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국보법 폐지론 '탄력'

2004-09-05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기자 = 국가보안법을 '지금은 쓸 수 없는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로 지칭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발언이 5일 공개되면서 국보법 개폐를 둘러싼 열린우리당내 논쟁은 급격하게 폐지론 쪽으로 힘이 모이는 양상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지지를 얻은 폐지론자들은 "당내 논쟁은 이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색했지만, 개정론자들은 "노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을 알기 전까지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무는 등 당황한 모습이다.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 의원모임' 간사를 맡고 있는 우원식(禹元植) 의원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가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라며 "국보법이 폐지돼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는 우리 주장이 옳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증명된 만큼 빨리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 것 같다"고 환영했다.

정봉주(鄭鳳株) 의원은 "최근 당이 혼란한 틈을 타 국보법 개폐 논의에서 소영웅주의적인 발언을 한 보수주의자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라며 "당의 정체성은 '개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라고 평가했다.

정 의원은 또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국보법 개정을 주장할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맞서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기우(李基宇) 의원은 "최근 대법원이 입법권을 넘어서는 판결문을 냈는데 대통령은 입법권이 있는 국회에 대해 주문을 한 것 같다"며 "행정부는 혁신하겠으니, 국회는 개혁입법을 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노 대통령의 생각도 완전한 폐지론이 아닌 형법으로 일부 대체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폐지론자 입장에서는 약간의 논란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대다수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는 만큼 당론 결정도 앞당겨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국보법의 안정적 개정을 추진하는 모임'의 안영근(安泳根) 간사는 "대통령이 강한 의지가 있다면 존중돼야 한다"라며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고만 했고 국방장관 출신인 조성태(趙成台) 의원도 "대통령의 워딩을 보고 이야기 하겠다"고 언급을 피했다.

이와 관련, 개정론자들 사이에서는 국보법 폐지 후 대체입법 추진 등 '절충론'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종걸(李鍾杰) 의원은 "형식을 폐지로 결정하게 된다면 보완입법을 주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보법 개폐를 둘러싼 첨예한 의견 대립 속에서 고심하던 당 지도부도 당론 결정의 물꼬가 터졌다며 내심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그리고 당의 가장 중요한 당원으로서 의견을 말씀하실 수 있다고 본다"면서 "당의장으로서 대통령의 그런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중요한 참조의견으로 생각하고 좀더 넓게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