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중국 방문의 의미와 한계
[기고] 균형 외교의 시도와 대미 종속의 현실 / 정성희
정성희 / 자주연합 집행위원장
2026년 1월 예정이라 보도된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은 한중 관계 관리 차원을 넘어 한국 외교의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 방문과 회담은 윤석열 정권 시기 악화된 한중 관계를 일정 하게 복원하고, 미·중 간의 전략경쟁과 전술 완충이 겹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를 확대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한국 외교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미 종속 구조와 안보·경제 구조의 제약에 가로막히는 사례가 될 가능성도 크다.
‘말은 가볍고 길은 무겁다’는 격언이 있다. 선언과 방문은 시작일 수 있으나, 그 이후 행동과 협력의 선택이 방향을 규정한다. 이번 방중 역시 상징은 크지만, 실질은 구조의 제약 속에 놓여 있다. 이재명 정부가 중국 방문을 통해 설정한 목적은 명확하다. 문제는 이 의도가 현재의 대미 정책 기조와 한미동맹 우위 구조 속에서 어디까지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국민주권만이 아니라 국가 주권에 목말라하는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이다.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 경제·무역 협력 확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정권 시기 누적된 한중 갈등을 수습하고,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를 통해 신뢰 기반을 보강하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외교·안보 정책의 절대 축으로 설정했고, 대중 정책은 그 종속 변수로 운용했다. 사드 배치 문제의 재부상, 대만해협 문제에 대한 공개적 발언, 한미일 군사 공조의 제도화는 중국의 강한 경계와 불신을 불러왔다.
2024년 기준 주한미군 병력은 약 2만 8,500명 수준이며, 한미 연합훈련 횟수는 2021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동맹의 단순 유지가 아니라 성격의 질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런 조건에서 중국은 한국의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를 정책 전환이라기보다 갈등 관리용 외교 수사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신뢰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의 결과이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무역 협력 확대, 산업·공급망 안정, 투자·서비스 분야 FTA 협상 진전을 바란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 최대의 교역 상대국이다. 2010년대 초반부터 중국은 한국 전체 수출에서 약 24~26% 수준을 지속하며 최대 시장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2019년 약 26.8%를 기록했다가 2024년 약 19.5~19.7% 수준으로 하락했다. 반면 대미 수출 비중은 약 18.3~19.3%로 상승하며 양국 비중 격차는 사라졌다. 더 나아가 이제는 트럼프의 관세 협박으로 천문학적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CHIPS법과 IRA는 한국의 대중 경제 협력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2024년 한국의 반도체 대중 수출이 전년 대비 약 23% 감소한 것은 이러한 제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조건에서 중국과 공급망 안정이나 서비스·투자 FTA 진전을 논의하더라도, 실질적 성과는 미국의 허용 범위 내 실용 협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중 경제 협력이 회복되더라도 구조적 불안정성을 안고 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대화와 평화의 중국 협조와 한국 핵잠 도입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북미·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중국의 협조 요청 역시 주요 의제이다. 북한경제는 내수 비중이 압도적이지만, 중국은 북한 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최대 경제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거부권을 행사하는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이다. 이 점에서 중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러시아와 함께 사실상 북 핵 보유를 인정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을 중단한 상태이다. 북러 관계의 전면적 발전에 이어 북중 관계의 호전으로 북중러의 전략적 협력은 어느 때보다 돈독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5.24조치 등 대북 독자 제재를 유지하고 있고, 한미일 군사 공조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방 백서에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기조도 유지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이 중국에 ‘건설적 역할’을 요청할 경우, 중국은 이를 한반도 평화 중재가 아니라 미국 전략을 보조하는 요구로 해석하는 게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한국이 독자적 선제적 대북 정책으로 대북 신뢰 회복과 한반도 평화 체제를 추진하기보다 주변국들의 지원에 매달려 중재자, 균형자, 촉진자로서의 위상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안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논의이다. 한국이 미국의 협조를 얻어 핵잠 도입을 추진하자, 중국은 이를 동북아 전략 균형을 흔드는 행위로 간주하며 공개적으로 우려와 경계 입장을 밝혔다.
중국의 시각에서 한국의 핵잠 도입은 단순한 방어 능력 강화가 아니다. 미 해군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결합된 대중 포위망의 일부로 인식한다. 핵잠은 장기간 은밀작전이 가능해 중국의 전략 핵잠수함 기지와 해상 접근로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한국의 핵잠 논의가 독자적 안보 전략의 결과라기보다 미국 확장억제에 종속된 선택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이는 균형 외교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균형 외교와 전략적 자율성의 현실
이재명 대통령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균형자 역할을 모색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균형 외교는 선택지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현재 한국은 작전통제권을 환수하지 못한 상태이며, 미군 주도의 연합 지휘 체계와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가짜 유엔사령관의 지위를 겸하며 DMZ의 비군사적 출입까지 통제하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2024년 기준 한국 국방 전략에서 미국과의 연합 작전 의존도가 70%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강요로 ‘26년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약 7.5% 증가, 65조 8,642억원(약 44.7–45억 달러)으로 통과되고, 250억 달러의 미제 첨단 무기 구매, 330억 달러의 주한미군 포괄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적 판단과 선택 공간이 극히 제한적임을 뜻한다. 이런 조건에서 균형 외교는 능동적 중재가 아니라 동맹 내부 관리 전략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관광·문화·사회 교류 활성화는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안보 변수에 종속되어 있다.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인 관광객 수는 약 806만 명에서 약 479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는 문화·관광 교류가 정치·안보 갈등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향후에도 한미일 군사 공조 강화나 대만해협 긴장이 고조될 경우, 이 영역은 언제든지 다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기후, 보건, 공급망, 디지털 등 지역·글로벌 의제 협력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주도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비관세·규범 중심 협력체로, 한국은 이미 공급망 협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다자 협력의 통로이자 동시에 중국과의 독자적 규범 협력을 제약하는 구조이다.
