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반미담론 부재와 친북 낙인, 기레기 언론

[연재] 주한미군 비밀작전 분석(5) - 고승우

2025-12-16     고승우

1. 서론

한국 사회에서 21세기 점령군의 형태인 주한미군이 주축인 ‘한미동맹’을 절대선으로 인식하는 이념이 지배한다. 법과 정치, 언론이라는 지배체제가 확대재생산하는 외세 종속형 한미동맹은 국가 안보 담론의 근본 축으로 작동해 왔다. 그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는 국가보안법의 공포를 앞세운 통제와 한국 내 지배세력인 정치, 언론, 한미동맹에 몰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미동맹의 실체를 구성하는 주한미군의 권한·기지·활동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 시민 등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 현상은 주한미군에 대한 정보 부족 속에서 제도적·담론적 통제를 통해 생산된 ‘제도화된 무지(structured ignorance)’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주한미군의 법적 비대칭, 언론 구조, 국가 담론을 통해 형성된 집단적 인식의 구조에 대한 분석다.

한국 사회에서 ‘반미’ 담론은 공론장 안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불평등한 외교 행위, 주한미군의 역할,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은 언론과 정치에서 심층적 분석이나 비판적으로 다루어지기보다, “동맹 강화를 통한 안보 보장”이라는 방식으로 포장된다.

특히 반미적 발언이나 분석이 곧 ‘친북’·‘반국가적’으로 낙인찍히는 현상은 한국 특유의 냉전 체제, 국가보안법, 언론 구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을 헤게모니 이론(Gramsci),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론(Althusser), 의제설정이론(McCombs & Shaw) 및 침묵의 나선이론(Noelle-Neumann) 등을 통해 분석할 수 있다.‘반미’ 담론이 존재치 않는 ‘친미 일색’의 공론 구조가 단순한 사회적 성향이 아니라 국가-언론-국보법 등이 작용해 생긴 복합적 통제체제의 산물인 것이다.

2. 동맹 담론과 정치적 금기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1966년 한미행정협정(SOFA)은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다. 그러나 SOFA의 핵심 조항들은 미국의 국가기밀보호법(US National Security Act)과 정보공유 제한 규정을 그대로 준용하여, 미군의 작전계획·통신망·정찰활동에 대한 접근을 한국 정부로부터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예컨대 SOFA 제28조(정보보호)는 “양국이 교환하는 모든 군사정보는 원발국의 동의 없이는 공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는 사실상 미국법의 우위를 제도적으로 승인한 조항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영토 내에서 한국 정부가 접근할 수 없는 ‘비가시적 주권공간’이 형성된 셈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국제법적으로는 준(準)치외법권적 지배권(quasi-sovereign control)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한국의 실질적 정보 주권을 약화시킨다. 특히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의 레이더 운영, 평택 미군기지 내 핵·정찰시설 운용 등은 모두 ‘한미공조’라는 이름 아래 미국의 단독 통제하에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반미 담론이 거의 제기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미국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국내 정치와 언론이 ‘동맹 헤게모니(alliance hegemony)’를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1960~80년대 냉전 체제에서 반미는 곧 ‘친북’ 또는 ‘종북’으로 규정되었으며, 국가보안법 7조는 반미적 표현을 ‘반국가행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법적 억압은 단순한 검열이 아니라 도덕적 낙인화(stigmatization)의 효과를 낳았다.

이후 민주화 이후에도 ‘한미동맹=국가 생존’이라는 인식은 정당정치와 언론을 초월한 초정당적 신념으로 굳어졌다. 반미 담론은 여전히 ‘금기적 정치언어(political taboo)’로 남아 있으며, 지식인 담론에서도 비판적 접근은 “국익 훼손”으로 공격받는다. 이는 그람시(A. Gramsci)가 말한 바와 같이, ‘강제에 의한 지배(domination)’이면서 ‘동의에 의한 지배(consent)’의 한 형태로 보인다.

