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자유의 확산

옥중에서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

2005-02-28     외부기고
민경우(통일연대 사무처장,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

통일뉴스는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운동 현장의 일선에서 뛰어온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이 직접 쓴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은 간첩죄명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민경우 처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원고를 '옥중기고' 하는 방식으로 게재된다.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 2003년 12월 1일 전격 연행된 후 올해 5월 24일 1심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3년 실형을 선고 받고 이어 10월 28일자로 3년 6월형이 확정되어 현재 서울구치소(186번)에 수감 중이다.

'민경우의 통일운동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부시 행정부는 역대 미 행정부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대단히 이념적인 정권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 행정부를 포함 모든 나라의 정부 또한 일정한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념성은 국익이라는 보다 큰 틀에 의해 한계 지워지고 조정되는 수준이었다.

근대 주권국가 체제가 수립된 이후 국익은 가장 포괄적인 차원에서 정치.외교 행동을 좌우하는 일종의 좌표였다. 국익의 견지에서 이념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겨 칠 수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근대 사회의 주요 특징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국익”이라는 익숙한 좌표를 새로운 이념적 틀로 바꾸어 놓고자 한다. 가령 “국익”이라는 틀에 비추어 보면 군사 행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적대국의 이념적 체제”보다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에 있다면, 부시 행정부는 “적대국의 이념적 체제”를 바꾸어야만 “국익”이 보장된다고 보는 것 같다.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전도된 인식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전 세계를 파란으로 몰고 간 격변을 이해하는 주요 단서이다.

본 글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그러한 이념적 특징을 편의상 “자유의 확산”으로 명명하고 그것이 몰고 온 세계적 수준의 변화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그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적해 보겠다.

① 대 테러 전쟁

미 본토를 겨냥한 국제적 테러단체의 공격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예고된 바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선전 포고하고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을 공격한 것은 1998년의 일이었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골격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QDR(2001.9.30 발표)에서 미 국방부는 미 본토에 대한 전혀 예기치 못했던 공격이 있을 수 있음을 강조하며 “위협”에 근거한 군사력이 아니라 “능력”에 기초한 군사력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대미공격은 미국으로써는 예기치 못했던 돌발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9.11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아마도 대단히 오랫동안 산발적이면서도 끈질긴 대치가 계속될 것이다.

미국과 국제적 테러단체의 대치가 계속되더라도 승패는 분명해 보인다.

테러를 둘러 싼 국제적 수준의 전선은 거의 모든 주권국가 - 테러단체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테러에 관한 한 유럽은 물론이고 중.러 또한 미국과 동일한 입장에 있다. 중.러의 경우 티벳.체첸 등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중.러의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북.이란.쿠바 등의 경우 과거 냉전 시절이라면 반제투쟁에 대한 “전투적” 지원과 테러 지원이 혼재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냉전 이후라면 반제 투쟁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더라도 의식적으로 그것이 테러 지원과 같은 외양을 띄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심지어는 전 세계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시민사회 진영조차도 테러공격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알 카에다 류의 테러단체가 때로는 극적이고 충격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대테러전쟁의 승패가 분명하더라도 우리는 대단히 오랜 기간 테러의 충격 속에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테러는 사회적 모순의 발현이지 극단적인 미치광이의 공상적인 도발이 아니기 때문이다. 테러를 낳은 사회적 토양이 온존하는 한 테러를 통해 문제를 표출하려는 절망적인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대테러전쟁과 관련해 명백히 할 것은 이 대치 전선에서 공격적인 입장에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테러단체라는 점이다. 테러단체의 출몰은 국민국가 단위에서 미국에 저항하고 진보적인 사회체제를 건설할 전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전망은 다분히 종교적이거나 유토피아에 가까운 반면 현실의 목표는 저항 그 자체일 가능성이 크다.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테러 공격에 전전긍긍하는 미국의 모습이 대테러 전쟁의 본 모습이다.

