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앞마당, 국보법 폐지 물결의 '수원지'
단식 34일째 이시우 석방 촛불문화제, "진보 전체에 대한 탄압"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평화사진 작가 이시우 씨의 '목숨건 단식 34일째'(검거 당일부터 35일째)를 맞은 23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과 법원 사이의 자그마한 마당에서 촛불을 밝힌 '다함께' 소속 민주혜(고려대.4) 학생은 평화사진 작가 이시우 씨가 구속된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민주혜 학생의 말처럼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국보법 사건이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는 것에 대한 시민사회의 물밑 우려감은 그 임계점에 달한 듯 하다.
실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국회 앞 대규모 단식농성 이후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국보법 폐지 운동'의 움직임은 이시우 씨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다시 촉발될 전망이다.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오는 26일 서울역에서 집회를 갖고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할 예정이고, 2004년 이후그 활동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가 오는 29일 302개 소속 단체 대표자회의를 가동시키며 본격적인 움직임에 들어간다.
국보법폐지국민연대 황순원 상황실장은 "이시우 씨 사건과 최근의 말도 안되는 국보법 사건으로 대표자 회의를 소집했다"며 "오늘은 비록 작지만 앞으로 거대하게 타오를 것이다"고 말했다.
'검찰청 앞 마당, 거대한 촛불 물결의 수원지'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씨의 단식이 끝날 때 까지 이어질 검찰청 앞 촛불문화제는 '문화제'라기 보다 '사랑방 모임'과 같은 풍경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수난을 겪었거나 심지어 30여년 이상을 철창에 갇혀 있어야 했던 재야 원로들, 장기수 선생들과 "진보 전체에 대한 탄압"이라고 패기어린 목소리를 내는 대학생들.
검찰청과 법원. 거대한 공권력을 상징하듯 높이 솟아 오른 두 개의 건물 앞으로 밝혀진 촛불은 25개 남짓.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과 노랗게 염색을 한 이들 두 세대는 국가보안법을 고리로 반원을 그리며 둘러 앉았다.
거대한 강을 만드는 이름 모를 숲의 옹달샘 마냥, 이날의 촛불문화제는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음향시설 하나 없이 고요히 진행됐다.
"이 자리가 검찰청 앞입니다. 지나기 조차 꺼려지는 곳에 이렇게 모여 앉게 됐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에 찬성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싶다면 국보법을 폐지해야 하고, 국보법을 유지할 것이면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통일운동가'라고만 밝힌 한 원로는 이시우 작가의 건강을 먼저 염려하면서 "단식은 투쟁의 최고의 형태"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으로 30여년을 철창 아래 갇혀 있었다는 그는 자신도 그렇게 오래 단식을 한 적이 없다면서 이 작가가 단식을 멈출 것을 권유했다.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은 "국보법이 제정된 48년 이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갔고, 사법살인까지 저질렀다"며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진보당 조봉암 위원장, 인혁당재건위 외에도 이름없는 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그는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강산에 가고, 경제교류 협력사업을 벌이고, 경의.동해선 철길이 이어지고, 통일부 장관은 만세를 부른다"며 "한편에선 이렇게 고무.찬양하고 회합.통신하는데 이시우 씨는 국보법으로 구속돼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국가보안법의 모순성을 지적했다.
"밖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꼬박꼬박 하루 세 끼 밥을 대할 때마다 그런 동지들에게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곳이 진정 또 다른 투쟁의 장임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동지들의 염려와 사랑으로 하루 하루를 가슴 벅차게 살고 있습니다." <민중가요 '접견실에서' 중>
34일째, 그야말로 목숨 건 단식을 하고 있는 이시우 작가에 대한 걱정을 전하는 25개의 촛불 사이로 민중가요 '접견실에서'가 흘렀다.
오명근(성균관대.4) 학생은 "학생들에게 이시우 씨 사건 얘기를 전하면 '옛날 말 아니냐?'며 의아해 한다"며 "국보법 폐지 운동이 되살아 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장소를 잘못 알아 뒤늦게 도착한 실천연대 권오창 상임공동대표는 한 시간 남짓한 이날의 촛불문화제를 정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엄밀하게 국보법 어기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 어긴 것 아닙니까? 국보법을 없애는 단 하나의 방법은 전 국민이 국보법을 어기면 됩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이렇게 통일 지향적으로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