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민족에 대하여 4
옥중에서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
2005-06-27 외부기고
|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전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05년 4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민경우 전 처장의 새로운 주소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3가 99 전북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전주교도소'이며 수인번호는 2500번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
본 글에서는 「(56)민족에 대하여-3」과 연동하여 민족과 관련된 여러 문제에 대해 언급해보겠다.
통일이란 결국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성립되는 개념이다. 남북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면 통일하기보다는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협력하는 것이 합당한 해결책이다.
남북 분단이 길어지고 세계사의 변화도 가속화되면서 통일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과도한 것이다. 통일 문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그리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통일문제가 갖는 민족적 성격을 거세하려는 일련의 발상과 시도이다. 위의 문제 즉 통일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만능의 보검」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으므로 본 글에서는 통일문제의 민족적 성격을 거세하려는 시도와 발상에 대해 주로 언급해 보겠다.
통일문제가 민족문제라고 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점을 의미한다.
먼저, 민족이 내부에 여러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분열되기보다는 단합되어 있어야 한다. 통일의 관점에서 보면 남북간의 화해와 단결이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둘째로는 민족이 민족문제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문제의 주체적 해결을 위한 핵심 요건은 민족이외의 요소에 의한 간섭을 배제해야한다. 본 글의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한미군 문제이다.
셋째는 민족이 여타 민족과 공존.공영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의 자주와 단결이 타민족에 대한 침략적.배타적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민족과 여타 민족과의 관계 문제를 민족문제의 주요 구성요소로 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56)민족에 대하여-3」에서는 민족이라는 주체가 어떤 경제체제, 정치원리를 취할 것인가 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임을 지적한 바 있다. 또 북의 경우 저항적 민족주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생산적인 요소인 전통과 민중의 해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남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① 1970년대 이전까지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주된 과제인 상황에서 선차적이고 핵심적인 과제는 민족의 독립이었다. 여기서 민족 독립의 과제를 자본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이었다. 단 경험적으로 보면 반일 투쟁이 격렬해지면서 운동의 주도권, 이념적 성향이 급진화됨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일제가 패망하고 남은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었다. 미국의 개입은 반일투쟁과정에서 급진화되었던 기존 흐름과 충돌했다. 2차 대전 직후 세계 질서 재편에 나선 미국이 사회주의와 함께 민족주의를 미국에 적대적인 사조로 규정지었던 것도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민족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대체로 좌파적 흐름과 연동된 때문이다.
덕분에 남에서는 가장 우파적 성향이 강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전통적인 보수기득권층이 연합하여 권력을 잡았다. 이 과정은 민족적인 입장에서 보면 기존 흐름과의 철저한 단절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김규식, 여운형 선생과 같은 중도파, 김구 주석과 같은 보수우파 성향의 지도자들마저 제거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해방 정국의 정치환경이 일체의 민족적 성향마저도 용인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일제 시기 민족독립이라는 주된 과제 아래의 하위 변수였던 좌-우, 자본주의-사회주의, 진보와 보수의 각축은 해방 정국을 거치면서 완벽하게 전도되었다.
일제에서 해방정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힘의 이동 또는 이슈의 이동의 근원지는 미국이었다. 즉 한국에서 성장한 우파, 자본주의, 보수적 성향을 추동했던 힘 자체가 한국 내부로부터 발원한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이식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외세」가 아니라 신비한 무엇으로 인식되었고 일본을 고리로 한 정서적.대중적 반일만 남았으며 여타의 정책적.지도적 민족주의는 완전히 거세되었다.
제국주의의 견지에서 보면 미국이나 일본이나 제국주의이다. 온건한 제국주의와 난폭한 제국주의, 한국에게 긍정적인 방향에서 영향을 준 제국주의와 우리 민족을 직접 수탈한 제국주의로 구분할 수는 있을지언정 제국주의는 제국주의인 것이다.
