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통일과 근로대중의 생존권

옥중에서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

2005-06-06     외부기고
민경우(통일연대 전사무처장, 현재 전주교도소에 수감중)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전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05년 4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민경우 전 처장의 새로운 주소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3가 99 전북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전주교도소'이며 수인번호는 2500번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진보적이고 자주적인 사회운동은 크게 두 부분으로 편재되어 있다. 하나는 한미 관계의 종속성 특히 군사적 종속에 반대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다. 전자는 학생과 진보적 사회단체를 시작으로 점차 일반대중으로 확산되고 있고 후자는 노.농 등 기층 민중에 집중되어 있다.

통일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농 등 기층 대중운동이 통일운동에 합류해 들어오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대중운동이라는 것이 명분과 대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서 통일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를 밝히고 그에 따라 근로대중의 생존권 투쟁을 의식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본 글에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통일과 근로대중의 생존권과의 관계를 지적해 보겠다.

① 한국 경제의 위기

㉠ 자본주의의 고도화

한국 경제의 위기 중에는 자본주의의 고도화에 따른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실업 또는 일자리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 동기를 원천으로 생산력, 기술 등에서 이전 시대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잠재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 개발은 날이 갈수록 가속화되어 현재에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생산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 수요가 없어지면서 자본에서 탈락한 노동은 실업으로 내몰리게 된다.

한국의 민간 대기업의 경우 영업성과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역량은 소수의 연구개발 인력이거나 고급 경영층이고 공장 노동자, 사무직 직원은 특별한 변수가 아니거나 언제든지 교체가 가능한 잉여인원에 불과하다. IMF 이후 민간 대기업의 수출이 극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준(오히려 감축되고 있다)에서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슷한 문제가 인구 고령화의 문제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극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에 반해 생산의 주체인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인을 고용할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달로 광범위하게 퇴적된 고령 인구는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될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탈자본주의적 비전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는 과학 기술 발전의 속도가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먼 미래의 공상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목전에 닥친 절박한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비슷한 수준의 고민이 제출되고 있다.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의 확충, 노동 시간 단축 요구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런 수준의 대안은 체제 차원의 문제이다.

탈자본주의의 과제는 통일과 직접 연동되어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통일과는 상대적으로 무관한 보다 근본적인 영역이다.

㉡ 경제구조의 불안정, 불균형

세계 경제가 일국적 영역을 벗어나 세계화되면서 경제의 불안정이 확대되고 있다.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금융자본의 유입.출입, 미국과 동아시아 경제 사이에 형성된 불균형에서 촉발될 수 있는 예기치 못할 결과 등이 그것이다. 투기 자본의 유.출입은 금융구조의 안정성을 위협하며 우리 민족, 한국의 대응과 무관하게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다.

유사한 문제가 미국과 동아시아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불균형과 연관된 문제이다. 미국의 재정.무역수지 적자, 가계 부문의 엄청난 적자는 동아시아가 미국을 상대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의 국채 매입을 통해 해결되고 있는데 이러한 “기이한” 경제구조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형적인 불균형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불안정성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일국적 차원에서 경제구조를 통제할 정치역량의 문제이므로 통일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불안정의 문제와 함께 중요한 것은 불균형이다. IMF 이후 초국적 자본이 벌어들인 이윤은 과도한 것이다. IMF 이후 한국 경제는 민간 대기업이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초국적 자본이 금융적 방식으로 과도하게 차지했다. 도를 넘어서는 초국적 자본의 이윤 추출은 저지되어야 한다.

IMF 이후 더욱 강화된 수출 지상주의도 문제이다. IMF 이전 달러 당 800원 수준에서 움직이던 환율은 1200원선에서 머물렀다가 최근에는 1000원 안팎의 선에서 고착되고 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수출환경 조성을 위해 달러를 매입하고 달러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증발된 화폐를 흡수하기 위해 또 다시 채권을 발행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의 환율 정책은 결국 한국 금융시장에 투자한 해외 금융 자본과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부를 분배한 것이다. 초국적 자본, 수출 민간대기업과 국내 토착 자본, 민중 사이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은 민족적이면서 계급적인 문제인데 이 또한 통일 문제 해결과정에서 발생할 정치적 역관계의 변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근로대중의 생존권의 견지에서 본다면 생존권을 직접 대변하지는 않더라도 민중생존권을 거시적.구조적으로 대변하는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문제이므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식 금융 질서 속에서 미국이 누리는 특혜는 동아시아가 확보하고 있는 달러 표시 자산을 다른 통화로 다변화하거나 아예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금융질서를 창출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경제 질서를 재조직하는 것인데 이는 통일 과정에서 분출될 민족적 힘을 매개로 주변 환경을 다국적 질서로 재편하는 문제이다. 이 또한 민중생존권과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지만 민중 생존권을 옹호할 거시적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 부의 재분배

최근 한국 경제의 최대 화두는 내수 침체이다. 농업, 비정규직, 자영업 등에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내수 침체는 구조적인 현상이다. 한편 세계화 국면에서 수혜를 얻은 연구개발 인력, 고급경영층 등은 그들의 소득을 조기 유학, 해외여행 등 세계적인 차원에서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내수위축을 가중시키고 있다.

