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고달픈 훈련 속 깊숙한 평화 갈망”
<김삼석의 軍바로잡기> 군생활일기“동족상잔의 핵전쟁이 쓸고 간 페허 위에서..”
2005-08-26 외부기고
● 병영일기
5월 29일 (맑음)
태권도 승단심사 본 날. 우리 소대 애들이 개중에 낫게 본 것 같은데 아직 결과는 알 수 없다. 무릎이 부어서 심사 못 본 오 일병은 하루 종일 우울, 무단자는 외출, 외박, 포상휴가 대상에서 완전 제외되니까 기분 좋을리 없겠지. 외출, 외박, 포상휴가 등은 사병들의 기본권리인데, 지휘관들의 압력수단으로 이용되는 건 큰 문제다. 특히 오 일병같이 어쩔 수 없는 경우는 그런 조치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하다. 내무반장에게 건의 필요.
6월 4일 (비)
소대가 표창받은 날. 포상휴가중 2개 포함. 표창이 발표되자 소대원 모두 기쁨에 넘쳐 있다. 확실히 소대의 단결이 낳은 결과다. 김 상병을 중심으로 애들이 단결, 고참들의 횡포도 줄고 그만큼 단결력이 늘었다. 다들 성취감을 느낀다. 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6월 9일 (가끔 비)
오랫동안 벼르던 일이 오늘 터졌다. 강 병장을 통한 견제, 그리고 애들의 팽배한 불만감을 압력수단으로 이 병장의 횡포를 줄이려 했던 내 계획이 일단 오늘 사건으로 더 잘 될 거란 확신이 생겼다. 이 병장은 내가 단호하게 개기자, 들고 있던 몽둥이를 놓고 횡설수설하다가 나가 버렸다. 다른 고참들은 모른다. 횡재한 경우다. 잘 자자.
6월 13일 (맑음)
요새 내 일생 중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매일 목욕하고 매일 속옷 갈아 입는 일은 전무했고 후무한 일이다. 편지 두 통 받음. 답장 꼭.
6월 15일 (맑음)
여기는 우리의 고정지휘소 부근. 오늘 새벽 03:00에 들어와서 07:00까지 자고 수색정찰 나갔다가 지금 돌아왔다. 내일 새벽에 공격이다. 이곳은 언제나 경치가 좋다. 우뚝우뚝 산들이 크고, 냇물이 흐리고 숲이 울창하다. 그 울창한 숲속에 수백의 병력이 그득하다. 내일의 공격을 준비하는 병력들이.
6월 20일 (맑음)
오전에 경계근무. 오후엔 작업(창고정리)했다. 역기 100개를 무난하게 한다. 많이 늘었다. 쉬지 말고 매일 하자.
6월 24일 (맑음)
신병이 안경하러 가는데 따라서 외출.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바깥바람 쐬고 다방에도 가보고 신나는 하루였다. 신병과 대화, 우선 용기를 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쫄따구 때부터 자기 일을 완벽히 해나갈 수 있도록 키우라는 요지의 얘기를 했다. 대화를 통해 믿음직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6월 28일 (흐리고 비 조금)
오전에 사격, 장 일병이 혼자 말썽이다. 전진무의탁에서 2발 놓친 놈이 입사호에서는 빵발이라니 말도 안된다. 정신을 안 차린 탓 외에는 이유가 없다. 사격성적에 기복이 심한 장 일병, 그에게 필요한 건 신중한 사격태도다. 우리 분대의 성적유지에 늘 불안한 그림자로 그를 남게하는 건 전우애가 아니다. 내일부터 특별교육을 부여하는 분대장의 조치는 일단 옳다. 그러나 그게 징벌의 의미만을 갖지 않도록 적극 도와야만 할 것이다.
7월 3일 (맑음)
머리길이 때문에 말들이 많다. 무조건 3㎝ 이하로 하란다. 애들 머리를 내일 모두 점검해야 한다.
공중기동훈련! 며칠 전부터 헬기 타보게 됐다고 좋아하던 소대원들이 크게 실망했다. 6시간이나 고생고생 걸어가서 탄 헬기가 부대까지 돌아오는데는 5분 정도, 6시간 걷고, 2시간 산속에 대기했는데 정작 헬기를 탄 시간은 7분. 내려서는 또 2시간에 걸쳐 목표 점령.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우리가 걸어온 길이 꼬불꼬불 보였고, 성냥갑만한 집들도 선명했다. 와! 어쩌구하면서 왁자지껄 구경이 시작되는데 미군조종사가 뭐라고 지랄. 기내에서 정숙하라나. 그렇다. 우리는 관광차 헬기를 탄 게 아니었다. 미군조종사가 내려주는 그곳에서 동족의 가슴에 총질을 연습해야만 하는 게 우리의 진짜 모습이다.