(1) 냉전적 국가 정체성과 ‘반미=친북’의 낙인 구조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는 국가 재건의 기초가 되었으며, ‘반공’은 국가 정체성의 핵심 이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유의 수호자이자 반공의 상징으로 절대화되었고, 따라서 미국 비판은 곧 ‘반공 이념의 부정’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논리적 확산이 바로 “반미=친북=반국가”라는 낙인 구조의 기원이다.

군사정권 시기에는 이러한 논리가 국가보안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강화되었다. 반미·자주를 외친 학생운동이나 지식인들은 ‘용공 조작’으로 탄압받았으며,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1971) 같은 서적이 금서가 된 사례가 이를 상징한다.

결국 법적 처벌의 공포가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고, 반미적 문제의식은 ‘위험한 언어’로 사회 전체에서 봉쇄되었다.

(2)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기레기 언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 개념에 따르면, 국가는 교육, 언론, 문화 등을 통해 지배이념을 재생산한다. 특히 국정교과서는 국보법 저촉 여부 검증을 거치게 되어 공교육 전반에서 반미, 합리적 미국 비판조차 금기시 되었다.

한국 언론은 안보 관련 정보의 대부분을 국방부, 한미연합사, 주한미군 공보실로부터 공급받는다. 이 구조에서 기자들은 독립적인 정보 접근권을 가지지 못하며, 군사 관련 취재는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제한된다.

미군기지 접근, 한미연합훈련 핵심 내용, 미군 장비 반입 등에 대한 취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언론은 ‘한미 공조’라는 정부의 언어를 반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비판적 프레임은 ‘반미’로 오인될 위험 때문에 회피된다. 그 결과, 시민사회는 미군의 실체를 ‘추상적 동맹상징’으로만 인식하게 되며, ‘일상화된 무지(normalized ignorance)’ 상태가 유지된다.

한국의 언론은 미국을 ‘우방’, 북한을 ‘적’으로 고정한 냉전적 이분법의 프레임을 기사와 보도를 통해 유지해 왔다. 오늘날에도 북한의 모든 행동은 도발로 규정되고 한미군사행동은 정당한 것으로 보도된다.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은 거의 보도되지 않고 남북한이 공동번영, 숙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방식도 언급되지 않는다.

평화통일의 노력이나 그 결과에 대한 언론의 침묵은 청소년들에게 ‘통일을 왜 하느냐?’하는 생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북한에 대한 보도가 북한=불의부정한 집단이라는 프레임이 반복된 결과이기도하다.

언론은 미군 기지 범죄, 환경오염, 방위비 분담 불균형, 사드(THAAD) 배치 논란 등도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미국 갑, 한국 을이라는 현실 분석은 외면한다.

TV에 단골 출연하는 관련 전문가는 주로 미국의 입장에서 해설, 논평을 하면서 논란의 범위를 좁혀 반미, 비미(非美)로 번지지 않게 하는 프레임을 재생산한다. 이들은 주로 현상에 대한 개관적 분석보다 북한을 부정적 존재로 가상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놓는 식으로 시청자들의 의식을 재단, 통제한다.

그리고 과거 경북 성주의 사드에 대한 반대 시위같은 경우도 TV 등 언론은 주로 현장 중심의 단발성 현장 보도라는 프레임을 반복한다. 기사는 반대시위 현장 위주의 보도로 주민과 경찰의 충돌 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 등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것은 기사 속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불평등한 한미동맹 속에서 반복되는 미국의 군사적 권리(right)의 집행은 노출되지 않은 채 남남갈등의 모습만이 부각된다. 좌우 세력 간 이견이나 일부 시민의 이기적 행동이 주로 보도된다. 사드 배치의 경우처럼 한국 내부의 찬반론이 객관적 보도의 탈을 쓰고 등장할 뿐이다.

미국이 국익을 위해 점령군과 흡사한 자국 군대를 이용해 한국에서 국제법과 상충될 여지가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지난 70년 동안 주류 대중매체의 보도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미국은 비판의 초점에서 벗어나고 결국 미국 책임이 크다는 사실관계는 보도되지 않는다. 기레기 언론의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때 반미 담론은 ‘국익을 해치는 감정적 주장’으로 묘사, 규정되고, 친미 담론은 ‘현실적·합리적 선택’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논리의 불균형은 결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헤게모니적 상식으로서의 친미 이념을 강화시킨다.

