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과 '실용적 공존'의 길

[기고] 김일출 / ITF-Korea 명예회장,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괄사무차장

2026-01-02     김일출

김일출 / ITF-Korea 명예회장,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괄사무차장

 

북핵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현실'

지난 2017년 무주에서 만난 장 웅 북측 IOC 위원을 비롯해 내가 만난 북한의 고위 관료들은 단 한 번도 핵이 협상의 대상이라 말한 적이 없다. 우리 정부와 언론이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전제로 온갖 장밋빛 해석을 내놓을 때조차, 북한은 일관되게 핵 보유를 국가의 운명과 결부시켰다.

우리가 직면한 냉혹한 진실은 명확하다. 북한에 핵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닌 목적이며, 그들은 체제 유지를 위해 통일보다 '강성대국'이라는 독립된 국가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제 대북 정책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역대 정부 대북 정책의 명암 : 보수의 원칙과 진보의 열망

지난 20년의 대북 정책은 이념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상호주의와 신뢰를 강조했으나, 북한의 도발에 따른 5.24 조치와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지며 남북 관계의 최후 보루를 상실했다. 원칙은 지켰으나 한반도 상황을 관리할 유연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세 차례의 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를 통해 전쟁의 공포를 걷어내고 미북 대화를 견인하는 성과를 냈으나, 하노이 결렬 이후 대안 부재와 저자세 논란 속에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라는 상처를 남겼다. '지속 가능한 평화'의 제도화에는 결국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워 억제력을 강화했으나,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을 유발하며 남북 관계를 완전한 단절 상태로 몰아넣었다. 접경지역의 긴장과 오물 풍선 사태 등 국민이 체감하는 안보 비용은 오히려 가중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평화외교'로의 전환

2025년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이념적 통일론이 아닌 국익 중심의 '실용적 공존'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통일부의 조직 개편은 정책 전환의 핵심이다. 과거 압박 위주의 조직에서 벗어나 '남북회담본부'와 '평화교류실'을 중심으로 대화 채널을 상설화했다.

인권 문제를 대북 압박의 수단이 아닌, 사회문화협력의 틀 안에서 다루는 인도적 과제로 재정의한 것은 매우 실용적인 선택이다. 또한, 80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천명된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금지의 3대 원칙은 북한의 도발 명분을 제거하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결론 : 평화공존의 시대를 여는 주권적 결단

이제 우리는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의 환상에 매몰되기보다, 당장의 전쟁을 막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법을 실천적으로 배워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기본협정'과 평화경제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결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 북한의 '핵 무장'과 '별개 국가'라는 냉혹한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 북한은 이미 핵 보유를 국가의 운명과 결부시켰으며, 체제 유지를 위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다. 대북 정책은 이제 막연한 비핵화 기대가 아니라,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충돌 없이 공존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미국 중심의 외교 틀에서 벗어나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미국에 지나치게 종속적인 태도를 보일 때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은 강화된다. 미국에 매인 수동적 관계에서 탈피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독자적인 협상력을 발휘할 때 비로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

셋째, '비싼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실용적 철학을 안보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없는 억제력은 국민에게 막대한 안보 비용을 청구할 뿐이다. 9.19 군사합의 복원과 같은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야말로 우리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안보 정책이다.

결론적으로, 2026년 한반도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북한을 우리와 엄연히 다른 '또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주권 국가로서 당당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사실상의 두 국가 평화공존'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분단의 고착화를 넘어 미래의 공동 번영을 기약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