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강제투자 따라 '산업공동화' 2차 충격 올 것"
[한미 공동설명자료 시민사회 검토①] 나원준 교수, '국익도 상업적 합리성도 없다'
지난달 29일 한국과 미국 정상간 관세·투자·안보 회담 이후 보름이 지나서야 발표된 공동 설명자료(Joint Fact Sheet)의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이 현금투자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를 합친 대미 금융투자 3,500억 달러를 약속하고, 이에 미국은 이미 적용되는 상호관세 15%를 지속하고 자동차와 부품관세도 15%로 인하한다는 반대급부가 제시됐다.
당초 에이팩 계기 한미정상회담 직전까지 타결이 회의적이었던 협상이 회담 당일 미국측의 양보로 급진전됐다는 소식과 함께 '영혼을 갈아넣었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후속 언급과 현금투자 2,000억 달러의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하고 사업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하기로 했다는 등의 홍보가 이어지면서 미국의 무도한 압박을 이겨낸 '선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설마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가 국익의 관점을 저버리고 협상을 타결했겠느냐는 강한 믿음이 선의의 가정과 소극적 동의로 표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외환보유액 운용 수익으로 대미투자액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담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상업적 합리성'과 '국익'에 기초한 판단이 아닌 미국의 강요에 굴북하여 3,500억 달러를 최소 10년간 '납입'해야 할 처지가 됐다는 불만과 우려도 여전하다.
특히 지난 14일 양국 정상이 합의한 관세-투자-안보분야 공동 설명자료가 발표되면서 지금까지 김용범 대통령 비서실 정책수석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협상 관계자들이 설명한 바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 드러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은 20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에서 한미 공동 설명자료 발표 이후 처음으로 '한미 관세-투자-안보합의 평가 및 전망' 토론회를 진행했다.
한미 공동 설명자료와 양해각서를 분석, 평가하고 향후 전망을 모색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앞으로 21일 참여연대 주최 '한미협상 팩트시트와 MOU 분석 및 쟁점 토론회'와 25일 평화주권행동-평화너머의 포럼 '충격적인 팩트시트, 이재명 외교안보대북정책 이대로 좋은가?'(장창준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센터) 발표로 이어진다.
20일 토론회에서 '대미투자 합의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주제로 발표한 나원준 경북대학교 교수는 이번 한미 합의결과에 대해 '120년만의 을사국치 협상'이며, '차악을 윤허받은 결과'라고 혹평했다.
또 이같은 결과는 "현 정부가 아니라 트럼프 제국주의가 근본 원인이지만, 이번 협상결과에 대한 민주당의 자화자찬도 위선"이라고 직격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협상의 중요 기준으로 제시했던 '상업적 합리성'에 부합하는 결과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면서 세부 합의를 통해 한국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국익'보다는 '대자본의 이익'을 앞장서 챙긴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합의된 3,500억 달러 대미투자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10대 제조업의 국내투자(2023년 810억달러, 2024년 850억 달러) 규모를 4배 정도 웃도는 수준이라고 하면서, 거대기업이 국내 투자약속을 하고 있지만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투자여력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국내 제조업 기반 약화는 불가피하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미국으로 옮겨가는 투자는 국내 생산을 보완하기보다 대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서 국내 제조업 거점도시의 공동화, 공급망 밑단의 중소 제조업 고용 감소, 그리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그 피해를 온전히 감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존 한미 FTA체제에서 0%였던 관세가 최소 15%까지 오르면서 지역경제는 이미 물량감소 등으로 인한 1차 충격을 받고 있으며, 대미투자에 따른 산업공동화로 인한 2차 충격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을 인출해서 대미투자를 위한 재정자원으로 쓰겠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관련법 개정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비정상적 방법일 뿐만 아니라 최근 7년간 연평균 운용수익이 82억 달러에 그치고 있으니 연간 150억 달러를 조달하겠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대미투자를 위해 대규모 외화자금을 조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인데, 지난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외환보유액 증가가 520억 달러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200억 달러 투자를 할 경우 그중 연평균 외환보유액 52억 달러를 제외한 150억 달러 가까이 대미 투자를 위한 빚(기채)을 내야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1997년 IMF 직후의 외환보유고 적정성 평가 지표(ARA) 61.5%에 근접하는 것으로,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상업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수치라고 경고했다.
