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근대 이후의 정치체제에 대하여

옥중에서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

2005-03-07     외부기고
민경우(통일연대 사무처장,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간첩죄명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올해 5월 24일 1심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3년 실형을 선고 받고 이어 10월 28일자로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현재 서울구치소(186번)에 수감 중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본 글의 주제는 근대 이후의 정치체제에 대한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북의 인권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체제 문제는 어떤 문제보다도 선입관, 편견, 이데올로기적 왜곡이 심한 영역이다.

본 글에서는 근대 이후의 정치 체제 문제를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서술해 보겠다.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남북의 정치 체제와 연관된 문제에 대해 지적해 보겠다.

① 근대 서구 민주주의

부르죠아 계급이 근대 초기 추진했던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와 제한 선거였다.

봉건제의 태내에서 재력과 교양을 갖춘 부르죠아 계급은 봉건 왕정으로부터의 권력 이양을 요구했는데 그 형태는 군주의 권력을 헌법에 의해 제한하거나 군주를 명목상의 지위로 두고 실질적인 권력은 부르죠아 계급이 취하는 것이었다.

부르죠아 계급의 목표는 자본주의 질서를 추진할 수준의 권력 획득이었지 민주주의, 대중의 정치 참여와 같은 근본적인 수준의 정치 개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도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왕실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봉건 왕정은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혈통에 의해 계승되는 왕권에서 찾았다. 이에 반해 부르죠아 계급은 자신의 권력의 정통성을 일정한 법 절차에 의해 진행되는 선거에 두었다. 그러나 이 때의 선거는 지금과 같은 일정 나이 이상의 성인 모두가 참여하는 보통선거가 아니라 일정한 재력과 교육을 받은 특정 집단만 참여하는 제한 선거였다.

제한 선거는 계몽주의의 선구자들, 시민혁명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일반적인 정서이자 생각이었다. 제한 선거의 기저에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만민평등, 인민 주권과 같은 생각이 들어 있지 않았다.

부르죠아 계급에게 선거는 재력과 교육을 가진 신흥 “특권층”만이 보유할 수 있는 권한이었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개방적 제도가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정치 이념인 자유주의 또한 “자유”의 주체는 부와 교양을 갖춘 부르죠아였지 모든 인간이 아니었다.

근대 사회 초기 부르죠아 계급의 입헌군주제, 제한 선거 구도를 밑으로부터 압박하여 민주주의의 발전된 형태를 추진한 것은 소시민, 노동자 등 민중 운동이었다.

소시민 계급의 민주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루소의 인민주권론과 자코뱅당의 공포정치이다. 부르죠아 계급이 대중.인민을 부와 교양을 갖춘 중간층과 기층 민중으로 구분하여 전자만의 제한 선거를 주장한 반면 루소나 자코뱅당은 대중.인민을 가르는 위와 같은 경계선을 없애고 만민평등의 기초 위에서 민주주의를 구상했다. 따라서 원리적으로 본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여기서부터 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루소나 자코뱅당류의 민주주의가 갖고 있었던 문제는 사회역사 발전의 기본 추세에 어긋났다는 점과 그러한 이념을 실현할 주체가 약했다는 점이다. 루소나 자코뱅당이 대변했던 사회 집단은 독립자영농, 수공업자 등의 소시민이거나 무정형의 빈곤 대중이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전자는 분해될 운명이었고 후자의 저항은 막연했다. 덕분에 이런 식의 민주주의는 루소가 생각한 것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정도의 작은 공동체 수준에서가능하거나 자코뱅당처럼 “덕의 정치”와 같은 도덕적 관념 또는 특권층의 저항을 분쇄할 공포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부르죠아 계급의 “특권적” 민주주의는 19세기 및 20세기 전반기의 역사적 격동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근대적 민주주의로 발전했다.