부시의 세계 전략의 견지에서 본다면 9.11과 그와 유사한 사건에 대한 대응은 잘 기획된 전략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난처하고 돌발적이며 위협적인 공포에 대한 즉자적이고 수세적인 대응에 가깝다.

2002년 1.29 부시 대통령은 시정 연설에서 북,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칭한 바 있고 2005년 1월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는 의회 청문회에서 북, 이란, 쿠바, 미얀마, 짐바브웨, 벨로루시를 “폭정의 전초기지”라 거론하였다.

부시 대통령이나 라이스 국무장관이 거명한 나라들은 부시 행정부의 전략적 기조와 이념적 좌표를 잘 보여 준다. 아래에서는 이를 몇 가지 갈래로 나누어 서술해 보겠다.

② 중동 민주화

이른바 “자유의 확산” 정책의 핵심적인 전략 단위는 중동.아랍 사회의 비(非)친미적인 국가들이다. “자유의 확산” 정책은 중동.아랍 사회에서 非친미적인 국가들을 친미.서방식 정치 체제로 바꾸어 중동.아랍 사회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는 중동 민주화 정책의 일환이라기보다는 대테러전쟁의 연장선하에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유리했던 것은, 첫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9.11의 연장선하에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반발이 약했고, 둘째 아프가니스탄이 종족.부족 단위의 전통 사회이고 오랜 내전의 무대였기 때문에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미국이 승리했다고 정치적으로 주장할 여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빈 라덴의 전우였던 탈레반의 수장인 오마르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다.

이라크의 경우 중동 민주화 정책의 1차 핵심 목표였다. 미국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지만 민심이반과 끈질긴 테러공격이라는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1.30 이라크 총선 결과 강경 시아파의 집권이 확실한 바 미국은 결과적으로 후세인, 수니파, 세속적인 정권→시아파, 종교적인 정권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보면 미국의 패배는 명백하다. 상황이 다소 복잡한 것은 이라크의 향후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적으로 패배한 미국이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상황을 호도할 여지가 있다는 점 등이다. 이라크는 이제 다음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경우 현격한 힘의 약세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강요된 평화가 모색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이스라엘과 신임 압바스 총리 사이의 평화협상이 성사된다면 미국의 중동 민주화 구상은 그런대로 “한 건”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마에 총을 들이 댄 채 강요된 평화라도 살육과 대결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훗날 역사는 팔레스타인을 두고 벌어졌던 만행과 이를 방관했던 인류의 양심에 대해 물을 것이다.

중동 민주화 구상의 최대 격전지는 아마도 이란일 것이다. “자유의 확산” 정책의 골간이 중동.아랍에 있는 만큼 미-이란의 격돌은 부시 행정부의 최대 승부처이다.

미-이란 대치를 주도한 것은 미국이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이라크 침공 과정과 결합되어 한 덩어리로 사고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1차 목표가 이라크였다면 이란과 시리아는 2차 목표였다.

미국의 공세에 맞서 이라크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이란의 반격이 핵카드이다. 이란이 리비아식 모델을 따르지 않는다면 미국과 이란은 조만간 1990년대 초반의 북미대결과 유사한 양상을 띨 것이다.

최근 정황으로 보면 미국과 이란은 외나무 다리위의 가파른 대치선에 들어서고 있다. 이란의 핵 무장은 “자유의 확산”은커녕 “비확산체제” 전체를 뒤흔들 것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써는 양보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한편 이란은 핵 포기의 대가로 주권 보장을 포함한 광범위한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인바 이것은 “자유의 확산” 정책과 양립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의 난폭한 국제 질서 재편 기도는 조만간 이란과의 대결에서 폭발할 것이다. 대치 전선으로 보면 순서는 이라크-이란-북-중.러이다. 팔레스타인은 힘의 열세가 뚜렷하고 시리아는 이란과 동렬이지만 이란과 같은 전략 자원(핵)이 없다.

