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7. 북미관계의 전망
2001-01-31 연합뉴스
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2001년 북미관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가 검토되어야 한다. 하나는 10여년에 걸쳐 지속된 북미관계의 역사적 과정에 대해 올해 출범한 부시 새 정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대북정책의 변화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이른바 세계지배전략의 일환이자 북미간 현안인 `불량국가` 북한의 미사일을 빌미로 진행하려는 NMD(국가미사일방위) 정책의 지속여부다.
올해 북미관계는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여부와 NMD정책의 지속여부에 달려 있어
전자부터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북한과 미국은 1992년 당시 김용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캔터 국무차관 사이의 뉴욕회담 이후 최근까지 여러 갈래의 회담과 협상을 통해 양국의 관계개선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양국간에는 두 개의 주요 합의문이 있었다. 하나는 1994년 제네바 핵합의이고 다른 하나는 작년의 `북미공동코뮤니케`이다. 그리고 그 사이인 1999년에 미국의 대북 시각에 결정적 변화를 오게 한 `페리 프로세스`가 있었다. 북미관계는 이 2개의 합의문과 1개의 보고서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클린턴 정부 때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앞에서 밝혔듯이 올해 북미관계의 핵심은 부시 정부가 클린턴 정부 때 북한과 합의한 내용들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변경할 것인가 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제네바 핵 합의문과 `북미공동코뮤니케` 그리고 `페리 프로세스` 등을 인정할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 이다.
일각에서는 부시 새 정부의 국무장관 및 국방장관을 비롯하여 북한문제를 다룰 외교팀이 클린턴 정부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짙다는 점을 들어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 즉 대북 강경책을 쓸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군출신으로서 1991년 페만전쟁을 지휘하였고,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철저한 NMD 옹호자이며,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매파로 알려져 있다.
부시 정부, 클린턴때의 `페리 프로세스`와 `북미공동코뮤니케` 등 무시하기 어려워
먼저 1994년 제네바 핵합의와 관련하여 부시 정부는 이를 변경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는 제네바 핵합의의 전면적 파기라기 보다는 현실적 변경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1994년 미국은 북한의 핵동결에 대한 대가로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해 주기로 합의를 한 바 있는데, 2년을 남겨둔 지금 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것이며 변경은 불가피하다. 미국의 제네바 핵합의 변경 견해는 이러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이 2003년까지 경수로를 건설하지 못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국제관례법상에도 어긋나고 신의관계에서도 어긋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때 미국은 북한의 새로운 요구에 쩔쩔 맬 공산이 크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미국이고 따라서 미국측이 불리한 새로운 합의를 해야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1999년 페리 북한정책 조정관에 의해 작성된 `페리 프로세스` 역시 부시 정부가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그 보고서 자체가 당시 미 공화당과의 참여와 조율 그리고 남한 등 주변국들과의 조율 속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반도문제의 한 당사자인 남한 김대중 정부의 입장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페리 프로세스` 이외의 다른 대안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 부시 정부가 대북정책의 바이블이라는 `페리 프로세스`를 버리기 어려운 점이다.
그리고 작년 10월 12일에 합의한 `북미공동코뮤니케` 역시 그것이 비록 클린턴 정부 막바지에 이뤄졌다고 해도, 북미의 역사적 과정과 현안을 모두 포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아직 식지 않은` 합의인지라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그 합의문에 명시된 미국 대통령, 즉 부시의 방북문제가 북미간 정세변화에 따라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이렇게 볼 때 부시 정부가 클린턴 정부 때 이뤄진 북미간 합의문들이나 `페리 프로세스`를 변경하거나 파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북미관계의 불안정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후자인 NMD 정책에 기인한다.
