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철,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출판기념회

2006-08-29     김치관 기자
▶28일 철도웨딩문화원에서 허영철 선생의 자서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보리출판사 김용심, 조은영 씨와 함께 한 허영철 선생.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과거 칠팔십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전태일 열사의 평전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낳은 씨앗이었습니다. 이제는 장기수 선생님들의 역사와 사상으로 자본에 맞서고 겨레의 통일을 앞당겨야 합니다.”

28일 오후 5시 서울 용산 철도웨딩문화원 2층에서 진행된 비전향장기수 허영철 선생의 자서전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출판기념회에서 이 책을 발간한 보리출판사 정낙묵 대표이사는 “미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고 겨레의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장기수 선생님들에게 배우지 않는다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의 사회로 보리출판사와 통일원로모임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통일광장 소속 비전향장기수들을 비롯해 통일운동 원로 등 200여명이 참석했으며,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허영철 선생과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축하와 찬사를 보냈다.

▶편집자 보리출판사 김용심 씨.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정낙묵 대표이사는 “2000년도에 장기수 선생님들의 송환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영화 ‘선택’과 타큐멘타리 ‘송환’이 나오면서 장기수 선생님들의 역사가 우리 현대사의 큰 대목으로 자리 잡다가 요즘엔 다시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나고 있다”며 “이번 허영철 선생님의 자서전 출판을 계기로 장기수 선생님들의 역사는 다양하게 복원돼서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상으로 우뚝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을 실제로 편집한 보리출판사 김용심 씨는 “2002년부터 5년동안 책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기쁘고 행복했다”며 “어떻게 선생님의 삶을 의미있고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전할까 고민했는데 책이 나오고 나서 후배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엉엉 울었다고 하더라”며 주변의 평가가 좋았다고 전했다. 김용심 씨는 “고난의 역사를 한번도 비껴가지 않고 든든한 나무처럼 서 계신 선생님들께 부끄럽고 죄송하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허영철 선생과 마찬가지로 전북지역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는 “허영철 선생과는 고향이 같고 선생은 저의 아버님, 형님과도 함께 일했다”며 “제가 책을 낸 거나 다름없이 가슴에 기쁨이 가득하다”고 인사했다.

임방규 선생은 “해방전후와 전쟁이전의 활동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북에 가서 어려운 시기 정당한 정책을 받들고 온몸을 투신해 지위에 연연함이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온통 바쳐서 살아오신 그 대목이 많은 감동을 줬다”며 “아파트 경비 생활을 하실 때도 주변에서 선생님을 아이들도, 젊은 처녀들도, 나이든 분들도 좋아했는데 민중으로부터 사랑받은 일꾼, 내세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일꾼,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존경스럽다”고 상찬했다.

▶백기완 선생(가운데)이 환영을 받으며 자리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백기완 선생은 축사에서 허 선생의 책을 “역사와 함께 걸어간 한 위대한 혁명가의 일생 (기록)만이 아니고 혁명적인 서사시”라고 규정하고 허 선생의 사상을 ‘관념적 낭만주의’가 아닌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칭했다.

백기완 선생은 “지금 남쪽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한 주로 편입돼 있다. 한미FTA가 강제적으로 체결되면 미국은 남쪽의 물질적 기초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초까지 틀어쥐는 것이다”며 “선생님이 추상적인 민족통일이 아니라 해방통일에 끝까지 앞장서 주시면 저희들도 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감옥생활을 함께 한 양희철 선생이
축시를 낭송했다. [사진 - 김주영 기자]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은 “장기수 선생님들의 형을 다 합치면 한 2천년은 될 것인데 이런 역사를 가진 민족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었느냐”고 묻고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근거가 궁금했는데 허 선생님의 자전적 회고록, 자서전 여기에 상당히 근거가 확실하고 객관적으로 여실히 나타나 있다”며 “내가(허 선생이) 겪어 봤더니 이것이(북 사회가) 우리가 건설할 사회, 생명을 바칠만한 것이었고 이것을 보듬고 생명을 걸었다”고 평했다.

축시를 낭송한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선생은 “허영철 선생님을 모시고 옥살이 30년 동안 같이 몸 부대끼면서 같이 살았다”며 “이 분이 물리학을 하기 위해 수학을 먼저 했는데 대학교재는 물론 미국 MIT교재까지 섭렵하고 소립자부터 우주물리학까지 다했다”고 회고했다.

양희철 선생은 “선생님은 모든 것을 남 앞서 하시고 일일삼선(一日三善)을 실천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셨는데 남이 벗어놓은 양말을 빨거나 기워주고, 실을 꽈주고 이런 것을 꼭 실천하신 분이다”며 “감옥 안에서 뵙고 배운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영상물을 보고 있는 오종렬, 임방규, 허영철 선생(왼쪽부터).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인사말에 나선 허영철 선생은 “축사한 선생님들의 과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책의 중심문제 이야기는 (축사에서)된 것 같다”며 “편집과정에서 보리출판사 젊은 선생 두 분과 한 일년 가까이 접촉하면서 서로 제도가 다른 사회에서 살았건만 하나도 저항없이 이야기가 돼 기뻤고 그 과정에서 나이 차이, 성 차이를 넘어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고 차이를 토론으로 해소하고 책임문제를 명확히 구분해 즐거운 마음으로 편집이 끝났다”고 만족감을 표하고 편집에 참여한 김용심, 조은영 씨를 불러내 함께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허영철 선생은 미리 녹화한 영상에서 “내가 공화국에서 4년 가까이 살아 거기에서 생활, 당시 말단에서 정책을 결정, 집행하는 과정을 알려주고 싶어 중점을 뒀다”며 “책을 정리해 놓고 보니까 허무한 생각도 들고 미진한 점도 없지 않지만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나라가 축가 '하나가 되어'를 부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허정문채 씨가 축가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불렀고 ‘영상으로 보는 허영철 선생님’ 상영, 노래패 우리나라의 축하공연 등이 이어졌다.