시리아는 이란의 전철을 밟거나 그 승패에 따라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쿠바는 북과 동렬에 있지만 북-쿠바의 관계는 이란-시리아 관계와 유사하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이 중.러까지 문제 삼으려면 그 다음 대상은 대만과 벨로루시이다. (짐바브웨와 미얀마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 없지만 큰 전략적 의미는 없는 듯 하다.) 미국의 입장으로 보면 이라크는 타협의 여지가 있고 북은 후순위이다.

긴급 과제는 이란에 대한 처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순서대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고 북과의 때 이른 대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위 세 가지 지점의 대치가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이란의 대결이 중요하다는 것은 갈등의 양상과 대결 지점이 가장 첨예하고 날카롭다는 의미이다.

③ 북, 쿠바

북미 대결이 미-이라크, 미-이란과의 대결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첫째 북미 대결에서 북이 공세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 둘째 미국의 선택 범위 안에 군사 공격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라크는 이른바 강대국의 선의 또는 무방비 상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이라크를 반면교사로 하여 다소 뒤늦게 핵 카드를 끄집어 낸 것이 이란이다. 이란 핵 무장의 명백한 동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었다.

반면 북은 90년대 초반부터 미국과 핵.미사일을 두고 각축했다. 또한 북은 주권보장이라는 소극적 목표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 또는 지위 조정이라는 공세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었다면 북미 대결의 현실은 북의 고립-한미동맹.주한미군 주둔이었을 것이다. 북의 핵은 이 현실을 깨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중동에서 현상을 바꾸고자 하는 세력이 미국이었다면 동북아시아에서는 북이었다.

미국의 입장으로 보면 군사분계선을 접점으로 적절한 긴장이 유지되는 상황이 미국이 기대하는 최선일 것이다. 군사 공격, 북 정권의 교체 등에 대한 계획이나 구상이 미 전략가들의 머릿속에 있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이라크나 이란에서와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라고 보기는 어렵다.

위와 같은 북미의 입장 차이가 2002년 하반기 2차 북핵 위기 이후의 상황을 설명해 준다. 북은 3자회담, 6자회담과 함께 자신의 핵 능력을 끊임없이 과시하고자 했다. 이것은 현상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면 미국은 북의 핵 능력을 애써 무시하려했다. 이것은 상황을 지연시키고 싶었던 미국의 처지와 관련이 있다. 그런 가운데 상황은 점차 한계선을 넘어 서고 있다. 미국은 핵무기 제조.보유 → 핵물질 수출 금지, 핵무기 제조 → 핵무기를 운반할 소형화 능력 부재로 이른바 금지선(red line)과 북 핵능력에 대한 평가를 후퇴시킴으로써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2차 북핵 위기가 90년대 초반의 1차 북핵 위기에 비해 긴장감이 덜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1차 북핵 위기 당시에는 북이 애써 핵이 없음을 강조하고 한미가 이를 가능한 확대하려 한 반면 지금은 북의 핵이 애써 별 것 아님을 부각하며 이를 축소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현실의 대치 지점과 일반 대중이 느끼는 긴장감이 다른 이유이다. 나름대로 현명한 대응일 수 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습하는 방책이 아니라는 데 한계가 있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상유지란 미국의 구도라는 점이다. “자유의 확산” 정책의 견지에서 본다면 미국의 구도는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북의 변화를 유도해 보겠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라이스 국무장관의 발언에서 북이 언급된 것은 이라크.이란과는 다소 차원이 달랐다.

이라크나 이란은 자유 확산의 당면 대상이었다면 북은 중.장기적인 목표였다. 따라서 이라크나 이란은 공격해 들어오는 미국을 방어하는 현상유지가 적극적인 정책일 수 있지만 북의 경우에 현상 유지란 미국에게 여유를 주는 것이다.

