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장관, '자주외교' 비켜가

취임사에서 '균형적 실용외교' 강조

2004-01-18     김치관 기자
신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문제가 됐던 간부들을 교체하고 내부 혁신과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키겠다고 선언했으나 '자주외교'를 비켜가 비판적 여론도 제기되고 있다.

17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 18층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반기문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가 소위 엘리트주의라든지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성향, 권위주의적인 문화, 동료애 부족으로 외부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다"며 "외교부 조직혁신의 노력을 계속해서 새로운 기풍을 진작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기문 장관은 "조직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구해 나가되 조직의 안정을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며 개방적인 조직문화, 진취적인 업무자세, 국민에 더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외교행정 등을 제시했다.

또한 관심을 끌고 있는 인사문제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발언 파문의 원인이 됐던 부서의 책임자들을 교체할 예정"이라며 "가급적 신속히 조치하여 조직을 안정시키고 당면한 외교업무의 수행에 차질없이 임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 장관은 "최근 국내외 언론에서 윤영관 장관이 교체된 것이 마치 청와대와 외교부간의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도됐는데 그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며 따라서 외교정책의 기조변화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장하고 참여정부의 '균형적 실용외교'를 계속 추진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균형적 실용외교를 거론하는 대목에서 반 장관은 미리 배포된 취임사에 '자주적이고 능동적'이라는 표현 대신 '능동적이고 신축적'이라는 표현을 구사하며 '자주'와 '동맹' 대신 '능동'과 '동맹'을 동시에 강조했다.

반 장관은 최대 외교현안으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이라크 파병의 성과를 거양하는 것"을 꼽고 북핵문제에 대해 "관련국들이 좀더 신축성을 발휘해가면 금년내에 타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하고 모두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진전에 맞춰가면서 남북한 교류와 협력을 증대해 나가는 것도 지금 대단히 중요한 현안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위한 외교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조속한 시일내에 구축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데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취임사를 마친 반 장관은 200여 외교부 간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으며, 30여년간의 외교부 근무경력 탓인지 "오랫만입니다", "잘지내셨습니까"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고 간부들도 "축하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등으로 화답했다.

이어 곧바로 2층 기자회견장으로 내려온 반 장관은 기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간단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이 자리에서 지난 90년 불평등하게 체결된 용산미군기지이전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의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해 91년 당시 외교부 미주국장으로 재직중이던 반 장관이 '소파(SOFA) 합동위원회 각서'에 서명했던 사실에 대한 해명요구가 있었다.

반 장관은 이에 대해 "국가원수가 다 재가한 뒤 소파 위원회에서 행정적으로 처리했을 뿐"이라며 "소파위원회는 법적인 효력을 부여하는 기구가 아니고 관계기관 간에 합의된 내용을 처리하는 행정적인 기구"라고 책임 소재를 피해갔다.

또한 파월 미 국무장관이 이례적으로 빨리 축하 전화를 한데 대해서는 "한미관계는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제껏 한미협의 과정과 빈도를 보면 이만큼 한미간에 긴밀하게 빈도높게 자주 오가며 협의한 경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미관계가 아주 성숙된 관계에까지 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평소의 지론을 펼쳤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대미 의존적인 외교행태에 대해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도 "정 수석이 외교 기조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자주외교는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균형적 실용주의 외교로 보면 된다"고 우회해 갔다.

'한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상임공동대표 문규현, 홍근수)은 17일 '자주외교를 위해 대표적 사대주의자 반기문 씨를 외교통상부장관에 앉힌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용산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한 소파합동위원회 각서 문제를 제기하고 '외교실무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대표적인 친미사대주의자'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청와대가 미국과 보수층의 압력에 굴복하여 전임 윤 장관 못지 않은 친미 사대주의적인 인사를 외교부의 수장으로 앉히는 것을 보면서 커다란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신임 반기문 장관이 내부 혁신과 '균형적 실용외교'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진정한 내부 개혁과 자주외교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얼마만큼 충족시킬지는 미지수며, 취임시부터 만만치 않은 문제제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은 반기문 장관과의 일문일답을 요약한 내용이다.

□ 문 : 미국과의 관계설정에서 입장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찬용 인사수석이 대미의존적 과거적 행태와 자주외교를 대립적 개념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답 : 기본적으로 한미관계는 아주 탄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제 정찬용 인사수석이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은 그 분이 인사를 발표하면서 외교의 기조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본인이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인식이나 인상을 말한 것 같다. 어제 청와대에서 말씀드렸다. 자주외교라는 것은 참여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균형적 실용주의 외교라고 보면 되겠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복잡한 이슈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목표와 가치를 조화롭게 맞춰나가고 우리에게 주어진 정책적 옵션을 택하는 데 있어 유연하고 실용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균형적 실용주의 외교다. 그런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분이 외교전문가도 아니고 목적은 단순히 인사발표를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문 : 이번 사태를 인사로 정리하고 신진기풍을 진작하겠다고 큰 가이드라인만 제시했는데 사실은 외교부내에서 기대반 걱정반으로 큰 인사 회오리가 몰아치지 않나 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 답 : 조직은 항상 안정성이 있어야 하고 직원들이 안정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차관이 바뀐다고 해서 인사회오리가 분다든지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번에 여러 가지 국민적인 비판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것과 관련된 직원들에 대해서는 간부들과 협의해서 납득할 만한 선에서 인사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 문 : 오늘 취임사에 외교부 조직 개혁 발언이 많은 데 이 부분에 대해서 임명장 받으면서 특별히 대통령의 당부말씀이 있었나.

