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외교 "밖을 보는 시각 약해"
2004-08-19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것에 시각을 돌려야 할 숙명적 위치에 있는 나라입니다"
고(故) 김선일씨 피랍.살해사건 이후 첫 외부 공개강연 자리에서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러한 화두를 던지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18일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도산아카데미연구원 주최 조찬세미나에서 였다.
초유의 테러 참사인 김선일씨 사건으로 두 달 가까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외교통상부의 수장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고뇌'가 짙게 배어있는 인상이었다.
반 장관은 먼저 19세기말∼20세기초엽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열강이 각축을 벌였던 구한말을 거론한 뒤 "국제정세는 그 때와는 많이 다르지만 지정학적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며 "지금이 훨씬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 장관은 "글로벌 시대에서 한국이 해야될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교부 장관으로서 심리적 압박과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지난 2002년 9월 11일 이후 급변한 국제정세와 한미동맹 관계 조정,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일본의 과거사 문제, 재외국민 보호 및 안전확보, 탈북자 문제, 북핵 6자회담 및 남북관계 등 굵직굵직한 외교현안들을 설명했다.
특히 반 장관은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대에 분단 한국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으며, 그 역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냉정한 현실인식을 외교부 수장인 자신을 포함해 과연 정부와 국민 모두 제대로 갖추고 있는 지를 반문했다.
"국내에서 밖을 보는 시각이 약합니다. 국내적인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아) 보내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누리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만큼 국제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지 제 자신에게마저도 회의가 있습니다"
취임 후 7개월 남짓 동안 그가 마음 깊이 담아 뒀던 이야기로 비쳤다.
반 장관은 "우리는 부존자원이 적고 대외수출형이 되어야 하는 나라로 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하지만 이런 면이 간과되는 것 같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안보 분야이나, 우리 뜻대로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냉정한 현실을 '고백'했다.
강연에서 반 장관이 "인식을 현실적으로 하자, 한미관계를 동등하게 하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합리적 범위 내에서 형평성 있는 범위 내에서 한미관계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한중 통상관계가 미국을 앞질러 가고 있다. 현실적 문제도 소중히 가꿔 발전시키는 게 국익이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 것은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
한일관계와 관련해서도 그는 "우리가 일본을 아는 것보다 일본이 우리를 더 알고 있다는 데 놀랄 때가 있다"며 "우리도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