2003년 4월 북경 3자회담에서 리근 외무성국장이 기형적인 형태로 핵무기를 공식화한 이후 점차 수위를 높여 오던 북은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를 정식화하는데 이르렀다. 바야흐로 국면은 다자회담이라는 평온한 양상에서 급박한 형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2.10 외무성의 공식 성명은 2002년 2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점진적으로 강화되어 왔던 익숙한 상황의 계속이라는 측면과 그러한 과정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북은, 첫째 미국에 최종적인 선택을 요구하고 있고, 둘째 실제 핵 보유를 공식화하는 가능성에 대해 무게를 실고 있는 것 같다. 북의 외무성 성명이 핵 보유 선언을 통한 협상 전략이 아니라 실제로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새로운 판을 짜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잇다는 뜻이다.

④ 벨로루시와 대만

“자유의 확산” 정책은 중.러에도 적용될 것이다. 이 경우 중.러를 직접 문제 삼기 어렵다면 중.러의 앞마당을 흔들려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라이스 국무장관이 지적한 폭정의 전초기지 중 중요한 것은 벨로루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련 해체 이후 정치적인 차원에서 동유럽은 크게 다섯 가지 양상으로 분화되었다.
먼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은 일찌감치 소련으로부터 이탈했다. 둘째,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전통적인 가톨릭 문화권은 친서방 경향이 우세했다. 셋째,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등은 초기에는 구 공산계가 이름만 달리한 채 재집권했고 이후 혼미가 계속되고 있다. 넷째, 과거 오스만 터키의 영역이었던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 몰도바 등은 각종 민족 분규에 시달리고 있다. 다섯째. 우크라이나 등 과거 소련 시절 소련을 이루던 핵심 공화국 일부에서 최근 친서방 세력이 집권했다.

위의 다섯 가지 양상은 구소련 시절 소련 중심부와의 친화 정도에 따라 정치적 궤적이 다르게 나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는 동슬라브족의 일원으로 구소련을 이루던 핵심부이자 현 러시아에 가장 친화력이 높은 나라들이다.

그루지아에 이어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친서방 후보가 “시민혁명”을 통해 집권했다. 여기에는 미국과 서방의 개입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이 벨로루시를 지목한 것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뿌리 깊은 고립 정책을 상징하고 있다.

원리적으로 본다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자유의 확산” 정책의 대상이다. 그러나 러시아 집권 대통령을 정면으로 문제 삼기 어려운 조건에서 러시아의 코앞에 있는 친러 정권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에는 대만이 문제이다. 물론 대만 문제에 개입할 경우 자유의 확산과 같은 개념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러의 정치체제를 바꾸어야만 한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의 공략 대상은 중.러의 앞마당에서부터 사단을 만들려 할 것이기 때문에 그루지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로 이어지는 러시아 압박 정책의 중국판은 티벳.대만 등일 것이다.

미국이 중국 문제를 본격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은 중동.아랍에서 막혀 있기 때문이다.

⑤ 동북아시아에서의 함의

필자는 본 글에서 미국의 공격적인 체제 변환 전략을 자유의 확산으로 명명하고 이 전략의 우선 순위를 이라크-이란-북-중러의 순으로 정리한 뒤 현 시점에서 이란-미국의 대치선이 가장 첨예하고 심각한 접점임을 지적했다.

이러한 정세인식이 동북아시아에서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정치군사적인 영역에서 동북아시아 정세를 격동시키는 요인은 북의 핵 공세와 미일동맹이다.

북의 핵 공세는 한미일 동맹 체제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보면 북의 핵 공세에서 북이 원하는 바는 북의 주권 보장이라는 소극적인 목표로 한정해서 다루어지고 있다. 북이 일단 핵 카드를 손에 쥔 이상 그것을 포기하는 대가는 생각보다 근본적일 것이다.

