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잠수함이 자주국방인가

[기고] 진정한 자주국방의 길은 무엇인가 / 정성희

2025-11-07     정성희

정성희 / 자주연합 집행위원장

 

이재명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핵추진잠수함(이하 핵잠) 도입 계획을 공식화한 것은 한국 안보 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처럼 보인다. 정부는 이를 “자주국방의 진전”이라 규정하고, 북핵 위협 대응과 해양 전력 강화의 상징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핵잠 논의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자주국방의 진전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 한국을 더 깊이 묶어두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핵잠 도입은 단순한 전력 증강이 아니라, 한국의 군사·기술·정책 주권이 어디에 종속되어 있는가를 드러내는 척도이다. 지금의 핵잠 추진 구도는 ‘자주’의 이름을 빌린 새로운 형태의 동맹 종속 강화 방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 강화와 자주국방의 구조적 모순

‘핵추진잠수함’ 추진론자들은 미국의 핵연료 공급을 허락받자고 “자주국방은 동맹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한미동맹의 구조를 보면 자주국방과 동맹강화는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군의 전작권은 여전히 한미연합사령부가 쥐고 있으며, 명목상 ‘조건에 따른 전환’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 조건은 미군 수준의 작전지휘 능력 확보이다. 다시 말해, 미군의 판단 아래서만 전작권 전환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전작권은 국가 주권의 핵심이지만, 한국은 이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한 채 미군 주도의 작전체계에 편입돼 있다.

자주국방의 본질은 지휘권과 정책결정권의 독립이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 정책은 여전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종속돼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사드(THAAD) 배치, 대만해협 문제 등 핵심 현안이 모두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연동되어 있다. 이런 조건에서 ‘동맹강화와 자주국방의 병행’을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핵잠, 미국의 감시망 강화에 기여할 뿐

핵잠 보유가 “미군의 지역 부담을 경감시켜 동맹을 심화한다”는 주장은 표면적으로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실상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한국을 깊숙이 편입시키는 논리이다.

미국은 현재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해군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SSN(X)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SSN(X) 프로그램은 미국 해군이 다음 세대 핵추진 공격잠수함(SSN: Nuclear Powered Attack Submarine)을 개발하기 위한 사업이다. 미국 해군은 2045년을 목표로 전체 함정 규모 확대안을 제시하며, “66척의 고속공격 및 대형잠수함(Fast-Attack & Large-Payload Submarines)”을 포함시켰다.

이 체계의 일부로 2021년 미국·영국·호주가 AUKUS 협정을 맺었고, 호주는 핵잠 기술을 도입하는 대신 미국의 전략적 감시망에 편입되었다. 한국의 핵잠 논의 역시 이 AUKUS의 확장판, 이른바 ‘AUKUS-플러스’ 구상과 궤를 같이한다.

핵잠 도입이 자주적 전력 강화가 아니라 미국의 해양전략에 한국 해군을 결속시키는 수단이 되는 이유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핵잠은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 언급한 사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건조·운용·정비까지 미국이 통제하는 체계에서 어떻게 자주국방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 건조하면 해결되나?

한국에서 건조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아니다. 핵심 쟁점은 법적·안전·감시체계·기술인증·정치적 승인이다. 건조 장소가 한국이냐 미국이냐는 일부 문제(노동·산업·일자리·주권 상징성)는 달라지게 하지만, 근본적 제약들은 그대로 남는다.

법적·외교적 승인 문제는 장소로 풀리지 않는다. 핵추진 장치(원자로)·핵연료 취급·농축·재처리 등은 한미 간(그리고 국제적으로) 민감하게 규제된다. 미국과의 핵협력(한미 123협정 등)·NPT·IAEA 규정에 따라 미국의 기술·물자 이전과 연료 공급에 대한 별도 합의가 필요하다. 트럼프 발언 후에도 서울과 워싱턴의 공식·현실적 조율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도됐다.

조선소 기반(인프라) 문제. 미국 대통령의 언급처럼 ‘필리(Philly) 조선소’ 얘기가 나왔지만, 그 조선소는 현재 핵연료·원자로 취급 설비나 군용 핵잠 건조 경험이 없다. 전문가들은 “필리 조선소는 핵잠 건조에 필요한 인증·인프라·보안요건이 없으며, 의회승인·계약·기술이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같은 논리가 한국의 조선소에도 적용된다. 원자로 설치·방사선 관리·보안인증·특수공정 인력 등은 별도 구축·인증이 필요하다.

환경·안전·지역 수용성 문제. 핵원자로 건설·운용·폐연료 관리 문제는 국내법·지역사회 수용 없이는 진행 불가능하다. 조선소가 국내에 있어도 원자력 안전위원회·환경영향평가·IAEA 협의 등 행정절차·공론화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 기술로 핵잠 건조할 수 있나

미국 핵잠 기술 없이 한국의 조선기술로 핵잠을 만들 수 있는가? 단기간·독자적으론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한국 조선·잠수함 건조 역량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핵잠 건조”=(조선)+(원자로·연료·운용체계·방사능안전·특수장비)인데, 핵심은 원자력 추진체계 쪽이다.