해방정국만 해도 이런 류의 발상이 살아있었다. 미국을 은인, 해방자로 보면서도 미국 또한 민족과는 다른 외세 또는 민족 이외의 어떤 것으로 보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시각이 우세했다. 이런 인식이 바뀐 것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이다. 미국은 좋고 나쁨을 떠나 민족이외의 어떤 것이 아닌 민족을 구성하는 어떤 요소로 수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지금도 뿌리깊게 남아있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이러한 전도된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이 민족이외의 어떤 것이라고 한다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미국의 힘, 한미 관계를 고려하여 일정한 시기, 특정한 조건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허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주한미군은 성역으로 남아있었다. 주한미군이 당연히 철수해야 하지만 “어떤 조건에서, 어떤 시기”까지 주둔할 수 있는가가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북의 주장과 어떻게 다른가”가 쟁점이 되는 진기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집단최면 상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짙게 남아있다.
미국이 신비화된 조건에서 민족주의는 반일을 고리로 그것도 정서적.대중적 인식 속에서만 남았다. 2차대전이후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전하는 핵심 파트너였다. 따라서 한국내의 반일 감정은 미국을 신비화하는 한 어떤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수준이란 것이 스포츠 경기에서 또는 역사왜곡이나 일본 정치인의 망언에서 간간히 표출되는 순진한(?) 양상이었다. 반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한일관계는 구조적으로 긴밀했고 지도적 계층은 서슴없이 일본과의 유착을 심화시켰다.
② 시민사회론
1970년대 초반 출현하기 시작한 시민사회론은 민족을 둘러 싼 논쟁 구도를 바꾸어 놓았다. 물론 시민사회론은 해방정국 이후에도 논의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이전의 시민사회론은 물질적 기초를 갖지 못한 다분히 공상적인 성격이었다.
시민사회론의 물질적 기초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거기서 수혜를 받은 중간층의 존재인데 1960년대까지의 한국 사회는 대단히 전근대적이고 농촌적이었다. 따라서 60년대 시민사회론의 뿌리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이론 그 자체였다.
1970년대 초반부터 유신-5,6공 및 그 후계자들과 자본주의의 변방 수혜자들과의 싸움이 한국 정치사의 주된 흐름을 차지한다. 이 과정을 민족적인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아래에서는 시민사회론의 적자로 볼 수 있는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 및 한겨레신문, 시민단체의 입장을 중심으로 기술해 보겠다.
긍정적이었던 측면은 민족 내부의 적대를 민족 사이의 화해로 바꾸어 놓은 점이다. 시민사회론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반북 구조가 갖고 있는 막무가내식 우격다짐과는 양립할 수 없었다. 또 유신과 그 후계자들이 반북 정서를 독재정권 유지에 악용했기 때문에 독재정권과의 싸움을 위해서는 그들이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인 무기인 반북정서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부정적이었던 것은 민족문제의 본령이라 볼 수 있는 민족 자주의 문제를 도외시한 반면 여기에 민족간 「다양성.공존」의 개념을 과도하게 끌어들인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한겨레신문-시민단체 등이 주한미군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점을 대단히 의아하게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은 책임있는 정치세력이니까 그럴 수 있고 한겨레신문이나 시민단체는 대중정서에 민감한 만큼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급진적 주장을 자제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민족 자주의 개념을 뛰어 넘어 민족간 다양성이라는 화두를 과잉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자주란 반미.반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적인 지표는 주한미군 문제이다. 민족간 다양성.공존이란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포용, 한중일 시민사회간의 연대, 민족이라는 집단성에 숨어있는 공격적(?)요소를 순화하며 민족 내부에서 인권을 신장하는 것 등이다.
시민사회론은 민족자주의 과제를 적당히(?) 뛰어 넘는 대신 민족간 공존과 다양성이라는 의제를 과도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민족 자주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폄하하거나 민족 자주에 본성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여러 요소를 해체하고 있다.
필자는 1990년대 중.후반 민족자주가 철없는 몽상쯤으로 치부되던 상황에서 통일운동을 했고 감옥을 살았다. 사람들은 우리를 맹목적인 친북세력으로 몰아갔다.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맹목적이고 친북적이라면 주한미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입장은 무엇인가?
주한미군 철수 또한 당연한 시민적 권리 아닌가?