초기 자본주의는 가혹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았다.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맞선 격렬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 정치적으로 선거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경제적으로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면서 지금과 같은 발전된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이 과정을 밑으로부터 압박.강제한 것은 조직화된 노동운동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의 부르죠아민주주의는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밑으로부터의 압박에 의해 권력을 쥔 부르죠아 계급의 양보와 타협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그것이 안정적으로 정착된 것은 2차 대전 이후 1950~60년대의 일이다.

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원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오히려 자본주의, 자유주의는 일정한 통제장치가 없는 조건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분화를 심화시키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구의 근대적 민주주의의 성립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근대 민주주의를 성립시킨 주요한 힘은 부르죠아 계급이 조직화된 노동운동 또는 중.하층 대중을 체제내로 포섭할 수 있는 물적 토대이다. 물적 토대가 흔들릴 경우 서구형 민주주의는 쉽게 문제를 노출하게 되는데 아래에서는 서구형 민주주의의 그러한 취약점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르죠아 계급은 대중.인민을 부와 교양을 갖춘 신흥 특권층과 여타 대중으로 갈라놓았다. 이러한 발상을 다른 나라, 타민족에 적용하게 되면 팽창적 민족주의 곧 제국주의, 파시즘, 나찌즘이 출현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세련된 제국주의는 국민국가들 사이의 주권 보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19세기말 20세기 전반기의 조악한 제국주의는 가난하고 무지한 노동자가 선거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본 것과 동일하게 가난하고 열등한 민족, 나라들은 주권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강제 개국, 학살의 대상이었다.

나찌즘에 대한 저항감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19세기말 팽창적 민족주의, 제국주의의 언어는 주로 인종이었다. 부르죠아 질서 또한 봉건 질서와 유사한 차별적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즉 ‘부와 교양을 갖춘 부르죠아 계급과 가난하고 무지한 하층 대중’, ‘우월한 민족.인종과 열등한 민족.인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부르죠아 계급이 일정한 타협과 공존의 논리에 기초하여 위의 계선을 유지하면서도 무마할 수 있다면 1950~60년대의 성숙한 민주주의가 되지만 이에 실패할 경우 쉽게 반동화한다.

히틀러의 나찌즘은 극명한 사례인데 나찌즘이란 ‘사회경제적인 불안정에 직면한 소시민.일반 대중의 불안.공포+보수집단이 주도하는 공포정치+인종적 제국주의’를 결합한 것으로 서구 사회의 치욕적인 변종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라는 차별적.특권적 질서 위에 구축된 서구형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950~60년대 경기 호황이 끝나고 70년대 초반 이후 경제 위기가 시작되면서 서구 민주주의 또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필자는 이를 다음의 세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미국, 일본(이탈리아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등의 반동화, 둘째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의 위기, 셋째 북유럽의 선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서유럽의 사민주의에 대응하는 미 행정부는 60년대 케네디-존슨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이다. 민권신장, 흑백차별 시정 등의 진보적 시책은 대부분 60년대 민주당 행정부에서 이루어졌다.

70년대 초반 경제위기가 도래하면서 미국 정치가 보수반동화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대변하는 것이 레이건의 공화당 정부와 신보수주의, 기독교 우파이다. 21세기 초반의 미국 정치는 종교적 정치 신념의 강화, 군사주의, 엔론.월드컴 등 대자본의 부패, 빈부격차의 확대, 히스패닉.흑인 등 인종 문제의 부활 등 보수반동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일본 또한 93년 자민당-사회당 체제가 무너지면서 급속히 반동화하고 있다. 일본 정치는 미국의 영향력 하에서 전전(戰前)의 보수반동세력의 인맥과 체질이 온존되고 있었던 상태에서 90년대 초반 사회당이라는 진보 세력의 거점이 무너지면서 빠르게 보수우경화하고 있다.

최근의 군국주의 사조나 극단적인 반북 정서의 확산은 이를 대변한다. 미.일 등 북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미.일의 민주주의를 본받아야 할 모범쯤으로 보는 경향도 황당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서구 민주주의의 적자는 북서유럽의 사민주의 정치세력이다. 부르죠아 계급의 본류는 개인중심의 자유주의, 정글형 자본주의의 신봉자로 만민평등, 인민주권 등을 본질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태생과 뿌리가 다르다.

