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송환 희망자, 비전향 장기수 박순자 선생 별세
2차 송환 희망자인 비전향 장기수 박순자(본명 박수분) 선생이 4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애국투사 박순자 선생 민족민주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부고를 통해 “자주와 해방 투쟁에 한생을 올곧게 걸어오신 박순자 선생님께서 2025년 11월 4일 0시 25분에 영면하신 가슴 아픈 소식을 진해드린다”고 알렸다.
1931년 2월 13일 경남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에서 태어난 고인은 16세 때 좌익운동을 하던 오빠들의 영향을 받아 남로당 산하 무장조직 ‘야산대’ 활동을 시작했다.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 노동당에 입당했으며, 토벌대 공세를 피해 1950년 9월 지리산으로 입산했다. 빨치산 투쟁 중 ‘의령투쟁’에 참여했으며, ‘여자 빨치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전향 장기수 임방규 선생의 ‘빨치산 격전지 답사기’에 따르면, 2011년 5월에 의령투쟁 현장을 답사한 고인은 “내 나이 스물네 살에 위생병 차림으로 동무들과 함께 이곳에 왔네요”하고는 “감개가 무량하다”고 밝힌 바 있다.
1954년 1월 13일 지리산 다래골에서 피검돼,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1년 옥고를 치르고 1965년 3월에 출소했다.
1966년에 비전향 장기수 최상원 선생과 ‘동지 결혼’을 했으며 슬하에 2남 6녀가 있다. 남편인 최상원 선생은 2007년 7월 작고했다.
1987년부터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1991년 8월 범민련 운동을 시작해 범민련 남측본부 부경연합 중앙위원과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는 6.15공동위원회 고문 등을 비롯해 여러 통일운동단체에 참여했다. 아울러 2000년 창립된 통일광장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2002년 금강산에서 개최된 세계여성대회와 2004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여성대회에 참석했다. 2025년 자주연합 명예회원이 됐으며, 2025년 11월 4일 0시 25분 운명했다.
박순자 선생이 별세함으로써 장기수들 중 2차 송환 희망자는 김영식, 양희철, 김찬영, 안학섭, 양원진 선생 등 5명만이 생존해 있다.
고인의 장례는 ‘애국투사 박순자 선생 민족민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부산 동구 초량동 인창병원 장례식장 201호에 마련되었으며, 추도식은 5일 오후 8시, 발인은 6일 오전 7시 30분, 영결식은 6일 오전 8시 30분에 민주공원에서 열린다. 장지는 서울 종로구 금선사다.
1931년 2월 13일 경남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 출생
1950년 4월 하동에서 여맹 활동
1950년 7월 인민군 하동 해방, 하동군 여맹 조직부 지도위원
1950년 9월 28일 지리산 입산
1951년 9월 하동군 여맹 조직부장
1952년 8월 하동군 여맹 위원장
1954년 1월 13일 지리산 다래골에서 피검,
군사재판에서 사형구형, 징역15년 선고
1965년 3월 출소
1966년 1월 부산에서 최상원선생과 결혼
1975년 5월 사회안전법 주거제한에 묶임
1987년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
1991년 8월 범민련 운동 시작
1998년 8월 범민련 남측본부 부경연합 중앙위원, 고문
2000년 통일광장 회원 가입
2000년 6·15공동위 고문, 전국여성연대 지도위원,
통일여성회 고문, 통일촌 고문, 진보연대 고문
2002년 금강산에서 개최된 세계여성대회 참석
2004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여성대회 참석
2007년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2025년 자주연합 명예회원
2025년 11월 4일 0시 25분 운명.
(자료제공-애국투사 박순자 선생 민족민주장 장례위원회)
(추가: 오후 10시 14분)