주한미군 철수가 북에 동조하는 이적행위라고 감옥을 살았지만 그렇다고 주한미군이 “어떤 조건에서” 주둔할 수도 있는가하는 주장을 제대로 들어 본 일이 없다. 주한미군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건전한 시민사회에서 외국군대의 주둔이 논의의 대상 조차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서 구성된 시민사회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시민사회를 일관되게 적용하려면 주한미군 문제도 단호하게 의제에 올려놓았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YS(김영삼) 정부가 자주.통일 운동 세력에 가했던 가혹한 탄압은 대체로 묵인되었다. 1996년 연세대에서 학생들이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을 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1996년 연대에서 학생들이 연방제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북과 통신.연락했다고 해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시민사회론은 양립할 수 없다.
시민사회론은 친미반북의 횡포가 자신들을 비켜가고 있다는 점에 안주한 것뿐이다. 그리고 공권력에 대책없이 당하는 약자의 입장과 관점을 맹목적.친북적이라 하여 스스로의 처지와 입장을 변호했던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론은 자신들의 신념 자체에도 철저하지 못했다.
민족의 공존과 다양성이란 민족자주 이후에 나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과제이다. 그 또한 보편적이고 무차별하게 적용되는 어떤 문제라기보다는 민족자주하는 과정에서 민족과 지역의 특성에 맞게 개성적으로 관철될 문제이다.
민족간의 차별과 종속이 남아있는 조건에서 민족 사이의 공존과 다양성을 말하는 것은 본말, 선후가 뒤바뀐 주장이다.
위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 북의 인권, 한중일 사이의 역사논쟁, 북핵 등을 보는 입장이다.
상식적으로 북의 인권을 논하기에 앞서 북의 자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일, 중일, 북미, 중미 사이의 민족적 수준의 자주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중일 시민사회가 공존-공영하는 다국-다민족 역사를 기술하자는 주장은 실현불가능한 공상이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일제 침략을 인정하게 할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북핵을 논하려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부터 논하는 것이 정상이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유지되는 한 북핵의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한 해법일 수 없다. 북미가 동시에 내려놓으면 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북핵”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힘이 없이 시민사회의 연대만으로 해결 가능한가?
시민사회론이 함축하고 있는 주장의 위험성은 민족자주라는 현 단계의 절실한 과제를 뛰어 넘어 민족간 공존과 다양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민족자주의 물질.사상적 근거를 은연중에 해체하고 있는 점이다.
역사 발전을 민족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 시민사회론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연이어 도출된다. 현실적으로 보면 어떤 입장에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태도는 무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자주가 먼저이고 여타의 과제는 후순위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인데 아래에서는 민족자주적 입장과 시민사회론의 연장에서 민족간 공존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어떤 차이를 낳는가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역사를 민족과 같은 거대인간집단을 중심으로 보고 그리고 민족이 갖고 있는 원초적이고 비합리적인(?) 색채를 고려한다면 또 그것이 자주와 침략이라는 긴박한 환경 속에 있다면 민족을 구성하는 정치원리는 집단적이며 역동적이고 강력한 무엇이 된다.
독일.이탈리아 통일과정, 제국주의에 대한 독립투쟁 과정이 그러하다. 신채호의 민족주의가 영웅사관과 이어지고 북의 민족주의가 혁명적 수령관으로 이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히틀러의 나찌즘에 민족주의적 색채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사회론에서 말하는 민족관의 최대 문제점은 서유럽에서 발생한 민족주의의 폐해를 동아시아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점이다. 유럽에서의 민족주의는 보수적.침략적 성격이었다면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진보적이고 저항적이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 사는 사람이 왜 유럽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발언하는가?)
한편 시민사회론은 개인적이고 이성적.합리적이며 다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일정한 재력과 교양을 갖춘 개인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공공의 질서를 구성하는 것이 시민사회론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대로 좋다.
필자는 북유럽이나 서유럽이 보여주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참으로 부럽다. 문제는 2005년의 한국사회가 어디에 있는가하는 점이다.