한국 언론이나 학계, 정계 등의 반미담론 부재로 인한 이익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이 되는데 이는 우연한 현과로 볼 수 없다. 주한미대사관과 미군 당국, 주한미군의 심리전 흡사한 한국 친미세력에 대한 전방위적 관리의 결과인 것이다. 미국은 한국 사회의 여론 주도층을 친미화하기 위해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 연수, 정치문화 행사등에 대한 초청 등의 수단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여야, 이른바 보수, 진보를 막론 정치권에서는 반미로 찍히면 미래가 없다는 공식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집권당인 민주당은 2024년 총선 과정에서 반미시위 전략을 이유로 짝퉁정당의 후보 추천을 거부한 바 있다.

미국의 자국 이익 추구는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은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문제는 국내의 한미동맹에 몰빵하는 국내 친미 세력이다. 이들은 미국의 군사식민지 비슷한 심각한 현실 속에서 내로남불의 과실을 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 치하의 친일 군상의 모습과 큰 차이는 없다 할 것이다.

(3) 사회 엘리트와 집단사고의 폐쇄성

정부, 외교관료, 주류 언론, 학계 등 사회적 엘리트 사이에는 “한미관계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라는 묵시적 합의 속에 동일한 언어를 구사하는 지적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빙 재니스(I. Janis)가 지적한 집단사고(Groupthink)의 전형적 사례로 이 카르텔을 벗어나는 경우 소수자로 낙인찍어 공직 사회, 학계나 언론에서 주류에서 추방되어 불이익을 당하도록 만든다.

사회적 주류 지배집단이 공유하는 미국 비판 자제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경우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낙인찍히게 되고, 친미 일색의 동질성이 강조, 강화된다. 비판적 시각은 집단과 시스템 속에서 일상화된 자기 검열 속에 힘을 잃게 된다.

이들 친미세력에 의해 일반 사회에 반미, 비미는 차단된 정보와 상징만이 생산 유포된다. 친미 엘리트 네트워크의 폐쇄성은 결국 공론장의 다양성 자체를 구조적으로 봉쇄한다.

(4) 사회적 침묵과 자기검열의 내면화

일반 시민의 수준에서도 반미 발언, 태도는 사회적 위험, 불이익을 수반하는 것이란 인식이 광범위하게 지배한다. ‘반미=친북’이라는 낙인은 직장, 학교, 미디어에서 개인의 발언을 제약하게 된다.

사회과학자 노엘-노이만의 침묵의 나선이론처럼, 소수의 비판적 목소리는 대중적 침묵으로 무기력해지게 된다. 그 결과, 친미 담론은 다수의 동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포와 자기검열의 결과로 형성된 왜곡된 합의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빨갱이, 종북, 좌파, 좌빨 등의 용어는 국보법에 의해 세뇌된 상황에서 상대를 모욕하고 반사회적 인물로 낙인찍을 때 흔히 사용된다. 예를 들면 내란 특별검사팀이 2025년 12월 15일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목적이 반대 세력 제거와 권력 독점이었고 “한동훈은 빨갱이다”, “한동훈을 잡아오라.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발표한 경우다.

윤석열이 입에 올린 '빨갱이'는 한 전 대표를 반국가적인 위험인물로 규정하고 제거 대상으로 삼기 위해 사용된 의미로 읽힌다. 정치적 반대자를 체제에 위협이 되는 세력으로 몰아세우기 위한 강력하고 부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어가 부정적 상징성은 국보법이 수십 년 간 전 사회구성원을 공포스럽게 하고 겁박하면서 전 국민의 자기검열이 일상화되어 있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다.