민간 대기업의 경우 기본 추세가 세계적인 기술, 세계적인 시장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 또한 국내에 한정되기보다는 중국, 인도 등 신흥 시장을 향하고 있다. 중소자본의 투자 또한 국내의 내수 기반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에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내걸었던 뉴딜 정책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균형 발전, 부동산 투기 억제와 부동산 세제 강화, 공공 투자 확대, 가계부채 조정 등은 비교적 건전한 시도이지만 이런 수준의 조치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의 내수 침체는 심각하다.

내수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향의 조치가 필요한 듯 하다. 첫째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탈자본주의적 시도, 둘째는 초국적 자본, 수출 민간 대기업과 토착 중소자본 민중으로 양분되어 있는 구조적 양극화를 해소할 거시 경제 질서의 재편, 셋째는 복지 재원의 확충, 조세 개혁 등을 통한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부의 재분배이다.

이상의 정책기조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충돌하는 듯 하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초국적 자본, 수출 대기업이라는 전통적 질서의 틀 안에서 외교 전략, 거시경제 환경을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수준에서 정책을 구사하고 있고 국내의 보수특권층과의 과도한 충돌을 두려워하고 있는 듯 하다. 문제는 이런 식의 소극적 조치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② 남북 경제협력의 수준과 한계

남북 경제협력은 여러 방면에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를 몇 가지로 나누어 기술해 보겠다.

첫째, 대북 식량 지원 등 인도적인 차원의 대북 지원이 있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절에 한국의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진행된 대북 지원은 충분하지는 않아도 요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식량?비료 지원 등의 인도적 지원 문제가 북핵과 같은 정치 현안과 연계될 정도로 남북경제협력의 안목이 낮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둘째, 남북이 유무상통의 차원에서 상호 보완하는 거래(남북은 민족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반입.반출)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원의 남북 경협은 넓게 보면 북의 농수산물.지하자원의 반입, 개성공단에서 이루어지는 남의 기술.자본+북의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된 임가공, 금강산과 같은 관광자원을 활용한 협력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경제협력은 대체로 비대칭적이거나 여전히 정치적 족쇄에 묶여있다. 비대칭적이라 함은 남의 경제 수준에 비추어 보면 이런 수준의 경제협력이 남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본 글의 주제인 한국 경제 위기의 해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별다른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 족쇄란 정부가 북핵 문제를 이유로 적극적인 대북 투자를 자제하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성공단인데 북이 개성공단 건설을 위해 양보했던 정치적 결단에 비하면 남의 진출은 다분히 형식적이었다.

셋째는 대규모 투자, 개발사업이다. 철도도로망의 건설, 에너지 지원, 유라시아 동북부 즉 중국의 동북3성, 러시아의 연해주와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다국적 차원의 개발사업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들 사업이 지체되고 있는 이유는 정부 당국이 동북아시대, 한국판 뉴딜 등 거창한 프로젝트를 내놓고 있는 반면 그에 수반하는 정치적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성공단은 물론 비료 지원 문제까지 북핵 문제와 연계시켰기 때문에 북미관계가 해소되기 이전에는 남북 경제협력은 기대할 것이 없게 되었다.

위 세 단계의 경제협력 중 세 번째 수준의 경협이야말로 남북 경제협력의 긍정적인 성과가 남으로도 환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지나친 몸조심은 안타까운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한국 경제의 위기를 해소한다는 발상은 무리인 듯 하다. 그러기에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규모도 크고 고도화되어 있다. 통일이 근로대중에 미칠 영향은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 창출될 경제적인 무엇이라기보다는 통일과정에서 분출될 민족적 에너지가 남의 정치사회적 역관계를 바꾸면서 경제구조를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방향으로 재구축할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잠깐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몇 가지 오류를 짚고 가고자 한다.

첫째, 남의 식량과 북의 지하자원을 맞바꾼다거나 임가공 무역 등은 남북 경제협력의 초기 국면을 대표할 뿐이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걸로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한국 경제의 규모는 그런 수준의 협력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기에는 너무 크고 또 고도화되어 있다. 북의 경우에도 저부가가치의 자원(저임노동력, 농.수산 및 지하자원 등)을 활용하기보다는 고도 기술, 지식산업을 우선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위의 수준의 경제협력은 경제적 활력과 도약을 위한 발판 또는 시동 같은 것이다.

