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명작-정선의 [박연폭도] 3화

[연재] 심규섭의 우리 그림 이야기(57)

2025-11-21     심규섭
그림 속 갓 쓴 사람의 키를 170cm으로 높이를 계산하면 36m에 근접한다. 이는 박연폭포 실제 높이 37m 와 비슷하다. 여기에 세로로 그린 착시효과를 더하면 실제 보다 더욱 높게 보인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셋째, 건축물과 3명의 사람을 그려 넣었네.
우측 위에는 성문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고 아래 언덕에는 범사정과 3명의 사람이 있지.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필요에 따라 치밀하게 의도한 표현들일세.
상단 우측에 성문은 대흥산성 북문으로 추정하네.
박연폭포 앞에서 멀리 있는 성문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조형적, 내용적 필요에 따라 그려 넣을 수는 있지.
표암 강세황이 비슷한 시기에 그린 [박연폭포]라는 그림은 주변 풍경을 훨씬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여기에는 정자(亭子)로 표현되어 있지.”

“보이지 않는 성문까지 그린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네.
혹시 박연폭포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함은 아닐까?”

일제강점기에 찍은 대흥산성. 왼쪽에 박연폭포가 보이고, 중간에 북문이 있다.박연폭포 아래에서 성문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림 속에 넣은 이유는 뭘까? [사진 제공 - 심규섭]

“당시 박연폭포는 대흥산성보다 더 유명했지.
박연폭포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대흥산성 북문을 그렸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네.
성문은 폭포에 대한 시선을 분산시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표현일세.
무엇보다 박연폭포와 성문의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네.
굳이 성문의 상징을 찾자면, 뭔가를 지키는 것일세. 이는 직관적이라 따질 필요가 없지.
그렇다면, 조형적 문제를 감당하면서까지 반드시 그려 넣은 이유를 알아야 하네.”

그림 우측에 그려진 대흥산성이다. 성문을 그려야할 조형적 이유는 별로 없다. 오히려 군더더기로 보일 위험성이 있다. 그런데도 굳이 그려 넣은 것은, 성문이 ‘나쁜 것으로부터 지킨다’는 내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아래쪽 건물은 범사정(泛斯亭)이라고 하던데?”

“맞네.
범사정(泛斯亭)은 폭포가 보이는 시야에서 우측으로 한참이나 벗어난 바위 언덕에 세워져 있지.
이는 다른 박연폭포 그림에서도 확인이 되지.
그런데 정자를 천연덕스럽게 고모담 바로 옆으로 옮겨 놓았네.
폭포와 정자를 동시에 볼 수 있게 하는 미술적 장치이지.
미술 공부를 한 사람 정도만 발견할 수 있는 어렵고 복잡한 미술 장치도 있네.
범사정은 박연폭포 오른쪽에 있었지. 오른쪽에 있는 건물을 왼쪽으로 옮겨 그리면 시점이 오른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네. 그래서 그림 속 범사정은 오른쪽에서 중앙방향으로 본 시점으로 그렸네.
폭포를 자세히 보게.
오른쪽으로 휘어져 흐르네.
이는 왼쪽에서 중앙으로 본 시점일세.
폭포는 왼쪽에서 중앙으로, 범사정은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본 시점이 공존하네.
겸재가 그린 [금강전도]에는 위에서 내려 본 시점, 정면 시점, 아래에서 올려 본 시점이 공존하고 있네.
그런데 [박연폭포]에서는 좌우 시점을 한 화면에 구사하고 있지.
좌우 시점을 사용한 이유는 화면 중앙으로 집중시키기 위함이네.
사실, 이러한 표현기법은 특별나지 않네.
서양의 개인적 관점과 달리, 우리 그림에서는 공동체의 관점이 일반적이었네.
화가는 감상자가 볼 수 없는 세상을 창조하네. 화면을 변형, 왜곡하는 이유는 더 넓고 깊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네.”

