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해전사의 재인식’에 대한 비판적 접근

<민경우의 민족이야기> 민족, 민족주의에 대하여

2006-03-09     민경우

“탈민족을 고리로 한 뉴라이트와 탈근대의 異種 연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 출간되어 화제를 끌고 있다. 세간에 화제가 된 만큼 위 책은 여러 각도에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할 듯 하다. 여기서는 『역사비평』2006년 봄호 책머리에 소개된 임대식 씨의 간략한 “소회”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척시켜 보겠다. (이 글은 9쪽 정도의 간략한 글이다. 3월 3일 한겨레신문 안수찬 기자가 이 글을 소개한 바 있는데 아래에는 안수찬 기자의 소개 글을 별첨한다.)

먼저 임대식 씨의 의견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임대식 씨는 ‘재인식’의 주요 필진을 뉴라이트(김일영, 이영훈)와 탈근대론(박지향, 김철)으로 구분한다. 임대식 씨에 따르면 “근대의 주류이념인 (경제)성장주의”를 표방하는 뉴라이트와 “근대적 인식을 극복하고 해체하자는” 탈근대론은 이론적으로 양립할 수 없음에도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주류세력의 성장에 대한 “반대와 비판을 위해 연대”했고, 양자가 연대할 수 있었던 매개 고리는 탈민족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위 임대식 씨의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는 점을 전제로 몇 가지 내용을 보완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 사회에서 민족이 갖는 지위이다.

사람들은 흔히 좌우익을 구분할 때 우익은 민족이나 국가를 중시하고 좌익은 개인이나 계급을 중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야말로 전형적인 서구적 관점이다.

우리 민족사를 비롯해 제국주의-식민지 관계가 존재하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진보적인 입장을 갖는 사람들이 민족을 중시했고 민족을 중시하는 입장의 연장선에서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와 같은 서구 근대이념 또한 온전히 실현되었다.(본 연재물 김동춘 교수의 “민족주의의 생명력”을 참고하기 바란다.)

실제 역사 과정에서도 가장 비타협적이고 완강한 수준에서 진보를 대변했던 조류는 대부분 민족주의였다.(보수적 민족주의자인 김구나 장준하 선생을 생각해 보라.) 현재도 국가보안법의 가장 가혹한 탄압 대상은 사회주의의가 아니라 연북(聯北) 노선이다

따라서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진보와 보수를 갈라내는 핵심적인 기준이다.

둘째, 사상적 조류에 대한 평가이다.

임대식 씨는 탈근대론에 대해 “필자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성장주의 일변도의 근대적 추세를 상대화하는 데 일조해야 할 탈근대론자들 일부가 지극히 근대적인 기득권세력의 반동 캠페인에 동조하고 있는 점”이라며 탈근대론에 대해 다소 호의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반면 “민족 민중 혁명 따위의 화두를 여전히 고수하는 있는 이는 특히 학계의 경우 천연기념물 같이 희귀해졌고 세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라고 민족, 민중, 혁명... 등등의 조류를 혹평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 견해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 이후 사상사를 간략히 개괄해 볼 필요가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70~8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이 확산ㆍ심화되는 과정에서 출간되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반독재 투쟁의 대상이었던 군부 세력의 뿌리가 일제 친일파의 부산물이었음을 지적하여 민주화운동에 강력한 이념적 자양분을 제공했다. 이로부터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민주와 독재를 가르는 운동을 뛰어 넘어 반민족적인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대단히 성스럽고(?) 이념적인 운동으로 발전한다.

당시 학생운동이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자부심과 대의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이 친일잔재 청산, 민족자주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70~80년대 민주화 운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87년 6.29 선언 이후 현실운동은 두 가지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하나는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보수적인 민주화에 안주하여 제도권에 편입되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화를 기반으로 민족자주, 반미연북으로까지 발전하려는 조류이다.

현실 역사에서 전자가 점차 주류로 성장함에 따라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담겨 있었던 날카로운 민족적 관점은 퇴색되기 시작한다. 본 연재물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김동춘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관점을 “때늦은 민족주의”라 평가한 바 있고 임대식 씨 또한 “세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사상사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인 민주화 기류가 정착함에 따라 민주화운동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민족자주, 반미연북적 사조를 제거ㆍ순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겠다.

민주화 운동에서 민족자주, 반미연북을 제거하게 되면 민주화 이념은 역동적인 생명력을 상실하고 만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특히 노무현 정권이 말하는 인권, 과거청산 등이 서민 대중으로부터 냉소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생명력이 거세된 민주화노선을 실용적인 대미관, 신자유주의와 결합시키게 되면 이 때의 민주화란 대단히 애매한 것이 되고 만다. 노무현 정권의 과거 청산 노력이 보수수구 세력으로부터 예민한 반격을 받는 반면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참여가 부진한 것은 이 때문이다.

끝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은 “민족 민중 혁명 따위 화두가 세간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는 임대식 씨의 평가이다. 민족 민중 혁명 따위 화두가 세간의 조롱거리로 되었다는 임대식 씨의 평가는 객관적으로 옳은 것인가?

70~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당시 민중, 국민대중이 체현하고 있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비하면 상당히 앞선 것이었다. 이 격차만큼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역사적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당시의 민중이 갖고 있었던 의식에 비하면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문제인식은 너무 앞선 것이었다.