사민주의 정치세력은 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강제했던 소시민, 조직화된 노동운동을 뿌리로 하고 있으며 50~60년대 호황기에 부의 분배를 실현했던 집단이다. 70년대 경제 위기가 도래하면서 북서 유럽의 사민주의 세력은 신자유주의를 차용한 위장된(또는 전향한)사민주의 세력(독, 프, 영)과 나름대로 사민주의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으로 분화되고 있다.

전자의 경우 50~60년대 부르죠아 계급과 조직화된 노동운동 사이의 타협과 공존을 가능케 했던 물적 토대가 사라지면서 양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조성되고 있다. 대체로 조직화된 노동운동이 구조적으로 배제되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사이에 있었던 본질적인 간극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사민주의란 50~60년대 경제호황을 기초로 개혁된 자본주의라는 어떤 시대, 어떤 상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사민주의의 전통에 충실한 것은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나라일 것이다.

② 사회주의

생산수단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이윤 추구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원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반면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을 집단 소유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분화될 소지가 적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이 자본주의에 비해 넓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자본주의가 다원적 정치원리와 다당제를 채택하고 이해관계의 통일성이 강한 사회주의가 일원적 정치원리와 일당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이고 문제는 현실의 사회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에서 출현했는가였다. 본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문제였던 것은, 첫째 봉건적 잔재의 온존, 둘째 미국의 봉쇄 정책이었다.

사회주의 체제는 ‘전근대 사회→자본주의’를 거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분히 ‘전근대 질서→사회주의’로 비약했다. 따라서 전근대 질서의 잔재가 오랜 기간의 자본주의화를 통해 청산되는 과정이 없거나 약했다. 전근대 질서란 특권과 신분에 기초한 상하관계, 권위에 의한 복종과 인치(人治) 등을 의미한다. 필자가 보기에 소련(또는 러시아), 중국, 북 등에 이러한 특성과 잔재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특성과 잔재를 과장해서는 안된다. 첫째, 분권적 질서에 기초한 가톨릭.유럽 문명과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했던 동아시아.그리스정교 문화권의 역사적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전근대 사회라는 기준에서 보면 후자 특히 동아시아의 중앙집권적 특성이 보다 앞선 체제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둘째, 사회주의가 갖는 위와 같은 한계는 역사와 경험이 쌓이면서 변화.발전할 성질의 문제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또한 동일한 시행착오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 사회주의 질서는 근대 민주주의와는 또 다른 차원의 광범위한 대중적, 민중적 신임이 존재했다. 이 세 번째 측면에 대해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소련(러시아)의 경우 볼세비키를 중심으로 한 소수 집단이 1차 대전이라는 사회적 혼란을 틈타 집권에 성공했다. 레닌이 주도한 1917년의 혁명은 토지와 평화, 빵을 요구하는 민중의 이해를 대변한 것이지만 광범위한 민중적 참여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소수 정예의 혁명 조직이 전격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또한 레닌이 동원했던 이데올로기는 민족적이라기보다는 국제적이었다. 세계혁명의 완성이라는 국제적 이념은 지적으로 훈련된 혁명적 인텔리에게는 설득력이 있을지 몰라도 민중적 토대의 강력한 원천인 민족주의에 비해 낯설고 추상적이었다.

중국.베트남.북 등의 강점은 일본 침략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대중이 실제 참여하는 대중운동, 무장투쟁을 통해 권력이 창출되었고 그들이 동원했던 이데올로기 또한 대단히 민족적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베트남.북 등의 경우 정권의 정통성, 대중적 신임에 있어 강력한 민중적 지반이 민들어졌다. 특히 북의 경우 집권 이후에도 대중노선, 민중적 기반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잘 유지했다.