역으로 말한다면 지금처럼 미일동맹의 군사화 경향이 강화되고 여기에 남이 합류하는 양상이라면 북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2차 북핵위기는 북핵이 공식화되는 새로운 차원의 사태 발전인가, 아니면 북핵 포기-미일 또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의미있는 변화인가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동북아 정세에서 또 다른 주요 변수의 하나는 미.일 동맹의 강화이다. 미일동맹의 강화와 여기에 남이 합류하는 양상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세계 전략의 변화와 연동되어 있다. 미일동맹은 냉전 시절 소련 봉쇄 → 탈 냉전 이후 동북아를 무대로 하는 지역적 내용 →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세계적 대응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남의 경우 200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FOTA가 미군기지 이전.재배치, 미군전력 증강, 이라크 파병 등 비교적 당면 현안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2004년부터 시작된 SPI는 미국의 세계 전략 변화에 조응하는 한미동맹체제 전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2차 북핵 위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현상유지 정책이었기 때문에 2차 북핵 위기가 6자회담이라는 “평온한” 틀에 묶여 있던 상황에서 별다른 압박을 받지 않았다.

남의 경우 2002년 “감성적인” 반미 투쟁의 열기가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긴박한 정세 발전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2차 북핵 위기 국면이 “평온한” 국면을 벗어나 “급박한” 상황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미일 동맹 또는 한미일 군사동맹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미일 동맹과 중국의 관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첫째는 2차 북핵 위기와 미일 동맹과의 관계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결론이 나는 과정 이후에 본격화될 것이다. 둘째는 미일 동맹이 중국을 압박하는 봉쇄 기조를 전면화할 것이다. 아니면 90년대 중반의 그것처럼 “주변 사태”라는 이름 하에 우회적인 수준에서 대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현재 상태로 보면 중국은 2차 북핵 위기 수습에 전력을 다하고 있고 미일 동맹 강화 경향에 대해서는 주범인 미국보다는 종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 날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대중 봉쇄 기조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2차 북핵 위기라는 외나무다리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상의 내용을 시론적인 차원에서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북핵의 향방핵 보유 공식화
(인도.파키스탄처럼)
북핵의 상징적 폐기
(영변, 플루토늄 핵프로그램 폐기 / 고농축우라늄 묵인)
 한반도에서의 변화               - 북미 관계 정상화
주한미군 지위조정, 상징적 수준의 한시적 주둔
낮은 단계의 연방제 / 중립.평화지대
 미일-중 관계               - 미.일 동맹의 범위 세계적 수준으로 확대
단 중국 봉쇄 현실화 / 미.일 동맹에 남 편입 불가

북핵 폐기의 경우, 북은 고농축우라늄의 CVID식 폐기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미국의 무제한 사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은 고농축우라늄에 대한 의혹이 남아 있는 한 타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북핵 폐기의 대가로 북이 요구하는 최소치는 북의 체제 보장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지위 조정이다. 96년 2월 잠정협정 제안에서 북미 공동군사기구를 설치하고 남북미가 한반도 분쟁을 공동 관리하는 양상이 최소치 요구일 것이다.(남북 군사위, 북미 군사위)

위의 타협이 가능하다면 논리적으로 미일동맹이 중국봉쇄를 현실화하거나 여기에 남이 편입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미.일 동맹의 강화 경향은 보다 상위의 문제로 다른 수준의 대책이 필요하다.

결국 미.일 동맹은 90년대 중.후반 미.일 동맹을 강화해 가되 중국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하는 양상일텐데 이 경우 최근 미.일 사이의 새로운 수준의 안보선언 채택 움직임은 재조정되어야 한다.

또한 2004년 말부터 시작된 한미간의 SPI에서 주한미군을 유연화하려는 구상은 주한미군이 대만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으므로 심각한 경계의 대상이다.

한편 위와 같은 타협이 불가능하다면 북이 실제로 핵무기 보유를 현실화할 수 있다. 위와 같은 타협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북 핵보유 가능성은 커졌다고 볼 수 있다. 2.10 북 외무성 성명은 2002년 하반기 이래의 점진적 과정의 일환이면서 새로운 국면의 시작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