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남북정상회담서 부시에 화답할까>

'부시-노무현-김정일' 방식 간접 대화 예상

2007-09-07     연합뉴스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내달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정상간 회담일 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매개로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간접 대화가 이뤄지는 자리로서도 주목받게 됐다.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 호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포기와 대북 평화조약 체결을 교환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하면서, 남북정상회담 때 "그가 우리와 함께 한 약속들(9.19 공동성명 등)을 지속적으로 이행해달라고 말해주기를 바란다"고 노 대통령에게 요청했기 때문이다.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1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김 대통령이 미.일 정상의 입장을 전하고 이에 대한 김 위원장의 반응을 다시 미.일측에 전달었으나 공개적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이번엔 남북정상회담이 공교롭게 북한의 수해로 인해 한달여 미뤄지는 바람에 노 대통령을 중개자 혹은 매개자로 '부시-노무현-김정일' 대화 체제 모습을 띠게 됐다.

◇김정일 화답 예상 = 부시 대통령의 공개 제안 겸 의지 표명에 김 위원장도 노 대통령과 회담을 통해 어떤 수준에서건 답변할 것이라는 데 대북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자리를 통해 국제사회에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불량국가 지도자가 아닌 정상국가 지도자라는 연출을 시도할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으로 자신들의 카드를 드러내 보인 상황이므로 미국과 담판을 해야 하는데, 미국도 핵확산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안전을 담보해 줄테니 핵을 버리라는 명분을 줬기" 때문이라고 고 교수는 분석했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화답의 수준. 특히 공개 발언 외에 노 대통령을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할 비공개 메시지의 화답 수준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와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요구하면서 언급한 '검증'의 기준이 무엇이냐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부시 대통령의 제안에 "김 위원장은 검증 조치가 어느 수준까지인지를 되물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남 교수도 "검증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할 것"이라며 "따라서 북한이 이번에 미국이 넘긴 공에 바로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부시 행정부가 임기내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는 상황에서 "방코 델타 아시아(BDA)라는 암초를 제거할 때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교역법 적용 해제 등을 통해 북한의 핵 불능화를 유도하는 등 신뢰구축 조치를 계속 해나갈 가능성에 주목했다.

남성욱 교수도 '검증 기준'과 관련, 미국과 북한이 "BDA 문제를 해결하고 2.13 합의의 발판이 된 베를린 회담 때처럼 (6자회담에서가 아니라) 양자 사이에 비밀리에 세부적인 합의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검증가능한 핵무기 포기'를 평화조약의 전제로 내건 반면 북한은 '검증가능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핵포기의 전제로 주장하는 상반된 입장이지만, 북.미 양측이 해결의지만 았다면 이것이 큰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고유환 교수는 "양측의 입장은 동시행동 조치로 해결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줄곧 주장해왔고,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수석대표도 최근 이와 유사한 개념인 '실행에 바탕을 둔(performance-based)' 상응조치를 대북 보상의 원칙으로 제시하면서, 베를린 양자회동 이후 북.미 양측은 이러한 원칙에 따라 2.13 합의를 한단계씩 발전시켜가며 실천해오고 있다.

◇한국 '메신저' 역할 = 김용현 교수는 '리비아식 해법'에선 영국이 미국과 리비아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한 점을 들며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노무현 정부에 메신저 역할을 맡긴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짐으로써 앞으로 북미관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으며, 나아가 북미관계정상화와 남북관계 발전이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노무현 정부 초기 한국의 북.미 중재자 자임론에 한.미가 동맹임을 들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중재자'에 함축된 '중립' 개념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도 앞으로 예상되는 한반도 주변질서의 격변을 감안하면, 단순 메신저 역할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최소한 북미관계 변화에 상응하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추진할 것이므로, 김정일 위원장이 이에 대응해 대남, 대미관계의 속도를 어떻게 조절하려 할지 주목된다.

김연철 교수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의제가 좀더 비중있게 다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선순환하는 구조가 되면서 남측에도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문성규 심규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