이런 점들이 북이 서구민주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의 체제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표현하는 근거이다. 봉건적 잔재가 남아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강력한 대중적 신임이 유지되고 있는 북 체제를 완성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서구 민주주의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현실의 사회주의가 직면했던 최대의 과제는 소극적으로는 미국의 봉쇄로부터 체제를 보위하는 문제와 적극적으로는 혁명을 수출하는 문제였다. 전자의 관점에서 중요했던 것은 스탈린의 소련, 마오의 중국이었고 후자의 관점을 중시했던 것은 북과 쿠바였다.

레닌의 러시아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중국과 베트남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는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에 비해 스탈린의 소련은 자신을 방어하는데 급급했다. 히틀러의 독일과 맺었던 불가침조약은 영.프 등 서유럽 열강이 히틀러의 소련 위협에 응당하게 공동 대응하기는커녕 은근히 독.소간의 충돌을 즐겼던 사태에 대한 절박한 자구책에 가까웠다.

1차 대전 직후 소련 봉쇄의 전초기지였던 반소블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코카서스 지역에 이르는 선)을 2차대전 이후 점령한 것도 팽창적인 측면과 함께 방어적인 측면을 함께 갖고 있다. 독일을 중립화하자는 제안이 무시되고 서유럽에 마셜플랜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강력한 소련 봉쇄정책이 구사되면서 소련은 소련과 동유럽에 고립되었다. 동아시아에서 소련은 일본에 대한 권익을 포기하고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만족했으며 마오의 중국과는 중국 혁명이 성공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갈등 관계를 유지했다.

마오의 중국 또한 미국과의 대결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마오 집권기 내륙 지역에 중공업이 분산 배치되고 행정.군사.생활 기반이 일체화된 인민공사가 출현한 것은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군사적인 고려 때문이었다.

마오는 항일 유격전 경험에 기초하여 광대한 내륙 농업 지역에서 자급자족하며 미국에 장기 항전하는 군사전략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보자면 등소평의 중국이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동남부 해안지역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미.중 화해에 따라 안보 위협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진영의 팽창 위협에 대한 서방의 호들갑스러운 선전이 계속되었지만 냉전 전 기간 소련과 중국은 대체로 수세적이거나 고립되어 있었다. 애초부터 힘의 열세에 있었던 상황에서 사회주의 내부의 분열과 사회주의적 대의보다는 국가 이익을 우선하는 조류가 확산되면서 그나마의 역량도 분산되었다.

1970년대 닉슨.키신저 라인이 중.소를 넘나들며 사회주의권의 분열을 계기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80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의 신보수주의, 대소 강경노선은 현실적인 소련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키신저의 상식적인 현실주의 노선 자체도 거부하는 보수반동 노선의 진출이었다.

전투적인 입장에서 사회주의와 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했던 것은 북과 쿠바였다. 북은 베트남에, 쿠바는 아프리카에 군대를 파견하며 반제전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주의 진영 전체에서 갖는 지위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었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진영이 해체되기 이전 사회주의 정치 체제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 조응하는 통합적.일원적 정치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정치 체제가 낙후하고 폭력적으로 비쳤던 것은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본질적으로 그렇다기보다는 봉건적 잔재의 온존, 미국의 봉쇄 정책에 따른 고립성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첫째는 짧은 시간 내에 낙후하고 전근대적인 잔재를 빠르게 청산했다. 문맹퇴치, 과학기술 발전, 남녀평등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둘째는 계획경제, 국가주도의 공업화라는 산업화에 이르는 또 하나의 길(서유럽의 산업화는 민간 자본주도, 자유방임에 기초했다)을 개척했다. 2차대전 이후가 되면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적인 과학기술 발전, 산업육성 등은 대단히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는다.

셋째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에 유력한 대안을 제시하며 자본주의의 내적 개혁을 추동한 점이다.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개혁은 사회주의가 주었던 대안적 위협으로부터 자극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한편,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는 시점에서 사회주의 진영은 다음의 세 가지 양상을 띠며 분화했다. 첫째는 옐친의 러시아처럼 서구형 민주주의를 직수입한 경우, 둘째는 중국.베트남처럼 일원적.통합적 정치원리를 유지한 경우, 셋째는 북,쿠바처럼 이데올로기 수준에서 일원적.통합적 정치원리의 고수를 주장하며 대미 강경노선을 견지한 경우이다.

