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변화 시나리오 - 로버트 스칼라피노

로버트 스칼라피노(UC버클리대 명예교수)

2000-08-25     연합뉴스
평양 합의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첫째 이산가족 상호방문 문제와 경제협력 증진에 조기 진전이 있을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합의사항 중 가장 쉬운 것이나 공동선언에 구체적 언어가 사용된 점이 중요하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까운 시기에 서울을 방문키로 합의한 것은 첫 정상회담에 이어 2차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임을 예고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성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한 과정의 시작 여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복잡하고 많지만 추가 정상회담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여러 실무급 회담도 열려야 한다. 어려운 정치.전략적 문제는 해결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정례적인 쌍방 대화는 필수적이다. 의제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고 솔직한 견해를 주고받는 것이 긴요하다. 학자와 다른 비정부기구(NGO)들이 참가하는 비공식적 대화도 이런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현재 진행중인 동북아시아와 관련된 여러 다자간회의와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와 통일에 관한 내용이 일반적이지만 남북한이 직면한 모든 현안이 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은 이를 향후 의제로 다룰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단, 조심할 필요는 있다. 과거에도 주요 합의가 있었지만 단명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오늘날 시사하는 것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내 경제개혁과 고립 종식을 위한 외부세계 진출이라는 새 전략을 결의했다는 점이다. 이런 목표들은 경제개혁이 효과적이려면 북한이 현대적 세계의 일원이 돼야 하기 때문에 서로 연계돼 있다. 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며 일진일퇴의 공방이 되풀이될 것이지만 정상회담과 같은 최근 사건들은 희망을 안겨줄 것으로 조심스럽게 낙관해 본다. 50여 년만에 처음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은 무엇보다도 신뢰구축과 경제. 문화교류 확대, 한반도 평화정착 합의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점진적 상호신뢰 구축과 모든 현안을 평화협상으로 풀려는 의지가 전제돼야 한다. 시한이 정해져서도 안되고 위협이 있어서도 안 된다. 더욱이 통일문제의 주체는 남북한이지, 외세 열강들이 아니다. 두 개의 정부가 개별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연합제(confederation)가 미래의 가장 현실적인 발전형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가까운 장래에 이룩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북한에서 한가지 큰 정책변화가 진행중인 것은 분명하다. 경제부문에서 북한은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들에 원조를 간청하고 있으며, 그런 원조는 경제개발과 관련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과 위탁사업을 추진중인 남한 기업들이 늘고 공단을 조성하려는 계획은 변화가 진행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는 중국에서 먼저 일어났던 것과 제도적 변화가 북한에 필요할 것이다. `개혁`이란 용어를 사용할 순 없지만 북한이 확산되는 경제변화 과정을 수용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북한 젊은이들이 에너지. 농업은 물론 법과 경영, 각종 전문분야의 훈련을 위해 외국으로 보내지고 있기 때문에 장차 엘리트층은 이념가에서 테크노크라트로 바뀔 것이다. 북한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전통적 속성은 우선 경제영역에서 도전 받게 되고 이런 경향은 사회 및 정치 영역으로 점차 확산될 것이다. 북한이 외부세계와의 고립을 끝내고 옛 동맹국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많은 서방 및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것은 확실하다.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은 북한의 점진적 변화 시나리오들로 분류될 수 있다. 나는 이런 변화가 계속될 확률을 65%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상황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다른 가능한 시나리오를 완전 배제해서는 안된다. 즉 북한 조기붕괴 25%, 전쟁 20%, 변화의 시기와 정도에 대한 엘리트층내 이견 심화와 이에 따른 국내 불안 및 경쟁적 대외관계 30%, 최소 변화에 사회불안 방지를 위한 점진적 군사. 정치적 통제 강화 25% 등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들은 초안일지라도 자주 정기적으로 재검토, 실제 발생 가능성 여부를 평가해둬야 한다. (연합, 경향신문 2000/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