7월 6일 (맑음)
상황보고 체질화. 유동병력 통제철저. 개인위생 철저. 주번사관 복무중점이 저녁 점호시간에 끝내 말썽을 부렸다. 주번사관이 하필 막내에게 외어보라고 했고 막내는 못 외웠고… 전 소대원 자동으로 군장싸고 한 시간. 주번사관 복무중점같은 사소한 걸로 깨지다니. 하여튼 뭐 같은 날이다.
7월 10일 (맑음)
월급수령. P.X로 애들 몰고 가서 과자회식, 김 상병의 힘이 컸다. 일, 이등병들과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대화시간, 다들 어느 정도는 속을 드러내고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제 정착되고 있다. 일, 이등병 사이에는 억압적 분위기가 생겨나지 않도록 힘쓰자. 애들이 하고 있는 청소평가제도는 상당히 훌륭한 것이다. 청소상태, 청소 때 맡은 임무수행 여부를 같이 평가·개선책을 모색하는건 엄청난 변화다. 동기들과 함께 애들의 구조가 깨지지 않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오늘 같은 자리를 자주 만들자.
7월 15일 (비)
강 병장이 불러서 취침시간에 행정반에서 음악 들으면서 커피 먹는 파격을 만난 날, 강 병장의 애인 얘기 듣다가 수박에 소주까지 얻어 먹었다. 제대하면 빨리 결혼하겠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죽겠다는 심정에서부터 설악산으로 놀러갔던 얘기며 장모님 될 분에게 인사하러 갔던 얘기까지 들었다. 술 한잔에도 금방 생겨나는 취기 때문인지 피차간에 말이 장황해지고 심각했다. 취침을 두 시간 손해 봤지만 하나도 안 아깝다.
7월 18일 (맑음)
사단장 방문 전날, 무척 바빴다. 모래 퍼다가 영내 곳곳에 뿌리는 작업을 어제에 이어 계속. 전투복 다림질 상태. 두발 상태. 손톱 길이까지 검사하는 내무사열이 무사히 끝났다. 행정반 계원들은 꼴이 말이 아니다. 매일 철야작업이니 지칠만도 하다.
7월 23일 (맑음)
귀순용사의 강연. “북한 군인은 남한 사람들 전부가 아니라 남한정권과 미국에게 적개심을 갖는다.” 내가 그렇게 해석하려고 해서 그랬는지 이렇게 들은 것 같다. 우리 소대원만 보더라도 ‘북한군=적군’이라는 도식을 반복해서 교육받는 사실에 비춰볼 때 북한군에 대한 실질적 적개심은 거의 없는 거나 같다. 남들이 싸우라고 시켜도 우리끼리 뭉치면 동족상잔 대신 통일이다.
7월 25일 (비)
근무 깨지는 바람에 분대장과 정 일병이 벌써 이틀째 매일 네 시간씩 뺑뺑이 돌고 있다. 소대 전체가 침체분위기. 애들 빠졌다는 질책은 정 일병의 ‘졸음’으로 해서 변명할 수 없는 판결이 되고 말았다. 지금이 중요하다. 자발적 군기를 유도하는 현재의 분위기를 하급자들이 우습게 여기고 ‘이용’하려 한다면 고참들은 옛날방식을 더욱 강요할 것이다. 정 일병은 사실 문제다. 중대장의 처벌이 있으니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그가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뉘우치는 과정을 소대원 전체와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내일 정 일병과 진지하게 얘기하자.
7월 29일 (흐림)
위생구가 나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개인 지급이냐 공동 관리냐가 논쟁점. 장단점이 다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 공동관리가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공동관리의 문제점은 고참들이 자기 물품을 공동 관리통에 넣지 않는 것. 그래서 동기들과 식기고참들에게 건의. 이번에는 개인 지급으로 하자고 문제를 제기했던 것. 변화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고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공동관리하되 고참들도 모두 내도록 하는 승리(?)를 거뒀다. 이병장의 지원과 보급계 오 일병의 똑떨어지는 대답이 유효했다.
7월 30일 (맑음)
휴가다. 드디어 내게도 그 날이 왔다. 부모님께 건강하고 씩씩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그리고 친구들과 거하게 한잔 하고, 책도 보고 실컷 자고 개고기도 먹고 싶다. 친구들한테 전화하고 나서 휴가 일일계획을 잡자. 꿈만 같다. 내일이 휴가출동이라니. 휴가! 가서 지친 몸을 쉬고 굳어진 마음을 풀어 새로운 열정을 듬뿍 담아오리라. 휴가 일일계획에 꼭 들어가야 할 것은 기상과 취침시간. 만날 사람들과의 약속, 독서시간, 운동량 유지 등이다. 계획은 꼭 실천하자!
(다음 주에 8월 1일부터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