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불법사찰과 수사 버틴 건 남북스포츠교류에 대한 자부심"
[인터뷰] 국보법 최종 무죄판결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진화위에 진실규명 신청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 선고가 나왔을 때 변호사한테 항소하지 말자고 했어요. 그때 이혼도 했고 밖에서 그냥 돌아다니는 것조차 스트레스가 있었으니까, 손 없는 날 조용히 들어가서 1년 6개월 징역 살다 나오겠다고 할 정도로 아주 지쳤어요. 변호사가 말려서 항소심으로 가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들어갔다 나오는게 훨씬 나았어요.그래야 사건이 더 확실하게 정리가 잘됐을 것 같애요."
그런 모습은 티끌만치도 없을 것 같던, 누구보다 대범한 한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회한을 털어놓는다. 말을 마치고 잠시 침묵하다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미안하다.
지난해 12월 4일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최종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2024년 5월 5일 1심 재판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혐의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자격정지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025년 1월 16일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난 뒤 12월 4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작년 초 항소심에서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만해도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2018년 이후 긴 공백기에 빠진 남북스포츠교류를 '아리스포츠컵 원산대회'로 다시 이어가겠다는 열망이 더 컸었다.
'감옥도 안 갔으니 다 잘된 것 아니냐',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죄라지만 1천만원 벌금은 또 뭐냐'라는 세간의 이목은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 것 같다.
1천만원 벌금은 2015년 평양대회 당시 사전 승인받은 '축구공 100%'를 북측 요청에 따라 '축구공 50%+축구화 50%'로 변경해 보낸 것을 '횡령'으로 둔갑시켜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인데, 국가보안법에만 집중한 항소심 법원도 주의하지 못했고 법리 해석에 집중하는 대법원 판결에서는 다툴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지난달 30일 남북체육교류협회 사무실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원마운트에서 [통일뉴스]와 만난 그는 "내가 17년에 걸친 국가보안법 사찰과 수사, 기소와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숱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수십번이나 여권을 신청하면서도 남북스포츠교류를 계속 해 온 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격정을 토로했다.
남북체육교류의 독보적 성과와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 재판에 이르게 된 김 이사장의 20여 년 여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운남성 쿤밍 홍타스포츠센터를 운영하던 김 이사장은 지난 2003년부터 북한 4.25체육단의 전지훈련을 지원하여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2006년 '남북체육교류계약서' 체결과 22차례의 '아리스포츠컵' 성사로 이어졌다.
북측은 김 이사장에게 평양 토지 10만 평 사용권을 부여하고 평양 '김경성 체육인 초대소'를 건설하는 등 특별 대우를 제공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국가정보원은 김 이사장에 대한 북의 신뢰를 '교류'가 아닌 '공작'의 도구로 사용할 목적으로 북측 인사의 '탈북 유도'를 노골적으로 요구했으나 김 이사장이 이를 거절하자 '보복적 기획 수사'에 착수했다.
2007년 정보기관의 북한정보 수집요구를 거절하면서부터 시작된 그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수사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탈북자 ㅇ씨를 이용한 사무실 침입과 자료 조작 △2013년부터 30여 개에 달하는 통신망 감청 △2015년 10년치 은행 계좌 내역 압수수색 등 전방위적인 감시와 압박으로 이어졌다.
또 2016년에는 30여 명의 수사관들이 그의 자택과 사무실을 14시간 동안 압수수색하고, 총 8번에 걸쳐 20시간씩 강도높은 조사를 진행했으며, 군 복무중인 아들을 기무사로 데려가 조사하기도 했다.
△2010년 메모지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 조화에 대해 '찬양·고무죄'를 적용하고 △2015년 남북축구대회 시상품 변경을 '횡령죄'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통일부 승인하에 진행된 축구화 전달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평양 대회 자금 미신고는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몰아갔다.
무죄 확정판결 석달이 지난 3월 11일 김 이사장은 국제엠네스티 동아시아 지부 조사관과 인터뷰를 통해 국가정보원이 17년(2008~2025)간 △불법사찰 △증거조작 △여직원포섭 △안가수사 등을 자행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엠네스티는 "김경성 이사장의 사례는 민간의 순수한 평화노력을 공작의 도구로 삼으려다 실패하자,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개인의 삶을 파괴한 국가폭력"이며, "국가보안법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활동가를 어떻게 '사회적 타살'로 몰아넣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자의적 해석을 통한 인권 유린 방지를 위해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폐지 및 개정 △보고서 조작 및 불법 사찰 관계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 회복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아리스포츠컵'과 같은 평화의 마중물 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보호망 마련 등을 제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뉴스]와 만난 김 이사장은 지난 17년간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조직적으로 공모하여 남북체육교류협회를 파괴하기 위한 프락치 공작과 증거조작 등 국가범죄 사건을 저지른 것이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설 뜻을 밝혔다.
지난 2월 출범한 제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진화위에 제출할 진실규명 신청서에는 진상규명이 필요한 주요 위법 사실로 △반인륜적 '프락치' 포섭 및 내부 파괴 (헌법 제10조, 제19조 위반) △7년간의 저인망식 불법 사찰 (헌법 제17조, 제18조 위반) '안가'를 통한 위법 수사 및 기본권 침해 △검찰의 증거 조작 묵인 및 기소 독점권 남용 등을 적시했다.
남북체육교류협회 여직원을 회유해 김 이사장을 감시하는 프락치 역할을 강요했으며, 탈북자 ㅇ씨 등을 포섭해 쿤밍, 심양 등에서 자신을 24시간 밀착 감시해 허위 정보를 생산하도록 조종했다는 것.
또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휴대폰, 이메일 등 30여 개 수단에 대해 실시간 감청을 실시했으며, 구체적 범죄 혐의도 없이 1미터 높이 분량의 방대한 사찰한 기록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에 의한 사생활 침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을 공식 취조실이 아닌 비공개 안가(安家)로 연행하여 회당 20시간 이상의 고강도 조사를 8차례 이상 반복하는 심리적·육체적 가혹행위를 자행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수년간 '단발성 여권' 발급을 강제해 정상적인 경제 활동과 해외 교류를 원천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공항 입출국시 별도 가방 열람과 소지품 검사를 시행해 상시적으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가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김 이사장은 △국정원의 기획 첩보가 검찰의 기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공모 및 유착 관계 전면 조사 △민간인 사찰 및 프락치 포섭을 위해 투입된 수십억 원 규모의 특수활동비 승인 및 집행 과정 공개 △국정원과 검찰이 보유한 7년간의 도·감청 기록, 미행 보고서, 내부 공작 기획안에 대한 긴급 증거 보전 요청 △증거 조작과 가혹 행위에 가담한 당시 수사 라인(국정원 요원 및 담당 검사)에 대한 형사 고발과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를 권고해 줄 것을 요청할 예정이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제주 4.3 의생자 유족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소멸시효를 완전히 배제해서 살아있는 한 형사 책임을 끝까지 지고 상속 재산이 있는 한 그 자손들까지 그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지도록 형사 처벌 시효, 그리고 민사 대상 소멸시효도 폐지하도록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천명했다.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