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에 대한 몇 가지 의견’

<민경우 기자의 한국사회경제 변화 탐구 29>

2007-09-28     민경우 전문기자

2007년 초부터 변화된 상황에 맞게 이론을 재구성하려는 노력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 중 주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이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이하 새사연)이다.

필자는 새사연이 벌이고 있는 왕성한 연구 활동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와 토론들이 보다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새사연의 연구 성과 중에서 토론해 보고 싶은 내용이 있다. 아래서는 이를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눠 기술해 보겠다.

먼저 새사연의 문제의식 중 공감할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6.15공동선언이나 조국통일에 대한 관심이다. 제도권의 진보적 학자들은 기이할 정도로 통일문제에 관심이 없는데 이는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관념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현상을 경험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관념에 기초하여 현실을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눈앞에서 통일정세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조건에서 이를 현실 인식의 주변에 방치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지적인 태만이다. 그런 면에서 새사연이 갖고 있는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둘째는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이다.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의 주류(자주계열)는 정치군사적인 문제에 비해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약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약점이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그로 파생된 문제에 대한 대처 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 새사연은 사회경제적인 현안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새사연의 연구성과를 적극 수용하면 좋을 듯하다.

셋째는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연구 태도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운동진영에서 헌신성, 조직성 을 중시하는 반면 운동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태도가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근 20년 전의 상황을 분석한 책자가 지금도 통용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가령 박세길 씨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지금도 현대사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운동진영이 여전히 분단과 통일의 관점에서 현대사의 시원을 밝히는 수준에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990년대 초반 이후 우리 사회가 객관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사연의 시도조차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다음으로는 새사연의 문제의식 중에서 필자가 토론해 보고 싶은 내용을 간추려 보겠다.

첫째,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그것이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는 점이다. 새사연은 진보진영의 활로를 신자유주의 극복, 6.15선언의 실천에서 찾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대부분의 관심은 전자에 가 있다. 한편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주로 남북경제협력 등 경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현 시기 조국통일의 중요성은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정치군사적인 측면에 있다. 북미공방이 벌어지는 양상이나 한반도 정세를 가름할 힘의 서열 등에 비춰 여전히 중심은 정치군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다루더라도 남북경제협력이 남북의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보다는 통일정세의 변화를 통한 정치지형의 변화가 경제문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보다 중시되어야 한다.

둘째는 정치적 동력의 편제 원리이다.

새사연의 문제의식을 전체적으로 요약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주요 기치로 이에 반대하는 ‘대안주체’(각계각층)를 직접민주주의 형식으로 결속한다는 것이다.

9.15 대안캠프에서 배포한 자료에는 “한국사회 내부에 생활적 처지와 요구의 다양성이 높아지게 되어 불가능하게 된 것은 ‘폭넓은 연대’가 아니라 과거식의 ‘획일적/수동적 저항연대’이다. 새로운 국민 삶과 조건을 반영하여 획일적 연대/저항적 연대를 넘어서 각자의 처지와 조건에 맞는 자율적이고 다양한 요구와 지향을 대안으로 구체화하는 대안적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적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국민대중을 파편화ㆍ개별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요구와 지향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판단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식의 획일적 연대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물론 수동적 연대는 불필요하다)

요즘에는 집단적ㆍ조직적 결속(필자가 이해하는 획일적 연대는 전통적으로 운동진영이 중시했던 집단적ㆍ조직적 결속을 의미하는 것 같다)보다는 자율적ㆍ수평적 연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국가와 국가, 전쟁과 제국주의, 신자유주의가 여전한 조건에서 강한 집단적ㆍ조직적 결속이 상황을 돌파하는데 유효할 것이다.

셋째, 위의 차이가 여러 사안을 대하는 입장과 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를 필자의 견해와 비교하여 단순화시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필자는 조국통일문제에서 정치군사적인 문제가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반면 새사연의 문제의식은 경제문제에 방점이 가 있다.

조국통일문제에 있어서도 필자는 조국통일문제의 정치적 의의를 중시한다. 즉 조국통일이 정치사회적 지형을 변화시켜 경제적 개혁의 발판이 되는 점을 중시하는 반면 새사연의 문제의식은 통일이 되면 이러저러한 차원에서 경제적 이익이 간다는 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 필자는 민족 문제를 중시한다. 왜냐하면 민족이 갖고 있는 강한 집단성ㆍ조직성이 상황을 돌파하는 유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새사연은 국민주권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한데 이는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한반도 통일정세를 돌파하는데 있어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셋, 새사연이 베네주엘라를 주목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베네주엘라의 역동적인 민중운동이 보여준 활력이 신자유주의를 돌파하는 정치적 동력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논쟁적으로 쟁점을 제출하자면 베네주엘라가 역동적인 민중운동만으로 상황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베네주엘라가 국제정치의 변방이기 때문이다. 베네주엘라에서 정치적 역관계의 역전이 이뤄진 것은 2002년 4월 우익 쿠데타를 진압하면서부터인데 이 시기는 2002년 1.29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미국의 국제전략이 이라크와 중동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베네주엘라와 차베스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의 덕을 본 것이다.

반면 중동이나 동북아시아처럼 모순이 이중삼중으로 중첩되어 있는 곳에서 역동적인 대중운동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북과 이란에서 핵이 동원된 초고강도의 파워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베네주엘라 사태를 보면 베네주엘라 민중의 역동성에 주목할 수도 있지만 차베스 대통령이 내건 ‘볼리바리안 혁명’(중남미 민족주의이다)이라는 정치적 기치에 비중을 둘 수도 있다. 또한 2005년 이후 심화되고 있는 급진적 조치(군사력 강화, 언론통제, 개헌 움직임 등)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는데 이는 결국 2002~2004년 수준의 정치적 갈등은 변혁의 초기 국면을 대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넷, 현실 운동의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연대, 민주노총과 전농이 발휘하는 조직적인 대중운동을 중심에 두고 그 지평을 국민대중 속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이 결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