나원준 교수는 협상과정에 대해서는 먼저 25%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고 3,500억 달러 투자를 강제한 미국의 요구에 한국이 응하는 것이 유리한지 여부에 대해 정부는 대미협상이 끝날때까지 따지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자동차 관세 25%로 인한 한국 국내총생산(GDP) 손실로 추정되는 17조 5,100억원(한국은행), 평균 일자리 감소 1만6,492개와 비교해 대미 투자금액 3,500억 달러(약 500조원)은 합리적 결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
또 정부가 약 2만명의 노동자에게 일자리 상실에 따른 소득을 지원하더라도 자동차부품 산업 평균 연봉 7천만 원을 적용할 때 소요 재정규모가 연간 1조 4,000억 원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대미투자는 사실 정상적 투자가 아니라 미국에 갖다바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공동 설명자료를 통해 확인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3항과 4항에서 투자 및 승인 투자(조선업) 추천과 감독을 위한 투자위원회를 설치하고 미국 상무부장관을 위원장으로, 위원은 미국측에서 지명한다고 하였으니 한국은 여기에 못들어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산업부장관이 위원장을 맡은 협의위원회에 관한 5항은 한국과 미국측에서 위원을 지명할 수 있으나 그 역할은 투자위원회에 대한 의견 제시에 그치도록 하여 구속력이 없다.
△7항에서 미국이 선정한 투자를 한국에 통보하면, 한국은 45일 이후 투자를 위한 자본지출 일정에 맞춰 즉시 인출 가능한 형태의 달러자금을 제공하도록 하고 8항에서 그 한도를 연간 200억 달러 이하로 정했으며, 투자 약속 이행이 외환시장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한국은 조달 금액과 시점을 조정할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으나 그것은 미국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지 강제력은 없다.
△특히 9항에서 한국은 미국이 선정한 투자에 대해 자금을 제공하지 않기로 단독 결정할 수 있도록 했으나, 그건 안전장치가 아니다. 그 전에 미국과 상의하고, 자금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국은 관세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 경우 '간주배분액'(Deemde Allocation Amount) 기준 권리를 잃고 이자와 이자 이월금액은 다 포기하는 '수정배분액'(Revised Allocation Amount) 기준으로 배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미조달 금액에 대해서는 미국이 어디서 받아 오든 '캐치업'(catch up) 금액을 받아서 그 부족분을 먼저 채우겠다는 것. 예를 들어 '돈 내기 싫으면 안줘도 되지만 그렇게되면 먼저 이자는 못받아가고 둘째 관세는 올라갈거고 세번째 캐치업 금액이라고 해서 우리가 알아서 뜯어갈 거야'라는 조건을 단 것이다. 이 부분은 일본과 협상한 내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11항에서는 미국의 투자에 있어 가능하고, 가용하다면 유사한 외국 공급업체 대신에 한국 공급업체를 선정하겠다는 '친절한' 태도가 보이지만 14항과 15항, 17항에서 프로젝트별로 만드는 개별 SPV를 통합한 모회사 격인 '투자 특수목적법인'(SPV, Special Purpose Vehicle)으로 모든 투자수익금이 들어가도록 하고 여기서 미국 세금은 먼저 공제한 뒤 미국 5 대 한국 5의 비율로 나누도록 함으로써 수익률 100%가 넘는 사업이 아니고서는 원금 회수가 어려운 구조를 구축했다. 수익률 8~9%면 우수한 사업이라는 현실에서 이는 매우 비현실적인 모델이다.
△25항과 26항에서 양측의 합의는 행정적 합의로써 법적 구속력있는 권리 및 의무를 발생시키지 않으며, 어떤 내용도 미국과 한국의 국내법과 상충되어서는 안된다는 조항은 11항의 한국기업 우선 조항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 제정한 미국 국내법인 'BABA'(build America Buy America)법은 미국내 외국인 투자시 기자재와 부품의 75%를 미국산으로 조달하도록 하고 있다.
나 교수는 한미 협상 결과 한국정부의 의견을 반영해 외환시장 충격 완화를 목적으로 연간 투자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했다고 하지만 기한이 명시된 것은 투자기한이 아니고 투자약정기한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약정기한은 한국정부가 미국측과 협의해 투자대상 프로젝트를 확정하고 MOU 등 투자약정을 체결하도록 한 시한인데, 트럼프 임기 만료시점인 2029년 1월 중이다.