고르바쵸프와 옐친으로 이어지는 친서방파의 서구형 민주주의 직수입은 러시아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사회주의를 지탱시키던 통합적 사회원리가 붕괴되면서 갑작스럽게 이해의 분화, 다양한 입장의 분출, 무정부 상황이 연출되었고 이 틈을 비집고 서구 열강과 구소련 시절의 특권층이 목적을 실현하고 이익을 챙겼다.

사회주의 해체라는 목표 이외에는 어떠한 진보적.건설적 의의도 없는 정책이 자본주의 승리라는 이데올로기적 목적에 따라 강행되었다. 이런 식의 조악한 만행은 지금도 개발도상국, 후진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중국.베트남과 북.쿠바의 정치체제가 다른 것은 전자가 일원적.통합적 정치 원리를 유지하는 목적이 국가 이익과 사회적 안정이라면 후자는 사회주의 고수에 있다. 전자의 경우는 싱가폴, 대만, 박정희 정부와 같은 권위주의적 성격의 정권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북의 경우 일원적.통합적 정치원리에 더해 선군정치를 도입하여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정치 원리의 견지에서 보면 ‘자본주의 = 다원주의.다당제’, ‘사회주의 = 일원주의.일당제’가 근본적인 수준의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선군정치는 일원적.통합적 정치원리라는 큰 틀 안의 하나의 특징,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군 중시 정책은 자본주의 선진 열강의 고립 정책을 뚫고 혁명과 건설을 추진했던 사회주의 나라들의 기본 특징이었다. 더 넓게 보면 인류 역사의 보편적 특징에 가깝다.

북의 선군정치 노선은 그러한 특징과 경험을 정책화한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원리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특징, 단계이지만 그것이 독자적인 의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보수반동화 때문이다. 북의 선군정치는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싶었던 중간 규모의 국가에게 무리한 선택을 요구했던 미국에 대한 대응이다.

2005년 2월 현재 세계의 헌병을 자처하는 미국의 강권노선으로 인해 인류의 미래라는 공익적 가치에 비해 그다지 큰 비중이 없는 북과 이란(이란은 선군 정치를 모방하고 있다)에서 일극 패권노선과 선군정치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인류 역사는 이런 불필요하고 무익한 충돌로 가득차있는데 이 과정 또한 어쩔 수 없이 가야할 길이라면 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현사회가 ‘전근대 왕정 → 근대 민주주의’로 이전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권력 집중 → 권력 분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사회주의의 통합적.일원적 정치원리를 이론적인 차원은 물론이고 감성적인 수준에서도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사람이 세계를 개척하는 기본단위가 커지고 권력과 정보가 집중화되는 것은 인류 역사의 기본 추세이다. 과학기술의 견지에서 본다면 17세기 과학 혁명이 천재 과학자의 다분히 수공업적인 작업(개인 실험실 수준)으로 가능했다면 19세기 물리학은 입자 가속기 같은 물자와 지식의 집중이 필요했다.

향후 우주를 개척하고 기상 이변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뛰어넘는 범국가적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 국가들 사이의 초국가적 협력 구조를 창출하는 것은 현 세계사의 기본 과제의 하나이다.

③ 제 3세계의 변화

㉠ 서구형 민주주의 유보

서구형 민주주의를 유보하며 인상적인 경제성장을 한 나라들이 있다. 이광요 수상의 싱가폴, 장개석.장경국 총통의 대만, 마하티르 수상의 말레이지아,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 푸틴의 러시아, 등소평의 중국 등이 넓게 보아 그러한 사례이다.

이들 사례를 통해 주목할 점은 자본주의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이다.