한국사회에서 ‘빨갱이’, ‘종북’ 등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강력하고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며, 주로 정치적 비방과 낙인을 위해 사용되어 왔다. ‘빨갱이’는 한국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반국가 세력의 낙인으로, 그리고 이승만 정부 등 독재 정권 시절에는 자신에게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민주화 세력, 진보적 인사, 심지어 정치적 경쟁자까지 지칭해 탄압하고 제거하는 데 사용되었다.

종북은 북한의 체제를 흠모하고 따른다는 뜻으로, 주로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사용이 본격화되었다. 국보법의 야만성에 대한 비판 속에서 주로 보수 진영에서 진보적 정치 세력이나 시민단체를 공격하고 비방하며 정치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공격적인 프레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종북’이라는 딱지는 정치적 사형선고와 다름없을 정도로 강한 부정적 낙인이라는 치명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싫거나 불편한 대상을 향해 무분별하게 ‘종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여론 조장 및 선동으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 용어 모두 이념 대립과 반공주의가 강했던 한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며, 합법적인 비판이나 의견 개진마저 봉쇄하는 데 사용된다는 공통적인 사회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대파를 극단적으로 매도, 공격해 사회적 고립이나 배제가 타당하다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정치, 언론 현장에서 특정인을 이들 용어로 지칭하는 것에 대해 명예훼손이라 보기 힘들다는 판례를 남긴 바 있는데 이는 언어의 사회성을 간과한 것이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언어의 사회적 의미는 가변적인 것으로 전체 사회와 사용자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형되기 때문에, 사전에 기재된 의미는 하나의 기준일 뿐, 실제 사용되는 사회적 의미는 훨씬 복잡하고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언어의 사회적 의미(Social Meaning)는 가변적인 것이어서, 사전에 기재된 의미(Denotation)와 실제 사용되는 맥락에서의 의미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같은 단어라도 누가(화자), 누구에게(청자), 어떤 상황에서(장소, 분위기) 말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또한 사전적 의미 외에 그 단어에 덧붙여진 감정, 태도, 연상 등이 포함되는 함축적 의미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바뀐다.

특정 단어를 정치적/이념적 목적으로 포장하거나 비하하고 공격하기 위해 사용할 경우 원래 의미와 전혀 다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빨갱이’, ‘종북’과 같은 단어가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될 때, 이 단어들은 사전적 정의(공산주의자 추종)를 넘어 비판하거나 제거해야 할 ‘반국가적 적(敵)’이라는 극단적인 사회적 낙인으로 기능한다.

한국사회에 반미나 비미 담론이 자리 잡지 못하는 원인으로 △세계가 지탄하는 인권 탄압 악법인 국보법이 21세기에도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대법원이 앞장선 사법부의 국보법 존재를 배경으로 한 언어폭력, 가해에 대해 부적절한 논리를 앞세워 비호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이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이성적, 비윤리적 논리를 앞세워 국보법의 존속, 합헌을 판결하는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5) ‘헤게모니적 동의’의 완성: 비판 없는 상식

그람시적 의미에서 보면, 한국의 친미 일색 구조는 강제에 의한 복종으로 생성되고 민주화 나 진보정권 등장 이후에도 그에 대한 성찰이나 시정이 거의 시도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4.19 이래 시민사회의 혁명적 사회운동에 따라 민주주의 공간이 크게 확장되었지만 외세 종속, 예속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미약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권 장악, 계속 유지의 욕망은 진보와 보수가 간판만 차이가 있지 그 내용에서 차이가 없는 정상배 집단이 여의도 등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삼류 정치 속에서 반미, 비미는 선거에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정치 공학이 개입하게 되면서 ‘한미동맹은 생존과 번영의 필수 조건’이라는 공식을 합창하는 형국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련 현상은 교육·언론·문화 전반에서 반복 재생산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정치권 진입을 시도할 경우 반미, 비미 이력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내로남불이 판치는 여의도 정치판에서 반미 담론은 ‘반 사회적, 비이성적 언어’로 낙인이 찍힌 상태다. 한국의 공론장은 ‘친미냐 반미냐’라는 이분법만을 허용하고, ‘비판적 자주’나 ‘대등한 동맹’이라는 중간지대를 구조적으로 배제한다.