중국 국빈 방문; 이재명은 박근혜와 달라야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항일승전 70주년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이는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전례 없는 선택이었다. 박근혜는 우리 민족의 고유 의상인 한복을 입고 천안문 성루에 등장했고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중국의 극진한 의전을 받았다. 중국은 이 장면을 통해 한국을 미국 동맹권 내부의 균열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공식 비난을 삼갔지만, 외교 채널과 언론을 통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강력히 전달했다. 미국 언론과 전략 전문가들은 한국 외교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시도한 사례로 분석했다. 당시 미국은 ‘아시아로의 재균형(Pivot to Asia)’ 전략을 본격 추진하던 시기였고, 한국은 그 전략의 핵심 동맹국으로 규정돼 있었기에 미국의 간섭은 더욱 심했다.
그 결과 박근혜의 방중은 중국과의 전략적 신뢰를 제도화하지도 못했고, 미국의 의심을 불식시키지도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드 배치 결정이 내려졌고, 한중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박근혜의 방중은 상징은 컸으나 구조를 바꾸지 못한 외교의 전형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중과 비교해 상황과 조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는가. 오히려 조건은 더 불리해졌다. 미국은 중국을 “유일한 체제적 경쟁자”로 규정하며, 군사·경제·기술·규범 전 영역에서 장기적 억제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동맹 역할 속에서 한국은 더 이상 중간적 위치에 있는 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대중 견제 전략의 핵심 참여국으로 명시적·암묵적으로 규정돼 있다. 한미일 군사 공조의 제도화, 확장억제 강화, 공급망 동맹 편입, 반도체·첨단기술 통제 참여는 모두 이 구조의 산물이다. 이재명 대통령 방중의 실질적 효과를 강하게 제약한다. 한중 간 신뢰 회복의 깊이, 경제 협력의 범위, 한반도 평화 중재의 실효성까지 모두 제약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박근혜와 달라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화려한 장면이나 외교적 연출이 아니라, 군사·안보·경제 구조에서 선택의 여지를 넓히는 실질적 결단이 없는 방중은 또 하나의 관리 외교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국빈 방문은 목적이 아니라 시험대이다. 그 시험은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적 선택으로만 통과할 수 있다.
자주 없이 균형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한미 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려는 방향 설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외교 환경의 제약 속에서도 관계 복원을 모색하려는 고심과 노력의 흔적 역시 확인된다. 그러나 그 성과와 가능성 못지않게 한계 또한 분명하다. 한미동맹 우위 구조와 안보 종속이 지속되는 한, 한국이 강조하는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는 중국의 입장에서 정책 전환이 아닌 관계 관리용 수사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 협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급망 안정, 투자 확대, 서비스·기술 협력은 논의될 수 있으나,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이 설정한 허용 범위 안에서 조건부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평화 중재 역할 또한 주변화될 위험이 크다. 한국이 한미일 군사 공조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한반도 평화에 대한 ‘건설적 역할’을 요청하는 것은 중국에게 모순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이는 협력 요청이 아니라 미국 전략의 부담 분산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군사·안보·경제 구조에서 선택의 여지를 확대하지 않는 한, 중국 방문은 관계 관리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는 외교 기술이나 정상회담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구조의 문제이다. 바로 이 지점이 이재명 정부 외교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과제이다. 균형 외교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주적 선택지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주권자 국민은 ‘자주의 광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외교와 안보를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릴 때만 구조 변화의 동력이 형성된다. 이재명 정부 역시 자주·균형 외교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미룰 이유가 없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문제이다.
특히 주변국의 지원과 협력을 구하기에 앞서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우선해야 한다. 한미·한미일 연합훈련 중단, 5·24 조치 해제, 국가보안법 개폐, 흡수통일 조항에 대한 개헌 논의 등 대북 신뢰 조치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실제로 실행한 이후에야 주변국 협력을 호소하는 것이 순서이다. 내부의 뿌리가 약한 상태에서 외교의 가지를 키울 수는 없다. 자주 없는 균형은 관리로 끝나고, 관리는 언제든 외풍에 무너진다. 이재명 정부 외교가 이 오래된 함정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