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적은 돌아가시고 더 재평가받고 있다”

세계적 문명교류학자 정수일 1주기 추모모임 열려

2026-02-26     김치관 기자
위공 정수일 선생 1주기 추모모임이 25일 낮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자연애숲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렇게 바라던 북녘의 애들도 한 번 보고 갔으면은 이렇게 마음이 덜 아플 텐데, 아마 동생분이 이산가족 신청해 가지고 잘 되면은 아버지 그걸 다 전해주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세계적인 문명교류학자이자 민족주의자인 위공(爲公) 정수일(鄭守一, 1932~2025) 선생 1주기를 맞은 24일 낮,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자연애숲수목장 묘역 추모모임에서 부인 윤순희 여사는 여전히 눈물바람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의 부인 윤순희 여사가(왼쪽) 유족을 대표해 참석자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고 정수일 선생은 1934년 중국 연변에서 조선족으로 태어나 베이징대학 동방학부를 졸업한 뒤 중국 외교부 소속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1963년 4월 북한으로 환국했고, 1984년 남한으로 들어와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됐지만 1996년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을 복역하고 특별사면돼 실크로드학과 문명교류학을 개척,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민족론과 통일담론 창출에 매진하다 지난해 2월 24일 별세했다. 북녘에 세 딸이 있다.

제사상을 정성스레 준비한 윤 여사는 “가족 같이 이렇게 사랑해 주는 분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1년을 외롭지 않게 잘 보낸 것 같다”며 “다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한번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다 많이 불편을 끼쳐드리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너무 고마워서 많이 눈물이 난다”고 사례했다.

영정 앞에 『통일뉴스 백서(2000-2025)』와 『문명교류학』이 나란히 놓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영정 앞에 『통일뉴스 백서(2000-2025)』(통일뉴스, 2025.12.)와 『문명교류학』(창비, 2025.10.)을 올린 윤 여사는 『통일뉴스 백서(2000-2025)』에 이계환 통일뉴스 전 대표가 정수일 선생의 공적을 실은 글을 쓴 사실과 고인의 유작 『문명교류학』이 2쇄를 찍었다는 사실을 고하고 “모든 거 다 걱정하지 말고, 위에서 여기 오신 분들 다 많이 사랑해주고 축원해 주시라”고 당부했다.

고인의 동생 정승현 씨도 고인이 생전에 즐기던 술을 올리고 눈물을 글썽였다.

윤순희 여사의 친구인 김젬마 시인이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오른쪽부터 김정남 초대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 장석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윤 여사의 친구인 김젬마 시인은 “오늘 떠나신 자리를 채울 길 없어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편지를 올린다”며 “세계 4대 문명을 공부하며 현장에 가서 선생님 설명을 들을 때는 살아있는 수업시간이었다”고 회고하고 “인류문명 실크로드를 규명해 내신 업적, 통일을 향한 결연한 자세, 그 중에 선생님께서 가장 가슴에 박히게 한 것은 ‘겨레’였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아직도 여전히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다”며 “하늘에서 마음껏 북한 들녘과 겨레들을 바라보시는 선생님이 그립고 보고 싶다”고 추모했다.

엄광용 소설가 등 후학들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추모모임 사회를 맡은 정진한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연구위원은 “여기 못 오셨지만 대신 인사를 부탁했던 분들이 정말 많았다”고 소개하고 고인 사후에 창비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와 경주에서 열린 기념전시회 등을 보고한 뒤 “선생님의 업적은 돌아가시고 더 재평가를 받고 있고 널리 회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1주기 추모모임에는 김정남 초대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과 장석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이계환 통일뉴스 민족과통일연구소 이사장, 엄광용 소설가 등 후학들이 참석했고 고인의 애창곡 <홀로 아리랑>을 합창하기도 했다. 

고인의 동생 정승현 씨가 술을 올리고 참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