■ 답 : 대통령께서 외교부의 개혁에 대해 구체적인 말씀은 없었다.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한 뒤 차 한잔 마시면서 말씀하신 것은 대통령이 취임이래 한미관계 강화에 최대한 노력했고 한미간에 이견이나 정책적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미간에 협의를 해가는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우리의 입장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우리의 입장이 이해될 수 있는 선에서 협의도 하고 이런 과정이 갈등이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게 아니냐는 말씀이 있었다.

□ 문 : 미국 국무성에서 외교부 장관 임명을 환영한다는 코멘트가 빨리 나왔는데 신속성이나 톤으로 봐서 과거 외교팀과는 불편한 관계가 있었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나.

■ 답 : 그렇게 생각 안하고, 한미간의 관계는 참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어제 파웰 장관이 전화를 거셨길래 한미 관계는 너무나 소중하다(too special, important)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까지 한미간의 협의 과정과 빈도를 보면 이만큼 한미간에 긴밀하고 아주 빈도높게 워싱턴-서울-동경을 왔다갔다 하면서 자주 협의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문제의 중요성도 있겠지만 그만큼 한미관계가 성숙된 관계까지 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문 : 관계자 인사조치를 한다고 하셨는데 취임사를 보면 지나치게 내용이 있는 대목들이 눈에 띤다. 투명성과 효율성, 변화와 혁신 등 나름의 의미를 두고 있는 듯 한데 좀더 첨언해달라.  

■ 답 : 이번에 장관이 바뀌게 된 데도 그런 측면이 많다. 외교사안 보다는 외교를 처리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조직상의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근의 화두는 변화와 개혁, 혁신 이런 것인데 외교부도 이런 데 동참해야 된다는 뜻에서 일반적으로 말한 것이다. 외교부에 대한 외부의 인식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엘리트 의식에 너무 젖어있다거나 벽이 높다는 데 대해서도 이제는 좀더 성찰을 해보고 필요하면 바꿔야 되는 것 아니냐. 외교부가 그간 쌓아온 전통과 업적을 기반으로 해서 필요한 변화와 혁신을 해나가겠다고 말한 취지 그대로 이해하면 좋겠다.

□ 문 : 처음 취임날부터 난처한 질문을 드려 죄송하다. 작년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이 용산기지 이전협상과 관련된 양해각서, 합의각서가 법적효력이 없어 장관님이 미주국장으로 있을 때 사인을 했다는 안기부 자료가 나왔다고 했는데. 장관님이 사인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명할 수 있는지.

■ 답 : 그 부분은 안영근 의원을 만나서 충분히 설명을 드렸고, 용산기지 협상 문안 MOA, MOU가 1990년 6월 25일엔가 국방장관과 연합사령관 사이에 체결됐다. 제가 당시 1990년 6월부터 미주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미주국장은 당연직으로 소파 공동위원회의 공동위원장으로 돼있다. 그리고 소파 규정에 따라서 주한미군에 공여되는 시설과 구역은 전부 소파에서 협의하게 돼있다. 소파에 사인하는 것은 거기에 법적인 효력을 부여하는 기구가 아니다. 이것은 이미 정부로서 MOA로서 체결을 했고, 당시에 용산위원회도 구성이 됐는데 국무총리가 위원장이었고 정부에서 국가원수가 다 재가한 문서를 소파 위원회에서 우리가 행정적으로 처리한 것이지 소파에서 다뤄졌다 해서 효력이 없는 문서가 효력이 된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분명히 미국측에도 설명을 한 것은 이것은 소파에 위임된 내 권한 범위내에서만 서명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인상으로 봐서 오해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소파가 법적인 효력을 부여하는 기관이 아니고 상호 관계기관 간에 합의된 내용을 거기서 처리해 나가는 행정적인 과정이다.

□ 문 : 한일관계와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일 공조에는 변화가 없나. 그리고 미국과 일본에 갈 계획이 있으면 알려달라.

■ 답 : 한일간에 미래 지향적인 관계 발전이라든가 한일간의 기본 우호관계, 한미일간 북핵 공조체제에는 전혀 변화가 없고 긴밀한 협조체제가 유지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는 문제는 새로 취임해서 원칙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파웰 장관과 통화할 때도 그런 데 대해서 원칙적으로 합의를 본 상태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기는 상호 편리한 시기를 택해야 되기 때문에 다음에 말씀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