자본주의는 자본-노동관계, 산업화, 시장 생산 등을 의미한다. 서구의 경우 초기에 민간 자본가가 이들 모두를 주도했다. 그러나 산업화라는 견지에서 본다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또 하나의 주체는 국가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화는 대단히 효율적이고 빠른 기간 안에 산업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선진 자본주의의 경우에도 자본주의의 주체는 민간 대기업과 함께 정부 또는 국가가 여전히 중요하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정부 없이도 굴러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체제가 아니라 정부의 거시경제 통제, 교육.과학 기술 육성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인위적인 체제이다.

㉠의 특징은 산업화 추진 과정을 민간 부문이 아닌 정부와 국가가 주도하여 추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서구형 민주주의 도입을 유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선택이 유익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서구의 경우 자본주의 추진 과정에서 형성된 자본가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양보와 타협에 의해 성장한 중간층이 민주주의의 주체라 할 수 있다. 유사한 차원에서 이들 국가의 경우 산업화의 주체와 산업화 추진 과정에서 수혜를 입은 집단이 누구인가와 그에 대한 대중적 신임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싱가폴의 경우 사회적 안정을 바탕으로 한국보다 폭넓은 개방정책을 시행했지만 부정부패의 정도가 약했고 부의 분배 정도가 높아 체제에 대한 신임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말레이지아가 유사하지 않을까?)

한편 대만은 중소기업+다국적기업 중심의 발전 전략과 부정부패가 적었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의 소지가 원천적으로 적었던 반면 박정희 정부는 재벌 중심의 발전 전략과 특권층의 존재로 항상적인 사회적 갈등과 긴장에 시달렸다.

네 마리의 용으로 불렸던 대만.싱가폴에 비해 박정희 정부의 남이 정치적 격랑에 휩싸였던 이유는 부와 체제에 대한 대중적 신임이 약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는 대만.싱카폴보다는 박정희 정부에 가깝다. 따라서 체제에 대한 신임도가 약한 반면 이를 통제할 권력의 안정화가 중요 변수이다.

위의 관점을 남북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박정희 정부의 반민주적 체제를 교정했던 것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역동적인 민주화 투쟁과 그러한 과정에서 형성된 부의 분배였다.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기존의 특권층을 대신하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집단이 체제의 정통성을 보강-강화하고 부의 분배를 통해 중간층이 발전한 것이 80년대 중후반 이후 발전의 요인이다. 후술하겠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산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80년대 중후반~90년대 중반까지의 발전을 잠식하고 있다.

반면 북의 경우 정치적 안정에 기반하여 경제성장을 추진하되 중국의 선부론(先富論-특정 계층, 특정 지역이 먼저 발전하고 이에 기초하여 여타 계층.지역을 발전시키는)을 비판하며 사회의 균등 발전.분배를 모색하고 있다.

중국의 모델이 박정희 정부라면 북의 모델은 스웨덴인 셈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보다는 북이 구조적.원리적으로 체제에 대한 신임도가 높을 것이다. 현재 그렇지 않거나 외견상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은 경제전략보다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압박 정도가 워낙 크고 이데올로기적 조작이 강하기 때문이다.

북의 경우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소수 지도집단-체제 신임도가 높은 집단-체제 이탈.소외 세력’으로 3분되었는데 이는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탈북자란 3번째 부류를 의미하는데 여전히 첫 번째, 두번째 부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대중적 신임도는 높은 편이다.

문제는 중국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와 북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 교차하면서 실제 현실에 비해 과장되게 비치는 것이다.

㉡ 신자유주의 + 서구형 민주주의

서구형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추진될 경우 심각한 정치적 격변과 사회적 불안정이 노정된다.

첫 번째 유형은 김대중(DJ)-노무현 정부,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의 룰라 정부 등이다.

DJ-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시켰는데 이 때의 민주주의는 ㉠과 같은 “독특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유보없는 서구형 민주주의였고 시장 경제는 신자유주의였다.

