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제와 연방제 - 김근식

김근식(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정치학)

2000-08-25     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성과물인 `6·15 공동선언` 제2항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북쪽의 연방제와 남쪽의 연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했다는 합의는, 분단 55년만에 남북이 통일에 대한 `접근방식`을 놓고 처음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는 북쪽의 적화통일 전략인 연방제에 손을 들어 준 게 아니냐는 우려와 오해가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이번 합의의 역사적 의미를 잘못 해석한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제2항 합의의 의미는 남쪽이 북쪽의 연방제안을 수용한 것이라기보다 북쪽이 현실적 통일경로로서 국가연합 방식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남과 북이 급격한 국가적 통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체제 인정과 공존공영의 단계를 통해 통일을 지향하는 데 합의했음을 뜻한다.

북한은 1980년 노동당 6차 대회에서 공식화한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을 지금도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1990년대 이후부터 과거 연방제안의 경직성에 벗어나 유연성과 현실성을 점차 인정해 왔다.

이번 합의문에서 표현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91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에서 `잠정적으로 연방공화국의 지역적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 연유한다. 곧 과거 연방제안이 중앙정부에 외교와 국방 등의 권한을 부여하는 `높은`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이들 권한마저도 지역정부에 줄 수 있다는 `낮은` 수준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로부터 북한의 통일방안에 대한 접근방식은 과거 중앙집권적 연방으로부터 보다 분권적이고 자율적인 연합적 성격의 연방으로 선회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91년 남북이 유엔에 각기 개별 가입한 사실과 92년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이 사실상 양 체제의 상호 인정과 평화 공존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른바 `연합적 연방`으로 통일의 접근방식을 선회한 북한은 이후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몇가지 의미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93년 발표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에서는 `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며` `통일된 후에도 국가적 소유, 협동적 소유,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개인, 단체의 재산뿐 아니라 외국자본의 이권도 보장`한다는 파격을 보인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김 주석 사망 이후 98년에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을 발표하여 이를 그대로 계승했고, 급기야 이번 `6·15 공동선언`을 통해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 사이에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북한 연방제의 영문표기가 애초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 중 1단계인 남북연합의 영문표기와 동일한 국제법상 연합(confederation) 개념이었던 점은 이런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에 통일에 접근하는 방법과 관련해 남과 북이 합의를 이룬 것은 급격하고 과도한 `제도적` 통일을 뒤로 미루고, 그 대신에 분단의 피해를 줄이고 고통을 경감하는 차원에서 상호 체제인정과 평화공존 그리고 화해와 협력을 이루는 이른바 `사실상의 통일` 방식에 현실적으로 동의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남과 북이 통일을 위한 국가연합적 접근에 합의를 본 것은 남북 사이의 승공, 적화 그리고 친북과 반북의 쌍대결적 갈등구조가 아니라, 남과 북 모두 이기는 공존공영의 틀을 갖추는 것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냉전적인 대결 논리가 이제 남북 공존의 새 역사에서 지양돼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에야말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200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