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생이별..귀환길(종합)
2000-08-18 연합뉴스
분단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흩어져 살아온 남과 북의 어머니와 아들, 형과 동생, 자매, 친척들은 사흘간의 꿈만 같은 짧은 만남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또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설움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서울과 평양 방문 사흘째인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은 17일 전날과 달리 비공개리에 진행된 가족, 친척들과의 상봉에서 반세기여 가슴에 품은 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약없는 재회를 약속했다.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방문단 100명은 50명씩 두팀으로 나눠 이날 오전 10시, 오후 4시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가족단위로 만나 다시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삭였다. 한팀이 개별상봉을 하는 동안 다른 팀은 창덕궁(비원)을 둘러봤다.
북한의 인민화가인 정창모(68)씨는 남측 여동생인 춘희(60.경기 군포)씨와 남희(53.전북 전주)씨와 뜨겁게 끌어안고 이별의 슬픔을 달랬다.
북한의 저명한 수학자인 조주경(68.김일성대 교수)씨는 호텔방에서 어머니 신재순(88.부산)씨와 사촌, 처남들과 만나 다시 생이별해야 하는 슬픔을 나누며 머지 않아 재상봉할 것을 다짐했다.
또 방문단중 최고령자인 황의분(84)씨도 시누이 이세기(89.경기 분당)씨와 올케, 조카 등과 방에 둘러 앉아 "언제 다시 만나겠느냐", "부디 오래 오래 사시라"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방문단은 이날 저녁 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이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주최한 환송만찬에 참석한 뒤 공연을 관람하고 서울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박 장관은 만찬사를 통해 "이산가족 여러분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은 우리 민족의 단절과 대결을 막고 화해, 협력을 촉진하는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그리운 혈육과의 회포를 한두번의 만남으로 다 풀수는 없겠지만 마음껏 정을 나누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만찬장에는 허 웅(許雄.82) 한글학회 이사장이 참석해 북한최고의 국어학자 류 렬(82)씨와 50여년만에 반갑게 만나 서로 달라진 우리말을 통일시키는 방법 등에 관해 가볍게 의견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 등 회포를 풀었다.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이끄는 남측 방문단 100명도 오전 10시 고려호텔에서 북측 혈육들과 비공개로 개별 상봉하고 또다시 닥쳐온 이별에 가슴 아파했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현하룡(73. 경기 안산)씨는 "이게 또 마지막이라니..."라며 북측 남동생, 여동생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남측 방문단은 이날 낮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오후 4시 동평양 청년 중앙회관에서 북한의 대표적인 민족가극인 `춘향전`을 관람한 뒤 저녁에는 옥류관에서 평양시 인민위원회 주최 만찬에 참석하고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량만길 평양시 인민위원장은 만찬사에서 "이번 방문단 교환을 통해 우리 모두는 갈라져서는 살수 없는 하나의 겨레라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확인했다"고 말했고, 장충식 남측단장은 답사를 통해 "이번 방문이 1천만 이산가족 모두의 방문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7천만 겨레의 만남으로 넓혀져 민족화해와 통일을 향한 커다란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정성과 힘을 한데 모으자"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지원요원으로 방문단에 참여한 소설가 이호철(李浩哲)씨와 방북단 의료진인 고(故) 장기려 박사의 차남 장가용(65) 서울대 의대 교수도 이날 북측이 별도로 마련한 장소에서 가족을 비공개리에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방문단은 이날 상대측 지역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뒤 18일 오전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대한항공편으로 각각 자기측 지역으로 귀환한다.
연합(2000/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