 발언을 추적해 보면 북측도 통일이 될 때까지, 또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할 때까지 시한부로 주한미군 주둔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지난 11일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한 김용순 비서는 지난 92년 1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에 대한 북측의 변화된 방침을 통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후 북측은 공개적인 국제회의 석상이나 북한을 방문한 미측 관계인사에게 몇 차례 같은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나 북측은 `시한부 주둔 용인`을 밝혔을 뿐 통일 후에도 계속 주둔해도 좋다고 말하고 있지는 있다. (연합200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