실제 투자집행은 투자약정이 맺어진 개별 프로젝트의 진척 정도에 따라 2029년 1월 전부터 시작되는데, 10년은 최소 기간일 뿐 그 이후에도 약정에 따라 투자집행이 이루어지게 된다. 전체 투자의 집행속도는 개별투자의 진척에 달려 있으며,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약정된 규모에 맞게 납입해 달라고 요청하는 캐피털 콜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2,000억 달러 전액이 미국에 투자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또 한국이 자금을 제공하는 정상적인 투자자라면 당연히 자금의 집행과 관련된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투자 의사결정은 미국이 하고 위험부담을 지는 한국은 단지 컨설팅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는 비상식적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채권확보 차원에서 담보 설정 등 최소한 원금회수를 위한 신용보강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채권확보 수단이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삼았다.
한미 투자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경제적 위험 요인들이 많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결정권을 가진 투자위원회에 미국측 위원장을 맡고 한국측이 참여한다는 명문 조항이 없으나 결정권이 없는 협의위원회에는 미국측이 참여하는 한미 협의 및 투자결정 구조 자체가 이미 기울어져 있으므로 상업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원금과 소정의 이자(간주이자율)회수에 대해 한국은 원금도 못건진 상태에서 수익의 절반밖에 가져오지 못하지만 한푼도 투자하지 않은 미국은 수익의 절반을 가져가고 그마저도 원리금 회수후에는 미국 9 대 한국 1로 수익을 분배하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투자'의 개념을 바꿔야 할 만큼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분배구조이다.
△미국은 결코 자본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며, 높은 수익성이 기대되고 원금 회수가 확실한 자국내 투자사업에 대해서는 스스로 앞장서서 들 것이므로 한국 정부에게 강요된 대미투자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원금 회수가 불가능한 사업에 대해 수익배분 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 합리성 원칙에 따라 미국 정부의 별도 신용보강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위험과 손실은 한국이 부담하고 돈은 미국이 버는 구조이다.
△한국 외환시장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투자금액 조정 등을 요청할 수 있는 위험방지 조항을 양해각서에 명시할 것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연간 3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외화 유출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미 개시된 실물 투자의 조기청산이 예상되는 결정을 허용할리 없다.
△마스가투자와 관련해 자국내 공급망이 부재한 미국의 상황을 감안하며 한국 조선업 대자본은 기자재와 부품 공급 협력업체까지 함께 들어가야 하는데, 이 경우 한국 소재 조선소에서 선박 수주를 하더라도 그 기자재와 부품은 미국 국내법인 'BABA'(build America Buy America)법에 따라 미국에서 역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남아있는 한국의 조선업 소·부·장 생태계는 마스가로부터 배제되어 미국 조선업의 하청기지로 전락하게 된다.
△한미 사이의 조선협의그룹이 만들어지더라도 미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통로가 되거나 한국 조선업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한국에 남는 조선업 생태계와 지역경제, 노동자 고용안정은 한미간 협의 대상이 아니다.
△협상 타결 후속조치로 11월중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조선업 분야 1,500억 달러 투자에 관한 '마스가지원법'과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를 위한 투자기금 신설 및 정부 보증채 발행 등을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은 결국 현대·기아차와 반도체, 조선업 대자본을 위한 일이지 국익과는 거리가 멀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미국 백악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영문으로 공개한 정본(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과 용산 대통령실이 14일 비공식 국문 번역문으로 올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회담 공동 설명자료'를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양 당사자 간의 합의된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이 강한 구속력을 갖는데 비해, 합의된 구체적인 사실이나 이행 사항을 간략하고 명확하게 정리하여 관련 정보를 홍보 또는 안내 성격으로 제공하는 데 주된 목적을 갖는 공동 설명자료(Joint Fact Sheet) 형식으로 발표된 것이 특징이다.
아무튼 발표된 내용은 한미 합의 사항이며, 공동 설명자료에 들어있지 않은 내용은 합의되지 않은 것이고 '해석'을 통한 접근은 합의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게 중요하다.
대미투자 분야를 분석한 나 교수외에 장창준 한신대학교 교수가 '안보합의', 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 원장이 '무역협상', 한승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이 '농업분야'로 나누어 협상 분석과 전망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