“정자(亭子)는 경치 좋은 곳에 놀고 쉬기 위해 지은 건물로 벽이 없이 지붕과 기둥만 있다고 하는데, 그림 속 범사정에는 벽과 창문이 보이네. 실제 범사정을 찍은 사진에도 기둥과 지붕만 있을 뿐 벽이나 창문은 없는데 말이야.”

“그림 속 범사정은 대략적인 건물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세밀하게 그리지 않았지.
범사정이라는 특정 건물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정자를 표현한 것이네.”

“범사정에서 바라보는 박연폭포가 가장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범사정을 크고 자세하게 그려야 할 텐데, 특징도 없는 건축물과 인물을 그린 이유가 분명 있겠지?
뜸들이지 말고, 말해 보게.”

“순전히 미술조형 관점으로 해석해보면,
일종의 착시 기법을 사용한 것이네.
1m가 넘는 그림이라고는 하나, 실제 폭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화폭일세.
작은 화면 속의 폭포를 높고 거대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미술기법을 사용해야 하네.

박연폭포의 경치가 잘 보이는 위치에 범사정이 세워져 있다. 전형적인 정자 형식이다. 기둥과 난간과 지붕이 있고 벽면은 없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우측에 있는 범사정을 좌측 폭포 앞으로 옮겨 그렸다. 그런데도 우측에서 좌측으로 본 시점이다. 그림에는 벽과 문이 그려져 있으며 축소해서 그렸다. 겸재가 범사정을 보지 않고 그렸을 개연성은 없다. 그렇다면 의도가 있는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첫째, 꼼꼼하게 묘사하여 화면 밀도를 높이고, 명암과 원근법을 사용해 공간을 깊게 만드는 것이지.

둘째, 크기나 높이를 가늠할 상대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일세.”

“박연폭도는 간결하게 그렸다고 하지 않았나? 바깥 바위를 적묵법, 즉 먹을 여러 번 겹쳐 칠해 무겁게 표현했다고 하지만 꼼꼼한 묘사와는 관련이 없군.
우측 위쪽 작은 성문 시점도 맞지 않고 아래 범사정과 비슷해서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군.
이 그림은 폭포 정면을 그렸기에 원근감을 표현할 공간이 없지.
화면 밀도나 공간감은 실패했네.”

사람의 시야각은 가로형 타원이다. 높낮이보다, 가로 공간을 판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통 산수화에서는 넓은 공간은 가로 화면으로, 높은 공간은 세로 화면으로 그렸다. 실제로 보는 원형이 아니라 가로형 직사각형을 화면으로 발전한 것은, 수직과 수평이라는 기준을 통해 사물의 기울기를 판별한다. 중력의 시각화로 공간을 확장한 것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화면의 공간을 넓히는 일반적 방법으로 원근법을 사용하네. 산수화에서 안개나 구름을 이용해 원근을 만들고, 깊은 공간감을 창조한다네.
애당초 정면 시점으로 그린 박연폭포는 앞뒤 공간을 표현하는 한계에 봉착했네.
박연폭포 그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세로 구도의 그림일세.
세로 구도의 공간은 높낮이로 표현하지.
박연폭포는 높고 우람하게 그려야 하네. 하지만 폭포만 그려놓으면 높이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네.
크기는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이지.
사람과 건물은 누구나 알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기준일세.
이 중에서 더 중요한 기준은 사람이지.
실제 범사정보다 사람을 크게 그렸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지.

그림을 보면,
사람을 기준으로 폭포의 높이는 위쪽 작은 바위와 아래 큰 바위 기준 21배, 가로 11배의 크기일세.
박연폭포의 실제 높이는 37m로 12층 건물 높이일세.
갓을 쓴 사람을 170cm 정도로 보면, 그림 속의 폭포는 36m로 실제 폭포 크기에 근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사람의 시야는 가로형 타원으로 본다네.
이를 화면으로 대치하면 가로형 직사각형이 되네.
그런데 박연폭포는 긴 세로형이지. 같은 높이의 가로형보다 훨씬 높게 보인다는 말일세.”

“폭포를 높고 크게 보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했군.
높이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1명이면 충분한데, 굳이 3명을 그린 이유는 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