197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등장은 서구형 민주주의 실현의 초기 조건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서구형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인 중간층의 존재이다.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중간층이 잠식되어 민주주의의 사회적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빈부격차를 심각하게 느끼는 비율이 93%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점차 태풍의 눈으로 진입하고 있다.

넬슨 만델라나 룰라는 전통적인 진보세력이 집권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사례이다. 이 경우 만델라, 룰라의 정치적 측면에서의 성과(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의 경우 이전에는 흑백 분리 정책에 의해 빈곤했다면 이제는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빈곤하게 되었다. 브라질의 경우도 유사하다.

만델라, 룰라가 대변했던 진보적인 정치 역량은 역설적으로 빈곤층,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가속화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을 봉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유형에서는 사회적 갈등과 대결의 격화가 나타난다.

특히 중남미와 아프리카, 중동 이슬람 사회가 전체적으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 이 유형의 특징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종교적 원리주의, 원주민 운동이라는 전통적인(?) 요소와 쉽게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의 부활은 진보적 이념이 출현하지 못한 한계의 표현이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중남미의 경우 90년대 후반부터 정치격변이 계속되고 있다. 중남미(아프리카나 중동 이슬람도 유사하다)가 동아시아 또는 한국과 달랐던 것은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오랜 역사적 전통에 따른 근대적 맹아(민족 수준의 통합력, 교육열, 관료적 전통 등)가 약했던 점과 한국의 일부 민간 대기업, 공기업처럼 신자유주의에 적응하여 신자유주의의 충격을 완화하는 집단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등장한 것이 룰라류의 온건 좌파 정권, 차베스류의 민중주의적 정권, 멕시코와 남미 북부지역(에콰도르, 페루 등)의 원주민 운동, 폭동 등이다. 이 중 주목을 요하는 것은 차베스 대통령의 민중주의적 시책과 원주민 운동이다.

차베스 정권은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에도 불구하고 빈민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바로 이 점이 DJ, 만델라, 룰라의 외형적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진보적 요소이고 제도권 언론에서 양자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이유이다.

또한 중남미에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심화되면서 원주민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멕시코의 아즈텍, 페루의 잉카문명은 에스파냐 군대에 의해 절멸되었다. 따라서 최근 부상하고 있는 원주민 운동은 근대적 정치력에 의해 추동되는, 역사적 뿌리가 공고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전근대적인 원주민 공동체가 400~500년 이전의 역사를 인위적으로 발굴하여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여 싸우는 양상이다.

여기에는 멕시코 남동부 오지의 산디니스타반군에서 에콰도르의 원주민운동, 베네주엘라의 차베스나 페루의 알레한드로(톨레도)에 보내는 지지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폭넓게 분포되고 있다.

중남미의 원주민 운동에 비견되는 중동.이슬람 사회의 반응이 종교적 원리주의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이 이슬람 공동체로의 회귀, 이슬람의 축자적 이해와 결합하는 양상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중남미, 중동 이슬람과 같은 대중적 저항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근, 종족분쟁, AIDS 등으로 대륙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신자유주의에 함몰되었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했던 짐바브웨는 백인 소유의 토지를 강제 점유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차베스 유형이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해 평가는 보류한다.

이 두 번째 유형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정한 과학기술, 훈련된 행정관리, 민족적 통합력 등 근대화.산업화를 추진할 기본 역량의 중요성이다. 둘째, 신자유주의적인 약탈이 아니라 선진 부국의 선의에 기초한 분배와 접근이 중요하다. 셋째, 첫째.둘째 요소가 결여된 조건에서 서구 민주주의 외형만 도입하게 되면 사회는 오히려 갈등과 대결로 얼룩진다.

아프리카의 경우, 이전에는 평화롭게 공존하거나 싸우더라도 원시적인 무기로 싸우던 종족분쟁이 현대적 무기와 시장논리가 도입되면서 분쟁과 갈등의 양상이 예민하고 대규모적이 되었다. 중동.이슬람이나 중남미의 원주민 공동체 또한 그대로 두었다면 비록 낙후하더라도 보다 인간적이고 평안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