둘째, 남북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분단비용 대표적으로 군비 축소를 통해 이를 다른 용도 가령 복지비에 전용할 수 있다는 발상 또한 다소 낭만적인 것이다. 사회는 유기체와 같아서 사회의 각 영역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분단체제가 해소되면서 사회 전체의 재구조 과정이 이루어질텐데 이 과정에서 분단 비용 지출이 줄어들면서 +의 효과가 있을지 오히려 통일 비용이 증가하여 -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③ 통일 과정의 정치적 효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근원은 근로대중의 정치적 조직화의 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신자유주의라는 기본 질서를 흔들지 못하고 쌀시장 개방, 비정규직 문제 등 대중의 생활고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적 사안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핵심은 근로대중의 생존권을 옹호할 사회정치적 역관계의 변화인데 이 과정은 반국적(半國的)인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의 변화와 연동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농 대중의 힘이 점차 발전하여 그에 맞는 정치적 비전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북핵 위기 해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정치적 역관계의 변화가 근로대중의 생존권을 옭죄었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근로대중의 생존권 가령 쌀시장 개방 중지, 비정규직 철폐, 부의 재분배 등은 개별 현안이기도 하지만 톱니바퀴처럼 결합되어 있는 전체 사회구조의 한 고리이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 구조를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있어야 하고 이를 실현할 정치적 실체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전망과 실체를 구상하는 「범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아예 세계 자본주의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이에 반대하는 모든 대중을 염두에 두고 사고할 수도 있다. 청년 지식층을 중심으로 세를 얻고 있는 트로츠키류의 세계 혁명 주장도 그러한데, 이들은 세계 자본주의 전체를,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는 환경이 조성되면 세계적인 범주에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나라 민중이 연대하여 벌이는 투쟁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대상에 비해 그에 대적하는 아(我)측 역량이 너무 취약하다.

1999년 WTO 3차 각료회담을 저지시켰던 시애틀 시위나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투쟁은 가상하기는 하지만 힘의 차이는 아득하다. 이들의 주장대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이상 징후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사회를 재조직하는 과정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던 기득권층이거나 일국적 단위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입장이라면 통일 과정에서 표출될 변화는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아닐 것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시야와 관점을 너무 멀리 둠으로써 생존권 투쟁의 정치화를 유토피아에 가까운 먼 미래 또는 관념의 영역으로 몰아가고 있다.

둘째,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소박한 구호는 생존권 위협에 직면한 기층 민중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막연하게 개념화한 것이다. 과거 남발되었던 노동해방?농민해방 따위의 주장도 마찬가지인데 노.농 대중은 보다 적극적이고 분명한 자기 언어를 가지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치적 목표를 만들어 내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를 확대한 일국적 차원을 넘어서는 지역 공동체에서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 가령 노동자를 계급으로 분류하는 것과 시민으로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다르다. 시민이란 좁게는 민간 영역에서 출현한 교양과 재력을 갖춘 자본가층을 이르는 말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자.농민 등이 이에 합류했는데 이렇게 해서 구성된 시민사회는 자본가와 빈곤에서 벗어난 민중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공의 선과 이익을 도모하는 지향을 갖고 있다. 비슷한 차원에서 한.중.일의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민족주의라는 배타적 경향을 억제하고 하나의 국가를 뛰어 넘은 지역적 수준의 시민사회를 형성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들 주장의 문제점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대립, 한.중.일 사이의 민족적 갈등을 희석하고 있는 점이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농민을 계급이 아닌 시민으로 통합하는 보수특권층의 선의의 양보가 중요하다.

시민사회론은 역사적으로 보면 사민주의.복지국가 등 개량된 자본주의 체제와 연관되어 있는데 현 한국사회에는 사민주의나 복지국가를 배태시켰던 물적 토대자체가 흔들리면서 시민사회론의 근거가 되는 중간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이 노.농 대중의 대변자가 될 수 없음은 여기에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면 통일이란 북의 경직된 정치 체제를 순화하여 남의 시민사회에 통합하는 양상이 될 것이다. 통일 과정에서 사회정치적 역관계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근로대중의 생존권 투쟁이 자주통일운동과 결합하여 진행되어야 하는 내적인 필연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 경우라면 통일운동은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비정치적 성격의 운동이 된다.

필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근로대중의 생존권 투쟁은 전투적 기조를 유지해야 하며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막연한 구호를 넘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기 목표를 가져야한다. 근로대중의 생존권 투쟁이 지향해야할 정치적 목표는 통일과정에서 표출된 민족적.민중적 에너지와 결합하여 노.농 운동의 정치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노.농 대중은 통일 과정에서 형성될 전민족적인 역량의 유력한 구성 부분으로 통일이 가져다 줄 민족적 지향에 어울리는 수준에서 자신의 생존권을 구체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