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서동만, “분단현실 망각한 양극화 해소 논의는 공허”

<민경우의 민족이야기> 민족, 민족주의에 대하여

2006-03-15     민경우

민경우(통일연대 전사무처장)


연초부터 진보진영 내에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만큼 양극화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 현안이 되고 있다는 징표일 것이다. 진보진영에서 논의되고 있는 양극화에 대한 대안은 주로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인 차원으로까지 심화시키고,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것으로 집약되고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반국적(半國的)인 사민주의 노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견해의 치명적인 약점은 분단현실과 거기에서 연원된 보수반공체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위 노선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다분히 공상적인 생각이다.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을 지낸 서동만 씨는 “분단현실을 망각한 양극화 해소 논의는 공허”하다고 지적하며 분단현실에 입각한 새로운 담론을 제창한다.

서동만 씨는 “진보학계 내에서 북조선체제의 위기상황을 의식하며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 발전문제를 자족적이고 독자적 단위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 특히 최근 식자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최장집 교수의 저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4)를 비판하고 있다. 요지는 분단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과 남에서 사회경제적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은 긴밀히 연동되어 한 덩어리로 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동만 씨는 나아가 “현싯점의 한국 정치지형으로 볼 때 개혁-진보 세력은 평화-진보세력이 되어야 다수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 견해는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통일지향적인 성격을 명확히 했을 때 다수파가 될 수 있고 재집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동만 씨의 견해는 반국적인 사민주의가 대세인 조건에서 통일문제를 진보적인 관점에서 적극 해석ㆍ개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견해이다.

그렇다면 서동만 씨가 남에서의 사회경제적 대안과 통일을 연관시키는 고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서동만 씨의 표현을 빌리면 평화와 진보가 결합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서동만 씨는 대북 경제협력 과정에서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반면 남에서도 사회경제적인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복지 예산의 확충이 필요한 만큼 양자는 상호 경합(競合)관계일 수 있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대북 투자를 통해 남의 과잉자본의 출구를 해소하고 나아가 통일비용을 절감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대북 투자라는 평화비용과 남의 복지비용 지출이 상호 선순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동만 씨의 위와 같은 발상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한국경제 위기를 보는 시각이 너무 안이하다.

IMF 관리체제 이후 한국경제는 세계화된 경제속으로 깊이 편입되었고, 한국 경제의 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경제 전체의 위기와 연관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위기를 다룸에 있어 그것은 적어도 미국의 대규모 경상ㆍ재정 수지 적자, 미국과 동아시아 사이에 형성된 엄청난 불균형의 문제와 같은 범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차원으로 심화되어야 한다. 한국의 과잉자본을 북에 투자하여 평화와 복지가 선순환한다는 수준의 대책은 한국 경제의 대안을 마련하는 하나의 출로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일 수는 없다.

둘째는 통일 문제를 지나치게 감성적인 또는 경제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남의 화해협력 세력은 대체로 남의 주도권하에서 북을 점진적인 흡수통일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는 통일해야 하는 이유는 북이 그저 하나의 민족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남의 변화는 없는 상태에서 ‘북핵’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북의 경제를 재건한 뒤 남의 주도권하에 북을 민족구성체의 일원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동만 씨의 견해는 위와 같은 전통적인 화해협력 세력의 시각위에서 대북 투자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남의 경제 위기 해소에 돌파구가 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차원에서 사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수준이다. 긍정적이긴 하지만 통일문제가 갖고 있는 위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통일의 핵심은 감성적인 또는 경제적인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군사적인 문제이다. 양극화를 해소하는 관점에서 보면 통일 과정의 핵심은 외세지배와 분단구조의 해체를 통해 남의 정치적인 역관계를 바꾸어 사회경제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정치적 주체를 마련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서동만 씨가 구상하는 분단 해체 과정보다는 훨씬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를 수반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있어야만 사민주의 또는 그 밖의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형성된다.

끝으로, 둘째와 같은 맥락에서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다. 그리고 이는 제도권의 모든 지식인들에게 공통점으로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분단체제의 적극적 해체를 주장하면서 왜 미국의 존재를 다루지 않는가?

필자는 13쪽에 이르는 긴 논문에서 남북의 사회경제체제가 분단구조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음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 안에 미국에 대한 고민, 심지어는 언급 자체가 없다는 점에 놀라고 있다.

분단구조의 해체와 미국은 별개의 문제란 말인가? 도대체 미국의 지위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분단구조의 해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듯한 서동만 씨의 견해 또한 반국적 사민주의와 마찬가지로 분단의 유력한 한 주체인 미국을 논외의 영역으로 미루어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공상적이다.
--------------------
<참고>

위 글은 『창작과 비평』 봄호에 실린 서동만 씨의 논문 「6.15 시대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발전구상」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분단체제론을 대표하는 백낙청 교수의 주장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글과 관련하여 참고할만한 자료는 ‘프레시안’(2006.2.20)에 실린 백낙청-서동만 씨의 대담 기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