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공병호 씨의 “자유주의”

<민경우의 민족이야기> 민족, 민족주의에 대하여

2005-12-28     민경우

민경우(통일연대 전사무처장)

다시 연재를 시작하며
- 민족, 민족주의에 대하여

필자는 2004년 6월부터 2005년 7월경까지 매주 1회씩 주로 조국통일 정세와 조국통일운동에 대해 기고한 바 있다. 기고를 하게 된 동기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찬찬히 정리해 보고 싶었던 데 있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조국통일정세와 운동에 앞선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중 하나의 주제가 민족, 민족주의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조국통일정세와 운동을 다룸에 있어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하나의 ‘전제’처럼 다루어 왔지만 요즈음에는 민족문제 그리고 민족문제에 접근하는 관점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민족, 민족주의 문제를 재조명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위의 문제의식에 따라 주로 민족, 민족주의와 관련해 여러 방면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다양한 방면에서 재검토해 보겠다. 논쟁의 활성화를 위해 다소 ‘도전적인' 태도로 적어 볼까 한다.


공병호 씨는 하이에크, 프리드만 등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의 자유주의 이론에 기초하여 한국 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아래에서는 공병호 씨의 책 『10년 후, 한국』(해냄)을 중심으로 공병호 씨의 주장 중 ‘자유주의’와 관련된 문제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겠다.

첫째, 공병호 씨의 자유주의 이론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본 연재물에서 지적한 바 있는 김동춘 교수이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 사상은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사상 체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김동춘 교수에 따르면 일제의 침략,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먼저 민족에 대한 입장이 선행하고 그에 기초하여 자유주의, 사회주의 사상 등이 결합된다는 것이다. 즉 민족적 입장을 견지하느냐 외세의존적인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자유주의’에 대한 태도 또한 달라지는 데 전자가 자유주의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 반면 후자의 경우 오히려 권위적ㆍ봉건적ㆍ파쇼적 입장을 지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하며 국가보안법의 유지를 강변하는 보수 세력의 태도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 또는 자유주의는 하나의 ‘구호’이고 반정부세력을 탄압하는 도구였지 지향해야할 목표나 신념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를 둘러 싼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김동춘 교수는 “자유의 근본 원리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은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전면적으로 비판된 것이 아니라, 주로 민족주의적인 지식인이나 학생들에 의해 가장 강렬하게 거부되었다. 따라서 근대적 자유의 이념이나 과제의 실현은 대체로 민족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대신되어 왔다”(본 연재물 김동춘 편 참조)고 꼬집고 있다.

둘째,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이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는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민한 주제의 하나이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다양한 논점 중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보수 세력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박정희 시대는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여 경제를 발전시켰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신주류세력은 사회주의, 평등주의를 차용하면서 혼란을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공병호 씨의 주장도 대체로 이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또한 다분히 허구의 주장이다. 박정희 시대는 ‘폐쇄적인 자본시장-무역 중심의 개방’이라는 구조로 짜여져 있었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폐쇄적이었던 자본시장마저도 개방하는 등 보다 자유주의적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상대적으로 사회적 분배를 중시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색채의 강화라는 기본 틀위에 놓인 주변적 성격의 정책이다. 더구나 자유주의적 정책들은 ‘차질없이’ 추진된 반면 사회적 분배 정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지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자유주의에 어긋났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일종의 혹세무민(惑世誣民)이다(필자는 최근에 우파 성향의 학자들의 문헌을 즐겨 보는 편이다. 좌파 주장의 결함이 주로 무리한 결론, 논리의 비약에 있다면 우파의 맹점은 터무니없는 날조에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시대와 연관된 예민한 진단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장하준, 정승일 교수 등의 시각일 것이다. 이들은 박정희 정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정부가 시장경제를 무조건 옹호하지 않고 오히려 ‘비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박정희 정부는 금융, 조세, 임금인상 억제 등 정부(공병호 씨가 주장하는 정부는 가능한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 작은 정부이다)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재벌을 중심의 수출 주도형 경제 정책을 강행했는데 이러한 비자유주의적 정책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과 창의성을 중시하고 기업가의 혁신성을 강조하는 서구 자유주의를 도입했다면 오늘날의 삼성이나 현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장하준, 정승일 교수 등의 주장이다.

장하준, 정승일 교수의 관점에서 공병호 씨를 평가한다면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입장을 반영하여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극단적인 조류라 할 수 있다(장하준, 정승일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의 신주류정치세력, 한겨레신문 등과 같은 진보적인 언론,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 등도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셋째는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이다.

공병호 씨는 자신의 자유주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탁석산 씨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민족은 근대 이후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확산된 엔티티(entity)이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민족과 달리) 민족을 앞세워 개인과 역사를 초월하는 하나의 주의로 엄연히 현실적 힘을 갖고 있다”
“민족주의는 언제나 좋은 말인 데...... 이는 ‘박해받는 약소한 민족을 위해 싸우는’ 따위의 수식어가 있기 때문이다”
“박해받는 약소민족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럼 박해받는 강대한 민족은 누구인가? 우리의 근대에서 초반에는 일본이었고 이제는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본과 싸운 민족주주의자는 선인이고 반미를 외치는 민족주의자는 진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유럽이 근대에 발견한 것은 개인이었다”
“10년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시민단체는 지금 전성시대를 이루고 있고 이제는 개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소송이 넘쳐나고 있는데 이는 세계체제 표준에 가까이 가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세계표준이란 국민에서 시민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국민에서 시민으로 전환함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국가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는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 되어야 하며 시민은 민족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밑줄 필자).

탁석산 씨의 주장을 인용한 공병호 씨의 위 견해는 공병호 씨의 사상을 여과없이 잘 보여준다. 공병호 씨가 위기감을 느끼는 핵심적인 지점은 바로 “반미를 외치는 민족주의” 경향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족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존재” 즉 허구의 존재여야 하고 민족주의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시민, 개인, 자유주의 따위의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개인주의와 대립하는 사상은 집단주의이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자유주의와 가장 근본적으로 대립했던 사상은 아마도 민족주의일 것이다. 서유럽에 출현한 자유주의는 19세기말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전 세계를 유린했다면 비서구사회가 제국주의에 맞서 동원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다름아닌 민족주의이다.

여타의 사상 민주주의, 사회적 연대, 근대화, 사회주의 등등은 근본적인 대척점에 선 두 가지 사상인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유주의의 폐해가 커지고 밑으로부터의 저항이 본격화되면서 나타난 사상이 민주주의, 사회적 연대 등이라면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에 맞서 찾아낸 사상이 사회주의이다.

사회가 균형과 타협을 중시하며 중도적인 노선을 걷는다면 민주주의, 사회적 연대, 화해와 공존 등의 사상이 힘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역사의 발전이고 긍정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가 다시금 적나라한 정글의 시기로 접어든다면 사상은 다시금 양 극단의 사상으로 양분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선 사상인 민족주의가 신자유주의가 정점에 달한 시점에서 다시금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남미를 휩쓸고 있는 반미, 볼리바리안혁명, 메스티조 민족주의 등이 그렇고 북의 선군정치가 유사하며 중동, 아랍 사회의 종교 원리주의도 역사적으로 보면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다.

상황을 위와 같이 개괄해 놓고 공병호 씨의 책을 평가한다면 위 책의 요점은 ‘세계화된 금융자본’이 전 세계를 석권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사상 즉 ‘반미 민족주의’의 거세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