시민사회론의 성향이 위와 같기 때문에 시민사회론은 민족자주론이 갖고 있는 「집단성.역동성.강력함」 따위가 시민사회의 기본 원리와 상충된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박정희 정부의 군부 독재를 비판했으며 1990년대 중.후반 자주.통일 운동과 거리를 두었고 최근에는 한.중.일을 연결하는 공동의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자는 공상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민족자주와 민족자주의 뿌리가 되는 민족을 상대화 또는 해체하고자 한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또는 「일제시대에는 이해가 되지만 지금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이 그것인데, 이런 생각이야말로 한국에 발 딛고 서있으면서도 머리는 유럽에 두고 있는 전형적인 사대적 발상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민족주의가 반역사적이고 부정적인 때가 있었는가? 분단 이후 현대사는 민족주의가 과잉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민족주의가 부재한 것이 문제였다. 박정희 정부를 민족주의의 아류쯤으로 본다면 민족이라는 범주 자체부터 재정의해야 한다.
반공을 국시로 한다고 출발했으며 사회안전법, 전향공작, 사법살인을 통해 연북적 색채의 절멸을 기도했던 유신 체제를 민족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때의 민족은 북은 배제된 한국만의 무엇인가? 한일 축구 경기 또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국민대중의 정서가 민족주의라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부정적인 색채가 있는 집단적인 무엇이란 말인가?
냉정하게 말한다면 정치.군사.경제적으로는 민족자주하지 못하면서 스포츠를 통해 발산되는 낭만적이고 소박한 민족의식에 불과하다. 이것이 구조적.정치적.정책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렇게 해서 발산되는 집단 정서가 일으키는 「개인의 존엄과 인권의 약화」가 문제인가? (이 후자의 주장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③ 세계화론의 대두
한국 사회에서 세계화론이 대두된 것은 1990년대 초반 이후의 어느 시점이다. 세계화론은 시민사회론과 뿌리를 같이 하면서도 다른 입장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아래에서는 민족자주적 입장과 연동하여 이를 살펴보겠다.
「(56)민족에 대하여-3」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서구사회에서 민족자주적 입장은 한편으로는 전통과 민중적 요소를 온존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자주를 사회주의와 연동시켰다. 민족자주론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민족 자주적 입장은 자본주의와 역사적으로 대립했다.
한편 시민사회론과 세계화론은 양자 모두 자본주의화를 기본으로 구성된 이론 체계이다. 시민사회론은 자본주의가 개혁됨을 전제로 선의를 가진 특권층의 일부와 분배에 의해 빈곤에서 벗어난 하층을 재력과 교양을 갖춘 중간층에 통합한 이른바 시민을 골간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권층의 선의, 재력과 교양을 갖춘 중간층, 계급적 대립보다는 중간층에 대한 하층민의 선망을 뼈대로 하고 있는 만큼 사회 원리는 타협과 공존, 공공선과 합리성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세계화론은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발전에 기초하여 전개된 이론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자본가계급이라는 특수 계층을 중심으로 전개된 일종의 엘리트체제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계급적 대립을 완화하기 위한 복지국가, 케인즈 모델이 시민사회론의 역사적 배경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특수한 시기를 배경으로 배태된 이론이다. 시민사회를 출현시켰던 자본주의의 특수한 국면이 사라지자 다시금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세계화론은 자본주의의 본질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역사적 조건, 자본 축적의 세계화, 민족과 국가의 무력화,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약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자본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된 체제에서는 기업 중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기업, 기술에 있어서도 세계 일류의 기술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수천.수만 아니 수백만의 노동자들보다 고도의 기술.지식을 소유한 특수 계층의 생산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수백만의 노동자들의 단순 노동력보다 중요한 특수 집단의 고도 기술, 지식의 동기가 이윤이라면 원리적으로 수백만의 노동자는 비생산적인 잉여 인력에 불과하다.