특히 영상물에 등장한 허 선생의 부인 조경자 씨는 “좋은 점도 많이 있겠지만 나 한테는 없어. 가정을 모르고 살은 사람이야”라며 볼멘소리를 내는가 하면 “짧은 바지는 입지도 않을 정도로 점잖고 흰 바지만 입는 멋쟁이”라는 자랑처럼 들리는 핀잔도 거침없이 내놓았다. 조경자 씨는 “책 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 이 사람들이 협조해 주니까 책이 나왔지”라고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허 선생의 손자 허승 씨는 “어려서 교도소가 어딘지도 모르고 면회를 갔고 이해를 못했다”며 “살아오면서 조금씩 이해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책이 나오고 보니까 알 것 같다”고 말하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못했는데 얘기도 많이 하고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까 역사도 이해하고 또다시 내가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이 책이 자신의 삶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범민련남측본부 이경원 사무처장이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에게 북녘 큰물피해
돕기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행사를 주최한 보리출판사는 이날 행사 수익금 전액을 북녘 큰물피해 돕기에 기탁했으며, 그동안 모금운동을 진행해온 실천연대의 권오창 공동상임대표, 민가협의 이영 상임의장, 경희민주동문회 이동균 회장, 범민련남측본부의 이경원 사무처장, 통일광장의 허영철 선생 등이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한상렬 상임대표는 “조국은 하나라는 뜨거운 북녘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아 성금으로 표현해주셔서 진실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통일연대로 모여진 모든 성금은 6.15남측위원회로 취합해 겨레하나를 통해 북에 전달될 것”이라고 전했다.

▶1층 식당에서 음식을 나누며 축하연회를 이어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보리출판사 직원들의 축하공연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출판기념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1층 식당에 마련된 음식을 나누며 못다 나눈 이야기꽃을 피웠고 보리출판사 직원들이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허 선생을 모르지만 보리출판사가 발간하는 월간 『작은책』 편집위원으로서 행사에 참석했다는 언론인 홍세화 씨는 “어폐는 있지만 책이 재밌었다”며 “유명함과 관계없이 우리 역사를 부딪쳐 살았던 인물의 삶 자체가 굉장히 의미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비롯해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 이승호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의장, 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 등 각계인사들과 박봉현 선생 등 전북지역 장기수들이 참석했다.

양희철 선생의 축시

늘 푸르신 허영철 선생님


어느 때 어느 곳 뵈올 때마다
언제나 의연하신
늘 푸르름을 품어내신
끊임없이 사색하고 실천하신
모르실 것 없을 듯 하신
비길 데 없이 부자이신
허영철 선생님.

비길데 없이 부자이시면서도
허기진 고픔을 채우시느라
소립자론에서 천체물리학에서
수학의 넓은 벌판에서
연신 개태시어 드시고
갈무리하시면서도 근천떠시는
비길데 없이 가난하신
허영철 선생님

물리학과 수학을 떠나서는
변증법과 대중성을 떠나서는
사물의 생성과 변화발전을
규명하고 알아낼 수 없다시며
쉼 없이 끊임없이 정진하시는
허영철 선생님.

기나 긴 옥살이 30여 성상
무슨 기쁜 일 있을까만
항상 온화한 미소 머금으시고
급할수록 한 걸음 물러서라시며
여유자적하시는
허영철 선생님.

아파트 경비가 딱 맞는 내 밥벌인데
팔순이 어떻다고 그만 두라느냐, 며
못내 아쉬워하셨겠다
아들 딸 남매내외 친손 외손 길러주고
험한 세월 궁한 나날 겪으며 이겨냈던
아내 조경자가 있어
그런대로 고맙고 미안한데
허리 잘린 채 61년
분단조국 생각하면 가슴 아린다시는
허영철 선생님.

뒤돌아 보면
아득한 듯 어제런 듯
일제 징용 호카이도 탄광 그 갱도가
어두운 점으로 눈 앞에 어리고
해방정국 어수선한 와중에
앞 길 밝혀주는 횃불 찾았어라.
북도 남도 우리네 삶의 터전
제국주의 간섭에 우리가 싸우다니
외세 몰아내고 우리끼리 힘 합쳐
통일하렜다가 그만
조국의 이방지대, 남녘의 감옥
감옥 전전하며 반평생
이렇게 살아오신
허영철 선생님.

진정 내 여생 바쳐
통일조국 볼 수 있다면
여한 없을 터라시는
이 시대 우리의 스승이신
늘 푸르신
허영철 선생님.

2006.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