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비상한 국면에 접어 든 한미FTA

2007-03-28     민경우 전문기자
한미FTA 협상은 3월말 사실상의 협상 시한을 앞두고 타결과 결렬을 가름하는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8차 협상(3.8~12) 이후 한미FTA를 갈등은 날카로운 쟁점을 동반하며 정국의 주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8차 협상 이후 나타난 변화들을 지적하고 향후 전망과 과제에 대해 간략히 말해 보겠다.

8차 협상 직후와 비교하여 최근 한미FTA에서 나타난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는 협상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요구가 더욱 강경해진 점이다. 이는 한국측이 3월말 타결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미국측이 한국측의 약점을 간파하고 이를 집요하게 추궁하고 있는 점, 작년 11월 민주당이 의회를 주도하면서 미 의회가 강경해진 점과 관련이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자동차와 섬유의류이다. 한미FTA 협상을 통해 한국측이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은 별로 없다. 그 중 몇 되지 않는 기대이익의 하나가 자동차와 섬유의류 분야에서 수출 증대이다.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측은 당연히 미국 자동차 시장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는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미국측이 작년 내내 자동차 분야를 개방 예외로 분류했을 때도 이를 일종의 협상 전술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미국측의 요구가 모두 관철되어야 하며 또 그것과 연동하여 관세를 철폐할 수 있고 그 수준도 ‘10년 내 철폐’, ‘15년 내 철폐’ 수준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측도 요구 수준을 ‘3년내 철폐’로 낮춘 것으로 보인다.

배기량 기준의 세제 개편, 환경.기술 표준의 개정, 관세 철폐의 댓가로 관세가 2.5% 수준인 미국의 자동차 시장의 관세가 가령 ‘10년내 철폐’에서 합의된다면 이는 정치적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비슷한 문제가 섬유의류 분야이다. 작년 12월부터 섬유의류 분야의 고위급 협상이 별도로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섬유의류 분야가 고위급 협상을 진행할 만큼 큰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모든 관세.비관세 장벽을 철폐한다고 하더라도 수출 증대 규모는 2~4억불 수준이고 8차 협상 이전 이미 0.2~0.4억불 수준에서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최근 미국이 이보다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한국측의 타결에 필요한 정치적 명분을 잠식하고 있는 점이다. 0.2억불이면 대충 200억원으로 협상단이 미국을 오가며 썼던 교통비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협상 막바지에 섬유의류 분야에서 별도의 고위급 협상을 열 정도로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실익 때문이 아니라 협상을 타결해 놓고 무언가를 얻었다는 정치적 포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 협상이 진행되는 양상은 한미 양측이 무언가 주고받고 하는 이른바 ‘딜’이 아니다. 핵심은 한국이 어느 수준에서 양보할 것인가이다. 문제는 한국측이 이미 충분히 헌납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요구가 한국측이 협상 타결 후 국민을 ‘기만’할 최소한의 정치적 명분마저 제거하는 그야말로 완전한 백기항복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8차 협상 이후 한미FTA 협상을 파란으로 몰고 가는 핵심 진원지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정치권의 동향이다.

김근태.천정배 등 범 여권의 일부가 확실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범국본의 농성장을 방문하며 단식에 들어간 것은 현실적.정치적으로 대단히 중요했다. 이로 인해 중간층에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 점은 향후 전망을 고려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셋째. 범국본과 농민을 중심으로 한 반대 진영이 얻은 자신감이다.

8차 협상 직전 반대 진영의 준비 정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이를 돌파한 것은 지도부의 헌신적인 투쟁이다. 3.8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3.12 범국본 지도부의 단식 투쟁에 이어 한미FTA 협상이 점차 긴장도를 더하는 가운데 벌어진 3.25 시위는 운동 대오의 결속과 승리감을 통해 향후 반대 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8차 협상 이후 3월말 협상 타결까지 만약 반대 진영의 투쟁이 적당한 수준에서 진행되고 제도정치권에서 민노당과 범여권의 일부만 반대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나라당을 거대한 우군으로 하여 범여권의 다수가 적당히 방관하는 양상이었다면 이후 투쟁은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제도권의 정치지형이 <한미FTA 찬성, 한나라당과 보수진영 - 한미FTA 반대, 진보개혁진영>으로 양분되고 반대진영이 전열을 정비하여 향후 운동 대오를 확장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점이다. 이는 향후 투쟁 과정에서 파란을 몰고 올 교두보를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향후 전망과 과제에 대해 07년 대선을 중심으로 간략히 지적해 보겠다.

대선의 주요 화두는 평화통일, 교육.주거 등 생활의제, 한미FTA 등이 될 것이다.

이 중 평화통일 의제는 한나라당이 물타기를 시도하면서 민감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크게 보면 평화통일 의제는 현 상황에서는 범여권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교육.주거 문제는 가장 민감한 의제이지만 대선 시기에 한정해 본다면 모든 대권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실질적으로 쟁점화되는 시기는 대선이라기보다는 대선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미FTA는 3월 투쟁을 계기로 점차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계선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민주노동당과 진보민중진영이 한미FTA를 고리로 대선국면을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