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김영명, “한국 민족주의의 한계”
<민경우의 민족이야기> 민족, 민족주의에 대하여
민경우(통일연대 전사무처장)
시중 대형서점을 들르다 보면 뜻밖에 좋은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책 중의 하나가 정치학자 김영명 씨가 쓴 『우리 눈으로 본 세계화와 민족주의』(오름, 2002)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민족 문제와 관련한 제 논점들을 명료하게 정리한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아래에서는 위 책 중에서 한국 민족주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김영명 씨는 위 책에서 “한국 민족주의의 한계를 ...... 1) 반체제ㆍ민중세력에 국한되었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가 민중에게만 있고 지배 세력에서는 미약했다. 2) 구체적인 이념이나 정책으로 개발되기보다는 대중적 정념으로만 존재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민족주의’는 미약하고 ‘정념적 민족주의’만 강했다”고 쓰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민족적 정서나 입장이 유달리 강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고구려에 대한 애착, 비운의 죽음을 당한 김구 선생에 대한 사랑,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악감정 등이 그것이다. 이런 류의 “거칠고 원시적인” 민족적 정서를 두고 민족주의의 과잉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고구려에 대한 남다른 애착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민족 기상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을 것이다. 1948년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이듬해 암살된 김구 선생에 대한 사랑은 통일조국에 대한 비원과 연관되어 있다. 일본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국내의 친일파에 대한 원한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즉 현실에서는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이 그렇지 못할 때 정념과 상상 속에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가상한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의 밑바닥에서 저류하던 꿈은 어떤 순간에 극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갑오년의 싸움이 패배로 돌아가자 농민들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며 숨죽여 노래했다. 1945~53년 해방정국이 분단으로 귀착된 이후 불과 7년만에 터져 나온 학생시위가 5.16 직전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표출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현실의 정치 공간으로 돌아오면 세상은 대체로 외세와 그들에 빌붙어 권세와 영화를 누렸던 외세 추종주의자들의 세계였다. 일상의 세계에서 대중들은 노래나 술자리 에서 문화적 형식이나 한풀이의 형태로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했고, 못다 이룬 꿈을 실제로 실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는 ‘엘리트’들은 보수반공주의에 희생되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며 제도적으로 배제되었다.
이것이 한국 민족주의와 관련된 객관 현실이었다. 따라서 김영명 씨의 지적처럼 “진정으로 문제인 것은 민족주의의 과잉이 아니라 ‘원시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은 권력을 쥐고 있는 실력자들과 지식인들이 일상적이며 제도적으로 퍼부어 대는 사대주의적 요설에 맞서 역사의 어떤 특정한 시기에 이를 극적인 형태로 표출하거나 또는 노래나 신화와 같은 ‘주변적’ 형식을 빌어 민족적 비원을 표출해 온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식인들은 민족주의가 과잉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이른바 세계화가 강해질수록 커지고 있다. 지식인들은 정치적 역관계를 예민하게 탐지하고 이를 정확히 반영한다. 지식인이 중립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특히 제도권에 깊숙이 편입된 인텔리들일수록 그가 표현하는 세계관은 권력 관계를 집중적으로 대변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는 제도권의 실제로 힘을 가진 외세 추종적인 실세들의 항상적ㆍ제도적ㆍ정책적 민족주의와 비제도권의 힘을 갖지 못하고 이를 역사의 특정한 어떤 시기에만 대중적인 투쟁이나 문화적인 형식을 빌어 표현하는 원시적ㆍ감성적ㆍ비제도적 민족주의로 양분되어 왔다. 현실의 역사는 전자가 상황을 주도하는 가운데 후자가 간간히 이를 저지하는 양상이었다(6.15 선언 이후에는 이 관계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을 통해 언급하겠다).
따라서 지금 시기 민족주의가 과잉이며 이제는 그만 버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대중속에 정념으로 남아 있는 민족주의의 거세를 통해 세계화에 대한 세상속으로 전면적으로 편입되자는 것과 동일하다. 전략적 유연성이나 한미 FTA 추진 과정을 보라. 한국의 고위 관리들의 생각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미적이고 사대적이다.
물론 모든 지식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고 주장하는 바가 그렇게 악용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류의 주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 경우라면 적과 아, 진보와 보수를 명확히 하고 역사와 현실에 대한 보다 엄밀한 책임감을 요구한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쓴다고 다 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보자. 우리가 진정으로 공격하고 비판해야 할 대상이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의 체질화ㆍ정책화된 사대주의인가? 아니면 권력에서 소외된 자들의 정념적 민족주의인가? 식자연하는 어떤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권력의 심장부, 제도의 근원을 추적하여 현상에 가려진 본질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적이고 현상적인 문제에 집착하여 쟁점을 흐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