한국사회는 그런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한때 매판재벌의 원흉처럼 간주되던 「삼성」그룹은 한국초유의 파워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상무에게 편법 상속한 명백한 불법 행위는 삼성이 가진 세계적 경쟁력이라는 괴물 앞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일부 시민단체가 분전하고 있지만 세상일이란 「합리와 공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DJ-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형성된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과 거기서 비롯된 중간층의 해체 그리고 그것과 대비되는 삼성의 글로벌 파워가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정한 잣대로 준법을 요구하는 시민의 시대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가난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상대로 즉 준법이 아니라 법체계의 변화를 목표로 싸워야 하는 민중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발생 초기에 이윤, 합리화, 생산성이라는 이름 하에 전통과 민중을 갈갈이 찢어 놓았던 자본주의는 세계화된 체제 속에서 더 큰 규모로 전통과 민중을 파괴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민족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시민사회론은 민족문제의 여러 요소 중 남북간의 화해를 의제로 올려놓았다면 세계화론에서는 아예 민족문제가 배제되고 있다. 습관적으로 통일을 들먹이고 있지만 세계화론의 견지에서 보면 혈연과 언어를 같이하는 공동체로서의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즉 통일해야 하는 내적인 필연성은 없는 것이다. 있다면 시장의 확대인데 이런 류의 통일은 전통적인 민족.통일 개념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발상이다.
④ 민족자주론과 시민사회론
시민사회론이 시민사회론에 뿌리가 되는 시민의 붕괴로 인해 위기에 봉착해 있다면 또 다른 문제는 시민사회론이 민족이 갖는 위력을 해체시킴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스스로 갉아 먹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가 양극화되는 상황에서는 「준법」이나 「공공선」 따위는 무의미한 주장이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법을 지키지 않아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 때문에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힘의 결속을 통해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플러스 알파’를 얻어내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은 시민사회의 구성원리와는 다른 차원의 구성 원리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민적 원리가 아니라 민중적 원리가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민족자주론과 시민사회론은 원리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혈연과 언어를 같이하는 인간 집단인 민족은 자유주의와 결합할 수도 있고 복지국가와 결합할 수도 있으며 집단주의와 결합할 수도 있다.
시민사회론이 원리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민중론이다. 시민사회론은 부에 있어 균등한 어떤 집단과 이들이 중심이 된 타협과 공존, 준법과 공중도덕의 세계라면 민중론은 불평등한 양극화된 집단을 대척점으로 힘과 힘의 각축이 중요한 세계이다.
시민사회가 옳은가 민중적 입장이 옳은가는 논외로 한다. 문제는 한국의 시민사회론이 민족자주적 발상과 의제에 거리를 두거나 적대했다는 점에 있다.
시민사회론은 당연한 시민적 권리인 민족자주의 개념을 정면에 걸고 선두에서 싸우지 않았으며 민족자주를 위해 분투했던 어떤 집단이 반(反)시민적 독재정권에게 탄압을 받을 때 이를 방관했다. 또 민족자주를 위해 동원되었던 집단적 정치원리를 공격하는데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 가운데 세계화론이 확산되면서 시민사회론의 입지는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입지 약화가 단적인 사례이다. 노무현 정부를 평가함에 있어 시민적 입장에 서는가 민중적 입장에 서는가는 일단 논외로 치자.(필자는 이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이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민족적 입장에서도 뚜렷한 입장을 세우지 않고 있는 점이다. 미국을 겨냥하지 않고 중-미 사이의 동북아 균형자란 핵심이 빠진 개념이다. 북핵 문제를 중간에 서서 관리하고자 한다면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없다.
시민적 권리인 국가보안법의 철폐가 아니라, 시민적 권리의 하나인 민족자주와 민족공조의 입장을 명확히 천명하고 거기서 배태되는 국가보안법, 냉전수구 세력과 싸웠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민족적 입장에서 무언가를 결행하지 않고 상황을 그저 관리함으로써 노무현 정부를 구성했던 강력한 대중적 지지의 원천을 스스로 고갈시켰다.