한미동맹 담론 통제·언론 종속이 결합하면서, 한국 사회는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 대해 인지적 식민화(cognitive colonization)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안보’는 미국 중심의 담론 체계 속에서만 이해되고, 동맹 비판은 곧 국가 정체성 부정으로 간주된다. 시민들은 주한미군의 실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모르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심리적 순응 구조를 내면화한다. 이것이 바로 ‘제도화된 무지’의 핵심이다. 즉, 무지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의 산물이며, 체계적으로 생산·유지되는 지식의 공백이다.

3. 결론 - 적극적 자유가 쟁취되어야

주한미군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인식 구조는, 법·제도·담론이 함께 작동한 결과이다. 한미동맹은 명목상 상호방위조약이지만, 실제로는 정보주권·담론주권 측면에서 비대칭적 종속관계를 형성한다. 이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은 물리적 군사력만이 아니라, ‘동맹=안보=정체성’이라는 헤게모니적 상징체계다.

한국의 반미 담론 부재는 냉전의 유산이 제도·언론·법·심리에 걸쳐 구조화된 결과이다.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고, 언론이 ‘안보’ 프레임을 통해 반미 담론을 비정상화하며, 엘리트 네트워크가 자기검열을 제도화한 결과, 대중은 침묵 속에서 ‘친미적 상식’에 동의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 체제는 국격, 자주 등 국민의 헌법적 자유가 정치 언론, 학계 등 사회적 기득권층에 원천 봉쇄되고 있다. 미 국익을 위해 한국의 국익이 짓밟히고 국제적으로 비웃음꺼리가 되는데도 한국 지배층은 내로남불 식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반미 담론은 정치적 위험, 언론의 배제, 사회적 낙인이라는 삼중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따라서 진정한 비판적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동맹=안보=생존’이라는 고정된 상식을 재검토하고, 언론과 학계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다각적 성찰을 가능케 해야 한다. 즉, 반미의 문제가 아니라 ‘비판적 주권의 회복’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향후 한국 사회는 안보체계에 대한 ‘알 권리(right to know)’의 회복과 동맹 담론의 탈신성화(desecralization)가 필요하다. 즉, 동맹을 절대선으로 전제하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인식 통제의 구조를 성찰할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모르는 상태의 안정’에서 벗어나 ‘아는 상태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선진적으로 발전하려면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말한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를 살펴보아야 한다. 소극적 자유는 타인이나 외부 권력의 강제, 간섭, 속박이 없는 상태로 ‘~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를 의미한다. 적극적 자유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으로 ~을 할 수 있는 자유(Freedom to)’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되어 있다. 분단, 외세, 평화통일 문제에 대해 국민이 주인공이 되어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세계의 평화, 행복과 직결된 분단, 외세 문제에 대해 특정 사상. 이념 등의 틀에 갇힐 것을 강요하는 비정상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자주권이 확립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법과 제도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국보법의 반인류적 특성, 미군의 실질적인 점령군 형태 주둔과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한 비밀작전이 가능한 한미동맹의 실체에 대한 공론화가 절실하다. 오늘날 중미 대치가 심화, 남북한 2국가론 속에 북한의 핵무력 강화, 남한의 핵 억지력 대미 의존 심화 속 3천5백억 달러 대미 퍼주기 투자의 심각한 의미 등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해야 한다.

참고문헌

Gramsci, A. (1971).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International Publishers.
Foucault, M. (1977).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 Vintage Books.
Althusser, Louis. (1971).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McCombs, M. & Shaw, D. (1972). “The Agenda-Setting Function of Mass Media.” Public Opinion Quarterly.
Kim, S. (2019). “The Politics of Ignorance in US–ROK Relations.” Pacific Affairs, 92(3).
Park, J. H. (2021). “Security Hegemony and the Production of Consent: The U.S.–ROK Alliance in Public Discourse.” Korean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19(1).
한미행정협정(SOFA) 본문 및 주한미군 공보처 자료집(2020).
 

고승우(언론사회학 박사)

전 한겨레신문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고문

제2회 조용수언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