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오히려 확대돼야한다’
<이활웅의 시사촌평 72>
2008-01-01 이활웅
이명박 당선자가 임명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통일부를 축소하거나 외교통상부에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북한문제 전문가들이나 대북지원.통일운동 단체들이 이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한다. 그리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는 이를 통일시대에 역행하는 매우 걱정스런 일이라고 규정하면서 통일부의 축소나 폐지를 시도하지 말고 남북관계의 차질 없는 진전과 통일을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또한 통일은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최대과제이며 남북관계는 통상적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통일로 가는 과정 속에 있는 특수 관계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보다 자주적인 자세로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백번 옳은 말이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아마도 통일문제를 지난 10년간 ‘좌파정부’가 밀어붙인 ‘불요불급’의 사안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인식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그 전문에서 민주개혁과 더불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대한국민’의 ‘사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평화통일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가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한다는 뜻이다.
한나라당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반북.반통일세력의 집결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김대중, 노무현의 두 정부가 헌법에 규정한 대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할 때, 사사건건 ‘퍼주기’ 혹은 ‘끌려 다니기’라고 시비하며 발목을 잡고 방해해왔다. 이제 칼자루가 그들의 손에 들어왔으니 정치를 그들의 구미대로 요리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헌법에 규정한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역행하는 것은 국민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역사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인수위는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통일부를 외교부와 통폐합한다는 것은 남북 간의 협상을 외교협상으로 착각하는 데서 오는 발상이다. 남북문제는 민족내부문제이지 외교문제가 아니다. 서울과 평양간의 문제는 서울과 워싱턴, 도쿄 혹은 베이징 간의 문제와 혼동할 수 없는 문제이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는 전자 때문에 밀릴 수 있어도 전자가 후자 때문에 희생될 수는 없는 일이다. 통일부를 외교부에 통합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경중관계를 반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대주의적 근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한국의 외교부는 이미 ‘외교통상부’ 즉 외교가 아닌 다른 업무도 겸해야하는 부서가 돼있다. 외교는 긴 안목으로 국가위상의 향상을 도모하는 국가의 독특한 기능이다. 그것은 그 일에만 정진해도 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경험을 쌓는데 무척 긴 세월이 소요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지 않고는 다른 나라들과 견주기 힘든 성질의 일이다. 후진국은 몰라도 선진국치고 다른 업무를 겸직하는 외교부를 두고 있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 이미 통상의 덧짐을 지고 있는 외교부에 통일의 새짐까지 지우려는 것은 무엇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이다. 그것은 선진화를 표방하는 정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에는 그 위원장으로 단군이래의 대도(大盜) 전두환의 하수인이 되어 그의 죄행을 거들어 준 인물이 등용되어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또 거기서는 통일문제나 남북문제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경험이 부족한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통일부의 ‘운명’을 주물럭거리고 있다는 평도 있다. 다행히 이 당선자 자신은 인수위 워크숍에서 ‘조직개편의 전제는 사람과 조직을 줄이기보다는 그 기능을 어떻게 조정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느냐하는 것’이라며 ‘숫자상으로 많이 줄이는 게 좋다는 선입견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하니(한국일보 07.12.31), 우리는 그의 건전한 판단력에 기대를 걸어본다.
작년 말 대선에서 이 후보의 우세가 확고부동할 때에도 국민의 70%는 남북관계는 새 정부 하에서도 계속 발전돼야한다는 생각이라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왔었다. 그리고 이 당선자는 그의 전임자들과는 달리 남북문제 추진에 발목을 잡을 야당이 없는 축복받은 위치에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방향만 통일지향적으로 바로잡는다면 이명박 정부는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미증유의 큰 업적을 쌓아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다른 부처는 몰라도 통일부만은 오히려 확대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