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의 역사이야기> 서른 넷째 마당, 자식들과도 권력 투쟁을 벌인 이방원
일찍부터 태종의 생각을 알고 있었던 큰아들 양녕은 무척 마음이 깊었던 사람이었답니다.
`동생 충녕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나보다 더 어질고 훌륭한 임금이 될거야. 그러니 세자 자리를 양보하자.` 호탕한 성격의 양녕은 이렇게 결심하고 동생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하게 된 것입니다.
`형은 나보다 생각이 훨씬 깊어! 충녕이 세자가 될 수 있도록 나도 여기를 떠나야지!` 둘째인 효령대군도 이런 형의 뜻을 알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답니다. 마침내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셋째 아들인 충녕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세종대왕 전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세종대왕 전기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거의 모든 종류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본다면 동생의 능력이 뛰어남을 안 형들이 나라를 위해서 세자 자리를 양보하는 눈물겨운 결단을 하여 세종이라고 하는, 조선 왕조 오 백 년을 통해 가장 훌륭한 임금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능력이 있는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런 생각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일부러 미친 사람이나 타락한 사람의 행세를 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속이 깊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능성은 조선 왕조의 왕위 계승을 미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른 가능성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양녕과 효령이 충녕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인 이방원의 뜻에 따라 `양보를 가장한 탈취`를 당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방원은 권력 투쟁을 자신의 세대에만 국한시키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셋째인 충녕이 형들보다 유난히 영특했습니다. 이방원은 큰아들인 양녕에게 왕위를 물려 줄 경우 자신이 죽은 다음 왕실이 권력 투쟁의 회오리에 휘말릴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평생을 권력 투쟁으로만 살아온 그다운 통찰력이었습니다. 그는 큰아들인 양녕과 둘째 아들인 효령에게 왕위를 물려받을 생각을 포기하도록 갖은 압력을 넣었습니다.
양녕과 효령은 자기 아버지 태종의 냉혹함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인 이방원이 구상하는 권력 승계 구도와 어긋나는 생각을 가질 때 자신들에게 돌아올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끝내 양녕은 파락호로 행세하며 세자 자리를 포기하고, 효령도 중이 됨으로써 왕의 자리는 막내인 충녕에게 돌아갔습니다.
두 가능성 중 어느 것이 사실일까요? 어차피 지금 와서 정확한 사실을 확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리할 수 있는 점은 전자는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먼저 권력의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의로 양보하는 일은 좀처럼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왕권이 안정되어 있던 평온한 시기가 아니라 왕권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 막 가라앉아서 언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를 그런 시기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점보다 우리가 더 문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전자와 같은 생각이 봉건 왕조를 미화하고 왜곡된 역사 의식을 갖게 만드는 불순한 기도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순한 기도를 극복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선의로 권력이 이양된 것처럼 알려진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여러 가지 정황이 드러나면서 그것은 권력을 접수한 측들이 꾸며낸 것임이 밝혀진 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두환씨가 최규하씨에게 권력을 물려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두환씨는 최규하씨가 자기에게 대통령을 하라고 할 때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정말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지요. 전두환씨가 강압으로 권력을 탈취한 것임은 이제 재판을 통해서도 밝혀진 일 아닙니까?
그리고 양녕과 효령이 왕위를 양보하기 직전에도 태조가 정종에게, 정종이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강압으로 이루어진 것임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강압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양녕과 효령은 선의로 양보했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세종대왕은 그 아버지가 형들을 압박해서 왕위를 양보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왕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이방원은 양녕이 충녕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하도록 만든 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살아 있는 동안에 왕위를 충녕에게 넘겨주고, 다음 왕권이 안정될 수 있도록 상왕으로서 갖은 방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조선 왕조에서 최고의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은 이렇게 아버지인 이방원이 닦아 놓은 든든한 기반 위에서 통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봉건적인 역사관, 반민주적인 역사관, 반민족적인 역사관, 반민중적인 역사관의 범람 속에서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와 같은 경우는 대표적인 봉건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역사 발전을 봉건 왕조 혹은 뛰어난 개인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봉건 왕조의 지배층들을 어린 시절부터 맹목적으로 우러러보게 만듭니다. 이러한 잘못된 역사관은 현실 인식도 왜곡시킵니다. 대통령을 한 사람이면 웬만한 일에는 면죄부를 받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은 왜곡된 역사 의식이 어린 시절부터 심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상만을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지 않듯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도 겉으로 드러나고 이야기되는 것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의도적으로 왜곡된 드러난 사실만을 그대로 믿게 만듦으로써 역사의 미로 속을 헤매게 만들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왜곡 뒤에는 반드시 그것을 의도한 검은 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