미국의 NMD 정책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일극체제를 유지하려는 세계전략
미국의 NMD 정책은 단순한 대북전략이 아니라 세계지배전략의 일환이라는 데에서, 북미관계로 한정해 보고자 함에 있어서 어려움과 복잡함이 있다. 사실 매파로 불리우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팀은 NMD 체계와 TMD(전역미사일방위)체계를 추진할 의사를 적극 표명하고 있다. NMD 정책은 클린턴 정권 하에서 북한의 미사일 등을 구실로 추진하려다 자체 결함과 여론 반대에 부딪쳐 추진여부에 대한 결정이 차기정권에 넘겨졌었다.
따라서 북미관계의 열쇠는 양국관계로만 한정하면, 북한의 미사일 대 미국의 NMD 정책의 맞섬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올해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즉 김 위원장의 방중은 언론에서 떠들 듯 북한의 경제개방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보다 스케일이 더 큰 `제국주의에 맞서는 사회주의 고수`의 연대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른바 북한 중국 러시아간의 반NMD 연대전략의 가시화인 것이다.
여기서 북미관계의 본질에 대해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미관계는 좁게는 한반도문제의 이해 당사자로서 맞서 있고, 넓게는 미국의 일극체제 유지를 위한 NMD 정책 대 그것의 빌미가 되는 북한의 미사일문제가 맞서 있는 형국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한반도문제 면에서 볼 때, 북미관계는 여전히 군사적 적대관계에 있다. 이는 1950년 한국전쟁이 아직 완전 종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국간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평화보장체제)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있다. 평화협정을 통해 양국간의 적대적 관계가 청산된다면, 양국은 관계정상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포괄적인 내용은 이미 `북미공동코뮤니케`에 담겨져 있다.
또한 미국의 세계전략 면에서 볼 때, 미국은 밖(이른바 `불량국가들`에 대해)으로는 대량살상무기비확산 정책을 쓰면서 안(미국 자체와 동맹국간에)으로는 NMD와 TMD 정책을 쓸 것이다. 이 두 가지 미국의 정책에 묘하게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북한이 개입되어 있다. 미국에 의하면, 대량살상무기비확산 정책에도 `불량국가`인 북한의 미사일이 걸려 있고, NMD 정책을 하고자 하는 강력한 이유중의 하나도 역시 북한의 미사일이기 때문이다.
올해 부시 정부는 정권 초기인 만큼 외교정책을 특정 국가들에 대한 개별정책보다는 세계전략이라는 관점에서 펼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도 여기에 `끼인` 채 진행될 것이며, 이런 가운데 북미관계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초기에는 다소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는 물론 프랑스와 독일 등 서방 우호국들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NMD 정책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다가오는 정보전쟁시대과 우주시대에서도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제압하고 유일 초강대국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계전략적 차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부시 정부의 출범을 북미관계 차원이 아닌 세계전략 차원에서 대응
북한 역시 미국 부시 정부의 출범을 단순히 북미관계의 차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차원에서 대응하려는 듯이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시각은 올해 초 신년공동사설에서 "자주성에 기초한 국제관계발전의 새 시기를 주동적으로 열어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의 일관한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우리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들이라면 그 어떤 나라든지 대외관계를 개선해 나갈 것이며, 세계의 자주화와 인류의 평화위업에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곧이어 북한은 부시 정부가 이제까지 대북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자 "미국이 우리에게 칼을 내밀면 칼로 맞설 것이고 선의로 나오면 우리도 선의로 대답할 것"이라고 맞대응했는데, 이는 북한이 부시 정부의 세계전략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북한은 올해 한반도문제에 있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극대화면서 미국의 대한반도 개입을 줄이려 할 것이고, 미국의 NMD 정책에 대해서는 중러와의 전통적 친선관계를 확인하면서 반NMD 연대전선을 펼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일극체제에 대해서는 서방유럽국가들 특히 EU국가들과의 수교 등을 통해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는 즉 미국의 일극체제에 맞선 다극체제 형성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2001년 북미관계는 초기에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북한이 `끼인` 형태로 불안하게 진행되면서, 미국의 NMD 전략이 북한 미사일 때문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라는 논란을 겪으면서, 이후 북미간 역사적 관계의 토대 위에서 양국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상적인 과정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