조선·함체 설계는 가능하나, 원자로·추진계는 별개 분야다. 한국은 디젤·에어 독립 추진(AIP) 잠수함·대형함 건조 역량을 보유하지만, 해군용 핵원자로 설계·시험·인증·운용 경험은 거의 없다. 원자로 설계·연료주기 설계·방사선 안전·특수정비체계 등은 기존 조선업 역량만으로는 단기간 확보 불가하다.

핵연료 공급 받으면 독자 운행?

전통적으로 미국·영국이 사용하는 핵잠용 원자로는 고농축우라늄(HEU)을 쓰는 설계가 많았다. HEU 기반은 ‘수명주기(무보급 운용)’ 관점에서 유리하나, 비확산 문제를 크게 유발한다. LEU(저농축) 기반으로 설계하면 비확산 장점이 있지만 원자로 설계가 달라지고 비용·공간·발열관리·연료교체 주기 등에서 불리해 기술적 난도가 커진다. 이런 핵심 설계 선택은 단순한 ‘조선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선례와 기술이전 현실. AUKUS 사례에서 보듯(호주에 대한 미·영 지원), 핵잠 기술이전은 제한적이고 매우 높은 정치적·법적 조건을 동반한다. 미국·영국은 오랜 기간 기술을 보유·통제해 왔고, 완전한 독자 이전은 드문 사례다. 한국이 “미국 기술 없이 독자 개발”을 하려면 수십 년·수조 원·광범위한 인력·시험 인프라가 필요하다.

한국의 조선소가 함체를 만들 수는 있어도, 핵추진장치(원자로)와 그 운용·유지체계는 단기간 독자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기적 계획·대규모 투자·IAEA·국제협력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운용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선 다음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첫째, 연료 공급 형태가 중요하다(원료 vs 완성 연료). 미국·영국은 AUKUS 등에서 원칙적으로 ‘완성된 연료(fabricated fuel assemblies)를 제공하고’ 재처리·농축 등 핵주기 권한은 이전하지 않는 방식을 고려해 왔다. 한국에 동일 방식으로 연료만 공급한다고 해도 연료의 반입·보관·교체·폐연료 처리는 높은 안전·감시 규정과 미국·IAEA의 조건 위에 놓인다.

둘째, 운용·정비·정책통제 문제이다. 연료를 공급받아도 운용권·작전권·정비권의 많은 부분은 기술지원·부속장비·검증·데이터공유 등에서 미국과의 깊은 협업을 필요로 한다. 미국은 연료 공급과 함께 감시·안전·폐연료 처리 규정, 그리고 때로는 작전상 통제·정보공유 요구를 붙일 수 있다. 즉 ‘연료만 받으면 끝’이 아니다.

셋째, 정치적·의회적 승인 및 국제감시이다. 미국에서 HEU·민감기술을 제공하려면 의회·국방산업체·원자력 규제 당국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또한 IAEA 사찰·특별보고·감시체계 강화 요구가 동반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조건들은 한국의 ‘완전 독자 운용’ 가능성을 제한한다.

따라서 미국이 연료만 준다고 해서 한국이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운용하는 상황으로 자동 전환되지는 않는다. 연료 공급은 ‘운용의 일부 권한을 허용하는’ 것이지, 동맹의 전략적 통제/통합을 배제하는 조치가 아니다.

군사적 효용보다 정치적 상징성

정부는 핵잠이 “북핵에 대한 비대칭 억제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작전환경에서 그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은 수심이 얕고 좁아 잠수함의 은폐성과 작전 반경이 제한된다. 게다가 미국·일본의 해상감시망이 포화 상태에 있어 독자적 작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첨단 인공지능(AI), 위성감시, 무인잠수정(UUV) 기술이 발전하면서 핵잠의 전략적 가치는 감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핵잠을 ‘비대칭 억제력’이라 포장하며 국민적 자긍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는 군사적 효용보다 정치적 상징, 즉 ‘핵보유국에 근접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

이러한 상징 정치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낳는다. 북한은 이를 “남한의 핵무장 사전단계”로 규정하며 핵·미사일 개발 명분을 강화할 것이고, 중국·러시아 역시 한국의 미·일 안보 블록 편입 가속화로 인식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핵잠은 평화의 안전판이 아니라 동북아 군사적 대립의 기폭제가 된다.

“북핵을 사실상 묵인하는 미국 상황에서, 남한도 최소한 핵잠은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비핵화 원칙과 정면 충돌한다. 핵잠 개발은 고농축우라늄(HEU) 생산 능력을 전제로 하며, 이는 핵무기 제조 기술과 동일한 기반을 갖는다.

