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시기.장소 안가리고 수용하겠다"

노무현 대통령, 경향신문과의 '송년특별인터뷰'에서

2004-12-26     이계환 기자
"정상회담이 가능만 하다면 시기, 장소 안 가리고 나는 그것을 수용할 의향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능만 하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이기는 했지만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와 관련 수용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여기서 '시기, 장소도 안가리고'라고 했듯이 그간 정상회담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전제로 한 것으로 여겨진 것에 대해 제3의 장소도 무방하다는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27일자로 보도된 경향신문과의 '송년특별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이같이 밝히고 그간의 국정운영 과정을 평가하고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분야별로 밝혔다.

특히 노 대통령은 최근 정국에서 태풍의 눈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연내처리 문제와 관련 "지난번에 거기에 대한 내 인식을 얘기했을 뿐인데 그것이 무슨 지시로 해석되고 하는 건 사실과 다르다"면서 "시기 문제는 당에서 하는 대로 판단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함으로서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지난번 '폐지'견해에서 '시기'문제로 다소 바뀐 듯한 느낌을 줬다.

또한 북핵문제의 한국의 주도적 역할문제와 관련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가 불가능"하지만 그런데도 주도적 역할을 얘기하는 이유는 "협상결과 발생하는 문제들은 어느 누구보다  더 사활적 이해관계를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해, 앞으로도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이해관계에 맞게 지속적으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노 대통령은 바람직한 한미관계와 관련 "그간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관계로 인식돼 왔는데 (참여정부 와서) 점차 쌍방적 관계로 개선돼가는 과정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답해 수평적인 한미관계가 바람직한 관계임을 나타냈다.

다음은 각 분야별 인터뷰 내용이다.

주요 분야 인터뷰 내용

▲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

-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법안들이 연내에 처리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 "저는 법안에 관해서 내가 갖고 있는 인식과 사리를 얘기할 뿐이죠. 어느 시점에 어떻게 통과하고 이런 것은 당과 국회에서 조절할 문제죠. 지난번에 거기에 대한 내 인식을 얘기했을 뿐인데 그것이 무슨 지시로 해석되고 하는 건 사실과 다릅니다.

국회와 정부는 완전히 협력해야 하지만 이런 문제는 자율에 맡겨야 되고. 원내전략은 당에서 하라는 게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어느 시기냐 이런 것은 당에서 판단해야죠. 그래야 정치가 유연해집니다.

내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도 아니고. 당에다 그런걸 맡겨야 정치에 유연성이 생깁니다. 시기 문제는 당에서 하는 대로 판단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북핵문제에서 주도적 역할 문제

- 대통령께서 순방 중 말씀하셨던 북핵 해결과정에서 우리의 적극적, 주도적 역할이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습니까.

= "북핵문제는 역시 북한과 미국이 주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결정적인 캐스팅보트는 중국이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왜 주도적 역할을 얘기하느냐. 구경꾼이 될 순 없다는 것이죠. 주도적 역할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지만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 협상결과 발생하는 문제들은 어느 누구보다 더 사활적 이해관계를 우리가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방향을 잡아나가는데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활적인 이해관계에 걸린 문제라면 미국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쳐야 하고 북한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걸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그동안 그것이 영향을 미쳤든 안미쳤든 경과는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대화에 좀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협상에 나올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은 조성된 게 아니냐, 북한이 자기 체면을 살리면서 일단 나올 수 있는 명분은 확보한 게 아니냐, 나머지 문제는 테이블에서 얘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느냐, 북한한테 그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 남북정상회담 문제

- 6자회담 진행 중 남북정상회담 불가 입장을 천명하셨는데요. 북핵 해결의 주도적 역할을 위해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전향적으로 사용할 의향은 없으신지요.

= "정상회담 문제는 제가 마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말한 것이죠. 정상회담이 가능만 하다면 시기, 장소 안 가리고 나는 그것을 수용할 의향이 있습니다. 또 가능하다면 추진도 하고 싶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내 판단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6자회담 기간 중에 만나면 주제가 6자회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 주제가 6자회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북한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을 요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를 만나서 북핵 문제를 논의하고 싶겠습니까. 그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겠습니까. 난 유리하다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회피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 한미관계

- 대통령께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한미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 "지금의 한미관계에선 미국이 한국민들의 정서를 많이 의식합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입장을 굉장히 경청하고 장기적인 방향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간 한미관계는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관계로 인식돼 왔는데 점차 쌍방적 관계로 개선돼가는 과정에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참여정부 와서 그런 경향이 좀 강화돼가고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단지, 그 부분에 관해 국내에서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옛날 생각을 갖고 쌍방적, 대등한 상호관계로 가려는 것이 한미관계를 나쁘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것 역시 낡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언론에 보도된 걸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게 미국 신문보다 더합니다. 내가 미국 국민들에게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서야 어떻게 되냐는 말이죠. 정부의 외교력을 공개적으로 그렇게까지는 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자료-청와대 춘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