정부는 중요한 민족적 의제에서 고비고비마다 미국의 편에 섰다. 이라크 파병, 북핵, 미군기지 재편 등이 그렇다. 반면 주로 이미지 또는 말 꼬투리 또는 정치적 지분을 두고 한나라당과 싸웠는데 이런 상황에서 민중은 민족적 입장에서 정부를 지지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덕분에 민족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라크 파병 등을 둘러 싼 실제적인 전선이 정부와 민족민주.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의 성향을 둘러 싼 다분히 허구적인 논쟁이 정부와 보수언론 사이에서 벌어졌다. 다수의 군중은 중간지대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민족적 의제는 대중적 쟁점에서 사라졌다. 세계화론의 적자인 민간대기업과 엘리트 집단은 한나라당을 지지했고,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중간층의 다수는 사회적 양극화속에서 열린우리당에 거리를 두었다. 여기에 더해 강력한 대중적 지지의 원천인 민족문제마저 손에서 놓아 버린다면 노무현 정부에게 무엇이 남는가?
노무현 정부가 민족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 당국에 민족적 입장을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선과 악, 정치적 입지를 떠나 정치공학적인 차원에서 동원할 수 있는 민족적 에너지마저 제대로 동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무현 정부과 그 측근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보수우파의 특징이다. 반면 집권 당국은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의 무대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각축에 미숙한 듯 하다. 이러한 미숙함의 배후에 있는 가치관과 정서가 공정함.합리성.객관성.솔직함 따위의 이른바 시민적 윤리이다.
그리고 이 시민적 윤리가 민족에서 발생하는 원초적.근본적.비합리적 역동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⑤ 민족문제의 역동성에 대한 편협한 이해
필자가 결론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민족문제의 역동성에 대한 왜곡된 편협한 이해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 송금 특별법에 동의했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은 투명성.공정성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이에 동의했을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북 송금 특별법을 요구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누구」를 떠나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다면 한나라당은 그것이 「누구」에게 유리한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다. 필부의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의 태도가 당연히 옳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이며 정치가이고 대북 송금 특별법은 민족문제였다. 덕분에 2003년 정치의 주도권은 한나라당에 있었다.
2004년 초 탄핵과 4.15총선은 역의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의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 그러나 탄핵은 한나라당에 역풍이 되어 돌아왔는데 역풍의 근원지는 중간세력의 이반과 함께 보수층 다수의 이탈이다.
보수층마저 이탈한 이유는 어떻게 「국부」인 「대통령」을 탄핵하느냐하는 전근대적인 논리이다. 전근대적 개념인 「국부」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이고 현실 대중의 정서에서는 전근대적인 「국부」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2004년 말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과정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국가보안법은 시민적 윤리로 보면 당연히 철폐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 대중은 보수적 관점에 묶여 있었다. 합리성.객관성과 같은 시민적 윤리와, 진보와 보수라는 체제논리가 맞서면 후자가 이기게 되어 있다. 옳고 그름은 문제의 한 측면일 뿐이다.
정부 당국이 보안법을 무력화시키는 민족적 결단을 단행하고 이에 입각하여 보안법을 「시민적 윤리와 보수적 정서」가 아닌 「민족 화해와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으로 몰아갔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DJ정부가 그랬다. 명백한 국가보안법 위반인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시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DJ는 투명성이라는 시민적 잣대보다는 민족적 대의라는 정치적 결단을 중시했고 덕분에 현격한 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었다.
2005년 초.중반의 ‘동북아 균형자론’도 그렇다. 옳고 그름을 떠나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놓았으면 일본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제기했어야 하고 미국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야 한다.
필자는 동북아 균형자론의 옳고 그름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기술.공학과 그런 관점에서 민족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꼬리를 내리더라도 미국에 맞서는 외형을 보여주어야 대중적 기세와 동력이 유지된다.
결과는 동일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와 함께 결과가 어떻게 창출되는가하는 과정이다. 노사협상에서 결과적으로 1천원 인상에 합의하더라도 파업 직전까지 가는 극적인 정치 환경을 거치는 과정에서 형성된 대중 정서 자체가 중요하듯이 결과가 동일하더라도 민족의 존엄과 위신을 세운다는 극적인 이벤트가 주는 정치적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한나라당에게 정치적 주도권을 내주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