이 사이에서 혁명, 민중 따위의 절제되지 않은 급진적인 구호가 난무한 것도 사실이다. 진보적 지식인-민중으로 양분해서 양자의 사상의식을 검토하면 전자가 체현했던 역사 인식이 후자에 비해 너무 앞서 있었고 이를 사상, 역사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현실 운동에서 구현하려고 있던 일련의 시도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6년 3월의 현 시점에서 보면 어떨까? 학력과 부모의 재력에 의해 대물림되는 가난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정규직과 농민이 벌이는 처절한 저항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시 행정부의 침략전쟁과 일본의 보수우경화는 또 무엇인가? 시간이 갈수록 민족, 민중, 혁명 따위의 개념이 회자될 객관성은 오히려 커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일단의 진보적 인텔리들은 한사코 이런 개념들에서 비켜서려 한다. 그것이 틀렸다고 한다면 그래서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미국의 패권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하나의 의견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쟁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직무 태만이다. 여기에는 87년 이후 보수적 민주화에 안주해 온 또 다른 유형의 기득권이 어른거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담겨 있었던 문제의식을 역사의 한 시대에 있었던 과거인 것처럼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체현하고 있었던 생동감 있고 생명력 있는 문제의식을 현재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번주 <민경우의 민족이야기>가 하루 늦게 연재된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편집자 주)

“재인식 필진, 반개혁 위해 적과의 동침”
임대식 역사비평 주간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비판

임대식 <역사비평> 주간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펴냄)을 비판했다. 논리적으로 정반대편에 서있는 신우익과 탈근대의 논리가 ‘개혁’을 거스르는 길에서 서로 만났다고 분석했다. 동거의 접점은 뭘까. 기묘하게 섞이고 뒤틀린 <…재인식>의 실체에 대한 비판이다.

최근 발행된 <역사비평> 봄호 머리말에서 임 주간은 <…재인식> 필자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신우익(뉴라이트)과 탈근대론자다. 4명의 편집위원 가운데 이영훈 서울대 교수와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가 신우익, 박지향 서울대 교수와 김철 연세대 교수가 탈근대론을 대표한다.

임 주간은 “세가 약하면 적과도 동침할 수 있지만 …극단에 위치한 두 기조는 결코 상통하기 어려운 것인데도 기묘하게 연대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가 보기에 <…재인식>은 신우익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탈근대론자들이 결합한 것이다.

탈근대론의 함의를 이해하면 임 주간의 지적에 금세 공감할 수 있다. “근대적 인식을 극복ㆍ해체하자는 탈근대가 어떻게 근대의 주류이념인 경제성장지상주의의 신우익과 결합하고 연대할 수 있을까? 성장지상주의는 탈근대가 지양하려는 핵심대상이다.” 임 주간은 이를 ‘이종(異種)결합’이라고 부른다. 탈근대론은 원천적으로 ‘전체적 역사상’을 거부한다. 반면 경제성장주의는 “이미 우리가 독재시대의 교과서에서 보아온 그 역사상을 갖고 있다.”

임 주간은 신우익과 구우익의 차별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신우익의 주장과 조갑제ㆍ한승조의 주장에 크게 다른 점이 없다.” 다만 “친미반공과 독재의 역사를 적극 해석”했던 구우익에 더해 신우익은 “친일과 식민의 역사까지 적극 해석한다.”

그는 바로 이 대목에서 ‘이종결합’을 가능케 했던 한 가닥 고리를 발견한다. ‘탈민족’이다. “대체로 우익은 민족적인데, 한국의 우익은 친일과 식민의 역사 때문에 반민족적이다.” 일본의 새역모는 민족 주체적 역사상을 구축하려 하지만, “‘한국판 새역모’라 할 교과서포럼은 반민족ㆍ비주체적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다른 논리를 구사하는 양자는 친일ㆍ식민ㆍ독재의 과거사 정리를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입장을 같이 한다.”

<…재인식>은 그 연대의 성과물이다. 과거사 문제 해결을 기득권 구조의 붕괴와 동일시하는 주류언론과 보수세력이 환호작약하고 있는데, 임 주간은 ‘너무 좋아할 일 아니다’고 말한다. “아직도 대부분의 보수인사들에겐 반일민족주의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다. 신우익이 탈민족을 강조해 탈근대의 일부와 연대했지만 반대로 대중적 고립을 자초할 가능성도 있다.” 임 주간은 <…재인식>이 ‘반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한다. “(필자들의) 주관적 의도와 관계없이 <…재인식>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최악의 귀결은 “구체제와 구 이념으로의 복귀라는 반동”이다.

그는 “<…재인식>에 동원된 탈근대론자들”에게도 충고를 보냈다. 보수언론이 단골삼아 이들을 인용하는 것에 대해 “흔히 자기의 본뜻이 아니니 개의치 않겠다고 말하는”데, “<…재인식>이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 몰랐다면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정치적 판단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장주의 일변도의 근대적 추세를 상대화하는 데 일조해야할 탈근대론자들 일부가 지극히 근대적인 기득권 세력의 반동 캠페인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아쉽다”는 것이다.

<역사비평>을 발행하는 역사문제연구소는 <…재인식>이 과녁으로 삼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산실이다. 임 주간은 “80년대 <해전사> 필자 가운데 민족ㆍ민중ㆍ혁명 따위의 화두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이는 천연기념물같이 희귀해졌다”며 “<…재인식> 프로젝트는 실재를 과장하고 역사문제연구소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수찬 한겨레신문 기자 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