그 결과,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미국 간 핵잠 논의 보도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핵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지역의 평화·안정을 증진하기 위해 행동하길 희망한다”는 공식 언급을 했다. 한국의 핵잠 추진을 계기로 한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는 “미국이 핵잠·수중전력을 동맹국에게 이전하여 인도·태평양에서의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한국-미국 핵잠 협력을 미국의 전략 확대의 일부로 본다.

핵잠 추진은 북한의 군사공세를 더욱 부추기고 남북관계의 파탄으로 몰아갈 것이다. 이미 2025년 2월 미국 핵추진잠수함의 부산 기항과 관련해 “‘미국의 핵잠 전개’는 한반도 주변지역에서 실제 군사 충돌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군사행위”라고 비난하며, “필요시 적에게 합당한 대응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핵잠, 경제적·환경적 부담: ‘자주국방’의 비용 왜곡

국제사회는 한국의 핵잠 추진을 ‘비핵화 약속 위반의 잠재적 행위’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핵잠을 보유하는 순간, 한국은 북핵 폐기를 촉구할 도덕적 명분을 잃게 된다. 결국 “비핵화를 지키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라는 정부 논리는 자기모순이다.

핵잠 추진은 ‘비핵화 유지’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핵무장 잠재력 강화’라는 의심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HEU는 농축도 90%를 넘으면 핵탄두 제조가 가능한 물질이다. 한국이 핵잠 명분으로 HEU 확보를 시도할 경우,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NPT 체제의 특별 감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핵잠은 군사력의 자주적 상징이 아니라 외교적 자율성을 제약하는 족쇄로 전락할 수 있다.

미국의 버지니아급 최신 블록 함정 1척의 조달 비용은 최근 연도 회계에서 약 48억~58억 달러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다. 무기체계·블록·옵션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첨단 핵잠 1척 건조비는 대체로 28억~55억 달러 범위”라고 한다.

이는 30억 달러(환율 1,350원 기존, 약 4조 500억 원) 수준의 핵잠 건조비가 2025년 국방예산(약 61조 원)의 6.6% 정도에 달한다. 이런 막대한 예산은 민생경제·사회복지·기후대응 예산을 잠식하고, 재래식 방위력 현대화 예산도 압박할 것이다.

더구나 핵잠은 방사능 누출, 폐연료 처리, 해상사고 등 환경·안전 리스크를 동반한다. 정부는 이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나 공론화를 진행하지 않았다. 기술 종속, 군비 팽창, 긴장 격화, 남북관계 파탄, 환경 위험이 결합된 ‘핵잠 프로젝트’는 자주국방이 아니라 군산복합체와 정권 안보의 이해관계가 결합된 구조가 아닌가 의심된다.

무기가 아니라 주권: 동맹 재편과 평화 복원이 해답

한국의 국방비는 이미 세계 9위 규모이다. 2025년 국방예산 약 61.59조 원은 북한의 9배다. 2024년 일본의 군사비 지출은 약 553억 달러, 한국은 약 476억 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국방비 규모와 자주국방의 수준은 비례하지 않는다. 자주국방은 무기 보유가 아니라 정책결정권의 독립, 외교적 자율성, 군사주권의 확보에서 출발한다.

사드 배치, 대중국 견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등 주요 사안은 한국의 국익보다 미국의 전략에 더 깊이 연동되어 있다. 이런 조건에서 핵잠을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은 허구적 자부심일 뿐이다. 진정한 자주국방은 외교적 자율성과 평화정책의 확립이다.

핵잠 도입은 한미동맹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한국을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고정시킨다. 이는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에서 동북아 안보 구도의 하위축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불가피하며, 남북관계는 더욱 냉각될 것이다.

자주국방의 길은 핵잠이나 전작권 전환 같은 군사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과 다자안보 협력 강화에 있다.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국이 상호 신뢰 구축과 군비통제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자주국방의 실질적 내용이다.

핵잠은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사적 의존을 심화시키고, 냉전 구조를 강화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핵잠 건조계획’이 아니라 ‘평화전략의 재정립’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제재 해제 등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북미 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호전 등에 진정한 평화가 있다.

정부의 핵잠 추진은 ‘자주국방’의 이름으로 포장된 새로운 형태의 종속이다. 핵잠을 도입해도 연료·기술·운용은 미국의 손에 있고, 전작권을 전환해도 작전지휘는 미군의 승인 아래 이루어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주’를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기가 아니라, 주권적 안보 전략의 재정립이다. 한미동맹의 구조적 종속을 극복하고, 평화와 협력의 안보 체제를 스스로 설계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주국방이 가능하다. 핵잠 도입은 자주국방의 진전이 아니라 또 다른 종속의 서막일 뿐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아닌 평화체제 복원, 군비경쟁이 아닌 신뢰 구축, 동맹 종속이 아닌 외교적 자율성의 확립,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주국방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