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정체성 설정 고심

2004-04-19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중배기자 = 한나라당이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대야소구도속에 새로운 정체성 설정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진보 진영이 대거 국회에 진입,보수 중심의 틀이 와해되는 변혁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이번 총선을 통해 원내 3당으로 급부상, 원내 진출 인사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지게 됐다. 이념의 폭을 넓게 잡으면 사실상 '좌우(左右) 동거'라는 미증유의 국회 환경에 처한 셈이다.

한나라당 내에선 17대 국회 초반 상당한 혼선과 갈등, 대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민노당과 한나라당을 양극점으로 하는 이념적 간극이 불러올상황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다양한 인적 구성상 당내부의 이념 정립도 쉽지 않은 과제로 보인다.

벌써부터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는 당 노선을 '보수'에서 '중도'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의 칼러를 '중도 보수'로 잡아야 하나 그 무게를 '중도'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연대 권영진(權泳臻) 대표는 "그동안 당이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면서 "이를 중도쪽으로 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대북정책의 경우 극우적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면서 "미래연대가 앞으로 정책활동을 강화, 당의 중도화를 견인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대북 화해.협력은 북한의 선(先) 핵폐기와 함께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는 또 "17대 국회 초반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면서 "국회를 무대로 삼는 '운동권 세력'의 활동에 엄밀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시각차는 새 국회가 개원되고 각 정파의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더욱 첨예하게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연대 관계자는 "일부 의원의 극우적 행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고 못박았다. 당에 '수구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언행의 폭을 제한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당내에선 지난 대선과 총선 경험에 비춰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견인해내지않고서는 지지층 확대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존 노선에서 탈피해 보다 유연한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안택수(安澤秀) 의원은 "우리 당에 중도 세력도 있고 보수 세력도 있는 것 아니냐"면서 "새가 양날개로 날듯, 보혁 세력이 각자 노선을 제시하고 그 노선으로 국민검증을 받으면 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우리 당 노선은 건강한 중도보수이며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라며 "이를 기준으로 하되 경직성을 완화해 가면서 열린 자세로 중도 보수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노당에 대해 "부유세 도입 등의 총선 공약을 보면 '좌파 성향'이나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처럼 변신할 여지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념 격차가 크나 현실정치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국회 파트너로서 상호 접점을 찾을 가능성을 엿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